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갑 부장님, 몬스터로 부활

3화

격리탑 생활에서 제일 참기 힘든 건 밥이었다. 여은채는 마법은 천재였지만, 밥 하나는 정말 심각하게 못 했다. 빵을 태우질 않나, 수프에 소금을 반통씩 넣질 않나. 처음엔 그냥 손이 안 익어서 그런가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창의적으로 이상해졌다. 어느 날은 감자 껍질을 안 벗기고 통째로 삶아 내놓았고, 어느 날은 소금과 설탕을 헷갈렸는지 국이 달았다. 며칠 동안 그 요리를 먹으며 나는 점점 서글퍼졌다. "이건 좀 심한데요." "입에 맞으면 됐지, 뭐가 문제야." "이건 아무 입에도 안 맞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내 앞접시를 뺏어갔다. 다시 먹으려는 걸 보니 진짜로 자기 요리를 맛있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미각인지. 오크 심장을 삼켜도 아무렇지 않은 나조차도, 그녀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위장이 미묘하게 항의하는 걸 느꼈다. "현자님, 이거 태운 거 맞죠? 색깔이 좀……" "살짝 그을린 거야. 원래 이런 색이야." "원래 이런 색인 빵은 없습니다." 그녀는 대꾸 없이 빵을 우물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내 등 뒤에서 그녀가 물었다. "어디 가." "부엌이요." "거긴 왜." "살고 싶어서요." 나는 결국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크 내장 덕분인지, 이 몸은 웬만한 재료로도 뭐든 소화가 됐다. 심지어 탑 지하에 굴러다니던 이상한 뿌리채소까지 먹어도 탈이 안 났다. 그래서 마음 편히 재료를 이것저것 섞어서 국을 끓였다. 향이 조금씩 올라올 때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은채가 문틀에 기대서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밥 하는 겁니다." "내가 이미 만들었잖아." "현자님, 저는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겁니다." 그녀는 뭔가 반박하려다가, 결국 팔짱을 끼고 조용히 지켜만 봤다. 그러다 슬그머니 다가와 냄비 안을 들여다보는 게, 못마땅한 척하면서도 관심은 다 있는 눈치였다. "이건 무슨 재료야." "그 뿌리채소요. 지하에 있던 거." "그거 독 있을지도 몰라." "육십 년째 안 죽었습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국이 완성되고 그릇에 담아 내밀었더니, 그녀는 한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한 숟갈 떴다. 숟갈이 입에 닿는 순간, 눈이 살짝 커지는 게 보였다. "……맛있네." 짧은 감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탑 안이 워낙 조용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그녀가 좀처럼 남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당연하죠. 제가 요리는 육십 년 짬입니다." "육십 년이나 요리를 했다고?" "혼자 살았으니까요." 그 말에 그녀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숟갈을 든 손이 멈춰 있었다. 뭔가 더 물어보려는 것 같았는데, 결국 다시 숟갈을 움직였다. 나도 굳이 그 침묵을 채우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끼 요리를 맡게 됐다. 은채는 그 대신 청소나 정리를 했는데, 그것도 영 시원치 않았다. 책은 늘 아무 데나 쌓여 있었고, 마법 도구는 바닥에 굴러다녔다. 한번은 정리를 한다면서 책 더미를 옮기다가 오히려 더 큰 산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결국 그것도 내가 정리했다. "현자님, 이 방은 대체 몇 년이나 이렇게 사신 겁니까." "……오래."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별의별 게 다 나왔다. 마른 잉크병, 쓰다 만 마법 재료, 한쪽 짝만 남은 장갑. 그녀가 얼마나 정신없이, 그리고 얼마나 오래 혼자 이 탑에 살았는지가 물건들 사이사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방 한구석에서 낡은 편지 뭉치를 발견했다. 대부분 왕궁에서 온 공식 문서였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다른 것들과 다르게 손으로 쓴 짧은 메모였다. 종이가 오래되어 색이 누렇게 바랬고, 접힌 자국이 여러 번 남아 있었다. 몇 번이나 펼쳐보고 다시 접었다는 뜻이었다. 『현자님, 오늘도 식사는 거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걱정됩니다.』 서명은 없었다. 필체는 여성의 것 같지도, 남성의 것 같지도 않은 단정한 글씨였다. 누가 썼는지, 왜 서명을 남기지 않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물어보면 왠지 그녀가 곤란해질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다시 접어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 그가 요리를 하는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따뜻하다, 는 말이 맞을까. 그 거대한 등이 부엌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상하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처음 탑에 갇혔을 때는 저 덩치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문짝을 부술 것 같은 어깨, 사람 목을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것 같은 손. 그런데 지금은 그 손이 냄비를 젓고, 그릇에 국을 뜨고, 나한테 내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국그릇을 받아 들 때, 손끝이 살짝 스쳤다. 그의 손은 크고 딱딱했지만, 뜨거운 온기가 확실히 전해졌다. 마법으로 데운 것과는 다른, 진짜 사람 손의 온도였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국을 떠먹었다. 국은 뜨거웠는데, 얼굴은 그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았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밥이 맛있어서 그런 거다. 나는 그렇게 되풀이해서 속으로 되뇌었다. 육십 년 짬이라잖아. 맛있는 게 당연하지. 얼굴이 뜨거운 것도 국이 뜨거워서 그런 거고, 손끝이 스친 것도 그냥 그릇을 주고받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핑계는 자꾸 늘어났다. 늘어날수록 이상하게 더 궁색해졌다. 하지만 숟갈질을 하는 동안, 나는 계속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넓은 등, 국을 젓는 손, 가끔 냄비를 들여다보며 살짝 찌푸리는 눈썹까지. 나는 그 모든 걸 하나씩 눈에 담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 나는 아직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자꾸만 눈이 그쪽으로 가는 마음. 그 두 개가 내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채, 그저 국그릇만 붙잡고 앉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낡은 편지 생각이 자꾸 났다. 서명 없는 그 짧은 메모. 걱정된다는 그 한 줄. 대체 누가 그를 걱정했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왜 아무도 그를 걱정하지 않게 됐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대신 나는 그가 남긴 국그릇의 빈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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