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또각, 또각.
계단 위쪽에서 들려온 그 발소리는 분명 인간의 것이었는데, 도윤은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몸 뒤로 숨겼다.
'설마 누가 본 건가?'
짧은 순간 온갖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아니면 이 던전 자체를 관리하는 어떤 조직이 있어서 그들에게 발각된 건 아닌지, 도윤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온갖 파국의 시나리오로 가득 차버렸는데, 그 짧은 사이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계단 아래로 얼굴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아영이었고, 도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내쉬었다.
"뭐 해?"
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 갑주 같은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고, 도윤은 얼른 카메라를 등 뒤로 완전히 숨긴 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잠이 안 와서."
거짓말이 서투른 도윤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는데, 다행히 아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영은 인간형일 때도 그 눈빛만은 묘하게 다른 존재의 느낌을 풍겼는데, 동공 깊숙한 곳에서 반사되는 은은한 광채가 형광등 불빛 아래서 잠깐 반짝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늦었는데 얼른 자."
짤막한 그 말을 남기고 아영이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도윤은 등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내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
***
다음 날부터 도윤은 본격적으로 채널을 개설했는데,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던전지기_도]라는 다소 심심한 이름으로 계정을 만든 그는, 프로필 사진도 없이 배경도 대충 기본 설정 그대로 놔둔 채, 어젯밤 찍었던 통로 영상을 조심스럽게 편집해 첫 업로드를 시도했다. 편집이라고 해봤자 흔들리는 화면을 자르고 앞뒤로 몇 초씩 다듬는 수준이었지만, 도윤은 그마저도 몇 시간을 붙잡고 씨름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조회수 3, 그중 2는 자기 자신이 확인한 것이니 사실상 조회수 1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역시 이렇게 쉽게 될 리가 없지.'
도윤은 낙담한 채로 다른 인기 채널들의 영상을 참고삼아 살펴보았는데, 대부분의 인기 던전튜버들은 몬스터와의 전투나 화려한 아이템 발견 같은 자극적인 장면을 앞세우고 있었으며, 자신처럼 그저 조용한 통로를 찍는 영상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특히 구독자 수백만을 자랑하는 한 채널은 몬스터의 사체를 해체하는 장면까지 클로즈업하며 조회수를 긁어모으고 있었는데, 도윤은 그 영상을 보다가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끼며 얼른 창을 닫아버렸다.
'그렇다고 몬스터랑 싸우는 걸 찍을 수는 없잖아.'
도윤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고, 무리하게 던전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본전도 못 찾는 상황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지하에 있는 그 던전이 얼마나 깊은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도윤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며칠간 이런저런 방향을 고민하며 방과 후마다 몰래 촬영을 이어갔지만, 조회수는 여전히 두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고, 도윤의 마음속에는 점점 초조함이 쌓여갔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요즘 인기 있는 던전튜버 얘기를 할 때마다 도윤은 괜히 뒷목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자신이 그 바닥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게 은근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도윤은 거실에서 카메라를 세팅해두고 지하로 이어지는 문 근처의 발광 식물을 클로즈업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 순간 부엌 쪽에서 나온 아영이 무심코 프레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헉!'
도윤은 화들짝 놀라며 카메라 각도를 바꾸려 했으나, 그 짧은 순간 화면에는 아영의 옆모습과 각진 갑주 자락이 선명하게 잡히고 있었다.
"어, 어어!"
도윤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 렌즈를 가리는 사이, 아영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아, 아니 그게···."
도윤은 이마에 배어 나온 땀을 훔치며, 결국 그동안 숨겨왔던 던전튜브 이야기를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처음 산 이유부터, 몰래 통로를 찍고 편집해서 올렸던 일까지 하나씩 털어놓는 도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는데, 처음에는 아영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의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이 던전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그걸로 돈을 번다는 거지?"
"어, 그런 셈이지. 근데 조회수가 너무 안 나와서···."
도윤이 힘없이 대답하자, 아영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눈매를 좁히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내가 나가면 어때?"
"뭐?"
도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는데, 아영은 이전보다 한층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영상에 나가보고 싶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영이 화면에 나온다고?'
도윤은 순간 아영의 본모습을 떠올리며 조마조마해졌는데, 인간형일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만약 그녀가 흥분하거나 방심하는 순간 거미의 본모습이 슬쩍 드러난다면 이 모든 균형이 단숨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아영이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도윤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건··· 위험할 수도 있어."
도윤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하자, 아영은 오히려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조심할 수 있어. 그리고 나도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그 눈빛에 담긴 진지함과 간절함을 마주한 도윤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일단 한번 해보자. 대신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음 촬영에서 도윤은 아영을 살짝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편집 계획을 세웠는데, 얼굴은 흐릿하게 처리하고 뒷모습이나 손끝 정도만 슬쩍 비추는 식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려 했다. 촬영 전날 밤, 도윤은 편집 프로그램의 모자이크 기능과 음성 변조 기능까지 미리 시험해보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데, 혹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아영의 이질적인 부분이 그대로 노출될까 봐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그러나 아영은 카메라 앞에 서자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태도로 통로의 발광 식물을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손끝으로 식물의 잎을 살짝 건드리며 "이건 빛을 흡수해서 다시 뿜어내는 거야"라고 담담하게 읊는 모습은, 그 담담하면서도 이질적인 목소리와 태도가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할 만한 요소가 되었다. 도윤은 카메라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영의 목소리가 마치 오랫동안 이 던전에서 살아온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무게감을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영상을 올린 그날 밤, 도윤은 초조하게 새로 고침을 반복하며 조회수 창을 지켜보았는데, 처음 한 시간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어 도윤의 기대감이 조금씩 사그라들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자정을 넘기자 숫자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도윤은 침대에 누워서도 잠들지 못한 채 몇 번이나 휴대폰을 다시 켰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도윤의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커졌다.
조회수 1,200.
어제까지의 처참한 성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숫자였고, 댓글창에는 [저 사람 정체 뭐임 ㄷㄷ], [목소리 톤 특이하다], [이거 코스프레인가 진짜 갑주인가], [던전에서 저런 갑옷 입고 다니는 게 말이 되나] 같은 반응들이 빠르게 쌓여가고 있었다.
'이거··· 진짜 되는 건가?'
도윤의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는 저도 모르게 방 안에서 조용히 주먹을 쥐어 보이며 자축했다. 며칠 동안의 낙담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고, 어쩌면 이 채널이 정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곧이어 댓글 하나가 눈에 걸리며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04:12초쯤에 잠깐 그림자가 이상하게 늘어나는데 저거 CG인가요?]
도윤은 그 댓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서둘러 영상을 다시 재생시켜 해당 시간대로 넘어가자, 화면 한쪽 구석에서 아영의 뒤편으로 길게 늘어진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그것은 분명 사람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설마···.'
도윤의 손끝이 마우스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