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레벨업 중독 헌터

3화

탐험자 자격시험 신청 완료. 화면에 뜬 문구를 보며 도현은 씩 웃었다. 핸드폰 화면을 몇 번이나 눌러보며 확인했다. 잘못 뜬 게 아닌가 싶어서. 이건우가 등 뒤에서 그 화면을 봤다. 뭐야 이거. 신청했어요. 도현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구 허락 받고. 허락받아야 해요? 도현이 되물었다. 미성년자잖아. 보호자 동의만 있으면 돼요. 도현이 서류를 내밀었다. 보호자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이건우가 서류를 밀쳐냈다. 안 해줄 거다. 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저 그냥 자퇴하고 백수로 살게요. 뭐? 이건우의 얼굴이 굳었다. 대학도 안 가고, 취업도 안 하고, 그냥 이 집에서 삼십 년 눌러 살 거예요. 밥 축내면서. 야, 이도현. 안 해주시면 진짜 그렇게 살아요. 저 진지해요. 거짓말도 아니었다. 이 몸으로 대학을 다닐 생각도 없었고, 취업 준비를 할 생각도 없었다. 박선희가 부엌에서 뛰어나왔다. 손에 든 프라이팬을 그대로 든 채였다. 여보, 그냥 해줘. 뭐? 애가 저러다 진짜 방구석에 처박히면 우리가 더 곤란해. 삼십 년이라잖아, 삼십 년. 당신은 지금 그게 걱정이야? 당연히 걱정이지. 우리 노후는 누가 책임지는데. 두 사람이 눈빛으로 다투는 사이, 도현은 서류를 다시 내밀었다. 가만히 서류만 흔들었다. 조용히. 이건우가 한숨을 쉬며 펜을 들었다. 딱 한 번만이야.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그만두는 거다. 네, 네. 도현이 서명받은 서류를 낚아채듯 챙겼다. 입꼬리가 이미 올라가 있었다. 이건우가 뒤에서 뭐라고 잔소리를 더 얹었지만, 도현의 귀에는 절반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이미 게이트 생각뿐이었다. * 자격시험은 간단했다. 이론 시험 하나, 실기랍시고 하는 체력 테스트 하나. 이론 시험은 게이트 등급 구분법과 초보자 안전 수칙, 귀환석 사용법 같은 걸 묻는 문제였다. 도현은 문제를 읽는 둥 마는 둥 답을 체크했다. 답이 뭔지 다 알고 있었다. 어차피 상식 수준이었다. 체력 테스트는 오십 미터 달리기와 제자리멀리뛰기, 악력 측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감독관이 스톱워치를 든 채 도현을 힐끗 쳐다봤다. 기록 좋네요. 감독관이 중얼거렸다. 도현은 대답 없이 씩 웃기만 했다. 몸이 예전보다 가벼웠다. 게임 속에서 상승한 스탯이 실제로도 반영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 몸, 쓸 만하다.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눈앞에 문구가 떴다. [탐험자 등록 완료.] [초보 탐험자 자격 부여.] [강남 게이트 진입 권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거지. 도현은 곧장 게이트로 향했다. * 강남 게이트는 처음 봤던 균열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원래 도로였던 자리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위로 검은 테두리와 보라색 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주변엔 철제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인력이 출입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탐험자 등록증 확인하겠습니다. 관리인이 손을 내밀었다. 도현이 폰 화면을 보여줬다. 이도현 님, 초보 탐험자시네요. 오늘 첫 진입이신가요. 네. 주의사항 안내드립니다. 초보 탐험자는 게이트 1층에서만 활동 가능하시고, 위험 상황 발생 시 즉시 귀환석을 사용해주세요. 무리한 전투는 절대 금지입니다. 규정 위반 시 자격 박탈됩니다. 관리인이 손바닥만 한 돌덩이를 건넸다. 도현이 그걸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거 쓰면 그냥 여기로 돌아오는 거예요? 네. 발동하는 순간 즉시 귀환됩니다. 단, 재사용까지 하루 걸립니다. 하루씩이나. 도현이 미간을 좁혔다. 주변에 다른 신참 탐험자들도 줄지어 서 있었다. 다들 얼굴에 긴장이 서려 있었다. 누군가는 다리를 떨었고, 누군가는 계속 물을 마셨다. 한쪽에 서 있던 남자는 손에 든 방망이를 몇 번이나 고쳐 쥐었다. 도현은 그들과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 관리인이 그 표정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학생, 처음이라면서요. 안 무서워요? 뭐가요. 관리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들어가시죠. 관리인이 게이트를 향해 손짓했다. 도현이 걸음을 옮겼다. 검은 테두리 속 보라색 안개를 향해. 주변의 다른 신참들이 하나둘 뒤따랐다. 그중 한 명이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 듯 보였다. 렌즈 뚜껑을 열며 도현 쪽을 슬쩍 훑었다. 저 학생 눈빛 좀 이상한데.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도현에게 다가와 렌즈를 들이밀었다.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첫 진입 소감이라던지. 없어요. 도현이 딱 잘라 말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내렸다. 도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게이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야가 뒤틀렸다. 빛이 사라지고,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발밑으로 느껴지던 아스팔트 감촉이 순식간에 흙바닥으로 바뀌었다. 코끝에 낯선 냄새가 스쳤다. 습한 흙과 알 수 없는 초록빛 식물의 냄새. 눈앞에 새로운 문구가 떴다. [던전 '강남 게이트 1층'에 진입하셨습니다.] [초보 탐험자 클래스가 배정됩니다.] 도현의 심장이 뛰었다. 뭐가 나올까. 전사면 좋고, 마법사면 더 좋고. 하다못해 궁수라도. 기대감으로 가득한 순간, 눈앞에 클래스명이 떠올랐다. [배정된 클래스: 견습 채집꾼] 도현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잘못 뜬 거 아니냐. 혼잣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주변에 있던 다른 신참들의 눈앞에도 각자 다른 문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누군가의 얼굴엔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도현은 자신의 눈앞에 뜬 문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견습 채집꾼. 숨 한번 크게 들이켰다. 농담이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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