‹ 목록으로 내 전략이 아버지 공이라니

1화

지도 위에 손끝을 얹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산맥의 굴곡, 강줄기의 방향, 관도의 폭까지도 그저 종이 위의 먹선이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겹쳐졌다. 병력이 이동할 때 생기는 빈틈, 지형이 감춰줄 매복지, 적이 반드시 지나야 할 좁은 길목. 그런 것들이 금빛 선으로 지도 위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그저 눈이 어지러운 줄 알았다. 여섯 살 때였다. 손목에 문양이 돋아나던 그 순간, 방 안의 낡은 지도 한 장이 눈앞에서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다. 산은 여전히 산이었지만, 그 사이로 흐르는 금빛 선들이 마치 실을 짜놓은 듯 얽혀 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아버지만이 알았다. 이것이 내 능력이었다. 대현국에서는 이런 힘을 가진 자를 능력자라 불렀다. 태어날 때부터 손목이나 목덜미에 문(紋)이 새겨진 채로 자라났고, 문은 대개 열 살 전후에 깨어났다. 나는 남들보다 일렀다.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해야만 그 능력을 공식적으로 쓸 수 있었고, 등록된 자는 관직이든 병부든 어디로든 나아갈 길이 열렸다. 다만 여기에는 하나의 규범이 있었다. 여성의 문은 등록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는 전장에 설 수 없다는 것. 그러니 여자의 능력은 애초에 필요 없다는 것.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논리가 정리되었다. 아무도 그 논리를 다시 캐묻지 않았다. 등록되지 않은 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나는 여섯 살 때 이 손목에 새겨진 눈동자 모양의 문을 발견했다. 동그란 눈동자가 손목 안쪽에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처음엔 무서웠다. 나중엔 익숙해졌다. 아버지는 그것을 '전안(戰眼)'이라 불렀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었다. 알려질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건 너만 아는 이름이다, 린아."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날도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음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 숨은 무언가를 느꼈다. 두려움이었을까, 기대였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선우 공작가의 장녀, 선우린이었다. 이름 앞에 붙는 '공작가의 장녀'라는 말은 근사하게 들릴지 몰라도, 내 삶과는 무관한 수식어였다. 진짜 공작가의 장녀라면 저 위, 화려한 본채에서 비단옷을 입고 다과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니었다. 여덕섬 저편에 있는 이 별채, 다들 은서각이라 부르는 이곳의 지하 한 칸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창은 하나뿐이었다. 그 창은 사람 머리 하나 겨우 내밀 만한 크기였고, 항상 반쯤 가려져 있었다. 창밖으로는 뒤뜰의 감나무 한 그루만 보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나무의 잎이 푸르렀다가 붉어졌다가 떨어졌다. 나는 그 나무를 보며 시간을 셌다. 달력도 없었고, 시계도 없었으니까. 방 안에는 낡은 침상 하나, 작은 서안 하나, 그리고 그 서안 위에 늘 놓여 있는 지도 몇 장이 전부였다. 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습기가 많은 계절엔 그 냄새가 코끝까지 스며들었다. 문은 하루에 두 번, 시녀가 밥을 들일 때와 아버지가 들어올 때만 열렸다. 시녀는 이름도 몰랐다. 그녀는 늘 고개를 숙인 채 쟁반을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눈을 마주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들어오는 날은 대개 지도를 들고 왔다. 낡고 해진 지도, 혹은 새로 그려진 지도. 그는 그것을 서안 위에 펼쳐놓고 나에게 손끝을 얹으라 했다. "여기, 이 길목을 봐라." 나는 손끝을 얹었다. 금빛 선들이 지도 위로 떠올랐다. 병력이 지나갈 길, 매복이 가능한 지형, 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지점. 그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면 아버지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만족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 가끔은 궁금했다. '이 능력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상의 방에서, 창이 여러 개인 방에서, 다른 자매들처럼 자랐을까. 아니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까.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었다. 답을 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시녀가 밥을 들이고 나갔고, 나는 창밖의 감나무를 바라보며 젓가락을 들었다. 밥알을 씹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아버지가 오실까. 오늘은 어떤 지도를 가져오실까. 문득 시녀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중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여덕섬……"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말은 실수였다.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방 안의 공기가 순간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손끝이 저릿했다. 이 이름은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이 별채가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가리키는 그 한마디는. 지워야 했다. 누가 들었을까. 시녀는 이미 멀어졌을까. 문밖에 누군가 서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숨을 죽이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감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그 정적이 오히려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제발, 아무도 못 들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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