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레벨업 중독 헌터

2화

거실 텔레비전이 저녁 내내 같은 화면을 반복했다.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 초자연적 균열 발생.] [정부, 긴급 대응반 편성.] [전문가들 "차원 균열로 추정, 유사 사례 전 세계 12건 보고".] 화면 아래 자막이 초 단위로 바뀌었다. 앵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박선희는 리모컨을 든 손을 떨었다. 손가락 끝이 채널 버튼 위에서 몇 번이나 헛돌았다. 이건우는 팔짱을 낀 채 화면을 노려봤다. 식탁 위 국그릇에서 김이 올라오다 말고 식어갔다. 너 아까 거기 있었다며. 이건우가 도현을 향해 물었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네. 도현이 짧게 답했다. 숟가락을 든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왜 거길 가. 박선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냥 궁금해서. 도현이 밥을 한 술 떠먹었다. 씹는 속도도 그대로였다. 박선희가 도현의 얼굴을 살폈다.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눈빛이었다. 도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밥그릇만 내려다봤다. 뉴스 화면이 바뀌었다. 서울 다른 구에서도 비슷한 균열이 두 곳 더 발견됐다는 자막이 떴다. 부산에서도 하나. 대구에서도 하나. 앵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카메라가 흔들리는 헬기 영상을 잡았다. 검은 균열 주변으로 폴리스라인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몰려 있는 모습도 잡혔다. 박선희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거 전쟁 나는 거 아니야.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이건우가 아내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아니야, 이거 곧 정리될 거야. 도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숟가락을 국그릇에 담갔다가 다시 뺐다. 이건우가 도현을 쳐다봤다.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도현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딱, 소리가 났다. 곧 정부에서 탐험자 자격증 발급할 거야. 던전 안에서 몬스터 잡으면 보상 나오고. 유튜브에도 벌써 영상 올라오기 시작했어. 박선희와 이건우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아. 이건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뉴스 보면 다 나와. 도현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커뮤니티 캡처 화면들이 빠르게 넘어갔다. 균열 사진. 몬스터 목격담.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실루엣이 찍힌 흐릿한 사진들. 탐험자라는 단어가 벌써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이건우가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 이런 걸 언제 이렇게 많이 찾아봤어. 궁금하니까요. 도현이 휴대폰을 내려놨다. 실제로는 도현이 이미 다 겪어본 감각이었다. 게임 속에서 수백 번 반복했던 흐름. 새로운 콘텐츠가 열리면, 사람들은 처음엔 겁내고 그다음엔 몰려든다. 그 다음엔 등급이 나뉜다. 상위 랭커들이 초반 자원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뒤늦게 뛰어들어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다. 도현은 그 순서를 눈 감고도 말할 수 있었다. 몇 번째 사이클인지도 헤아릴 수 있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고. 박선희가 도현의 팔을 잡았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알아. 도현이 팔을 뺐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동작이었다. 그래도 규칙은 똑같아. 무슨 규칙.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거. 박선희의 손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무릎 위로 툭, 떨어진 손이 그대로 굳었다. 이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숨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너 설마 저기 들어가겠다는 소리를 하는 거냐. 들어갈 거예요. 도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미쳤어. 이건우의 목소리가 커졌다. 식탁을 손바닥으로 쳤다. 수저 몇 개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거기 사람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몰라. 알아요. 그런데 왜. 왜냐면. 도현은 잠시 말을 골랐다. 수영장 물 냄새가 코끝을 스치듯 지나갔다. 염소 냄새와 젖은 타일 바닥. 코치가 그만두라고 했던 그날의 표정도 함께 떠올랐다. 넌 여기까지야.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박혀 있었다. 거긴 노력한 놈이 이겨요. 이건우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간이 좁아졌다. 노력이 왜 갑자기 거기서 나와.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선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도현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확신에 차 있었다. 마치 이미 다 정해진 미래를 말하듯이. 수능 성적표를 받았을 때도, 대학을 자퇴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저런 눈빛은 아니었다. 너 뭔가 숨기는 거 있지. 박선희가 조용히 물었다. 없어요.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거짓말이었다. 숨긴 게 있었다. 그 쾌감. 몸속을 훑고 지나간 그 짜릿함. 균열 안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베어냈을 때의 감각. 손끝에서부터 등줄기까지 타고 오르던 그 떨림. 그건 아직 아무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도현의 등을 두 사람이 오래 바라봤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탁. 박선희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 애가 갑자기 왜 저렇게 변했지. 이건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식탁 위 반찬들만 멍하니 내려다봤다. 두 사람 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같은 화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균열, 균열, 균열. 방 안에서 도현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상태창을 열어봤다. 레벨, 숙련도, 스킬 목록이 눈앞에 떠 있었다. 이게 진짜라는 게 아직도 낯설었다. 동시에 이보다 확실한 것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뉴스 속보가 다시 울렸다. [탐험자 자격시험, 오는 주말 서울 전역 5개 고사장에서 접수 시작.] 도현의 손가락이 이미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화면에 접수 완료 문구가 떠올랐다. [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도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제 시작이었다. 거실에서 박선희와 이건우가 뉴스를 보며 나누는 대화 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왔다.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휴대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접수 번호 옆에 뜬 시험 일정을 확인했다. 사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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