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구독자 0, 우리 집은 던전

1화

한빛고등학교 2학년 3반 교실의 오후는 언제나 이도윤에게만 유독 느리게 흘렀는데,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그의 시선은 칠판이 아니라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자기 자신의 흐릿한 그림자에 가 있었고, 주변에서 왁자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그를 스쳐 지나갔다. '또 저러네.' 앞줄에서 박준서가 휴대폰을 슬쩍 들어 보이며 몇몇 아이들에게 뭔가를 자랑하듯 떠벌리고 있었는데, 도윤은 그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만큼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눈에 익었다. '저런 애들이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하는 거지. 만약 내가 뭘 숨기고 있는지 알게 되면, 저 표정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도윤은 이내 고개를 저었는데, 부질없는 상상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칠판 앞에서 선생님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도윤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과,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후배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도윤이 가장 갈망하는 것도 바로 저런 평범함이었다.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우르르 자리를 벗어났고, 도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가방을 챙기며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그 시간을 오히려 편안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학습한 생존법이었다. 존재감을 지운다. 말을 걸지 않으면 대답도 하지 않고, 시선을 주지 않으면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그렇게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것. 무리에서 밀려난 학생, 무능하고 소외된 학생이라는 이미지는 사실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방패였는데, 그 방패 뒤에 숨겨야 할 것이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복도를 걸어 나가는 동안에도 도윤은 습관처럼 발소리를 죽였는데, 이것 역시 무의식중에 몸에 밴 버릇이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조차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지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집에는 던전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세대주택치고는 유난히 넓은 마당 한구석에 자리 잡은 창고 건물의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에, 도윤 자신조차 처음 발견했을 때 손끝이 떨려올 만큼 이질적인 균열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균열 너머로는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부모는 몇 해 전 지방으로 내려가며 이 집을 도윤에게 맡겼고, 도윤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이 위태로운 균형을 지탱해왔는데, 만약 이 비밀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자신의 삶 전체가 뿌리부터 뒤흔들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늘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것이 도윤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남들처럼 학교에 가고, 시시한 잡담을 나누고, 저녁에는 가족과 밥을 먹는 그런 삶. 그러나 그의 집 지하에는 몬스터가 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이 지내는 존재인 아영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는 있었으나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도윤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들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의 집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기척을 느꼈는데, 부엌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아영이 또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왔어?" 검은 머리를 단정히 넘긴 여성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흘러나왔고, 도윤은 신발을 벗으며 짧게 대답했다. "응, 다녀왔어." 아영은 갑주처럼 각진 형태의 검은 옷을 걸친 채로 뒤돌아 그를 맞이했는데, 그 단단한 겉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표정만큼은 언제나 순박하고 진지했으며, 그녀가 내미는 접시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놓여 있었다. "오늘은 좀 다르게 해봤어. 맛이··· 괜찮을 거야." 아영의 말투는 언제나처럼 조심스러웠는데, 그녀 나름대로는 도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도윤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음식이라는 것이 그녀에게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었을 텐데도,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그 태도만큼은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윤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맛은 둘째 치고, 일단 먹어야겠지.' 한 입 떠서 넣어보니 예상외로 나쁘지 않은 맛이었는데, 이상한 향이 살짝 감돌긴 했으나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도윤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영은 그 반응을 살피며 조금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영의 본모습은 거대한 거미였는데,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도윤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녀의 존재가 이 위태로운 이중생활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몇 마디를 더 나누는 동안, 아영은 오늘 하루 던전 안쪽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들려주었는데, 낮은 등급의 몬스터 몇 마리가 새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며, 발광 식물이 어느 구역에서 유독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도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이질적인 세계와 맞닿아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곤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도윤은 방으로 들어가 낡은 노트북을 열었는데,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습관처럼 인터넷을 뒤적이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무심히 훑어보다가, 도윤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걸린 것이 있었다. '던전튜브?' 생소한 이름의 플랫폼이었는데, 배너에 걸린 문구를 읽어 내려가던 도윤의 눈이 점점 커졌다. [당신의 던전을 공개하세요. 시청자들이 열광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자극적인 광고성 문구라고 여겼으나, 몇 개의 영상을 클릭해 살펴보던 도윤은 그것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화면 속에는 실제로 몬스터가 등장하고, 위험천만한 지하 공간이 펼쳐졌으며, 그 아래 달린 조회수와 후원 금액은 상상 이상의 규모였다. '이게… 진짜라고?' 도윤은 마우스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화면을 더욱 파고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 세계 어딘가에는 도윤의 집처럼 던전이 존재하는 가정이 드물지 않게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그 던전을 촬영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개의 영상을 더 클릭해보니, 어떤 이는 던전 안쪽에서 채집한 희귀한 광석을 화면에 자랑스럽게 비추며 후원을 유도했고, 또 어떤 이는 직접 몬스터와 대치하는 위태로운 순간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며 시청자들의 탄성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 영상들의 조회수는 수십만을 넘어섰고, 후원 금액을 알리는 숫자는 도윤이 상상해본 적 없는 액수였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얼마를 버는 거지···' 도윤은 댓글창을 훑어보았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열광적이었다. 몬스터의 생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던전의 구조를 분석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단순히 그 신비로운 광경에 감탄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거라면··· 평범하게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생각이 들자마자 도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지금, 이 위험한 비밀을 오히려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그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일단은 아영에 대한 부분은 최대한 감춰야 해. 사람들이 보면 몬스터라는 걸 바로 알아챌 테니까. 그러니 처음에는 던전 입구 쪽만, 그냥 지형이나 구조만 살짝 보여주는 게 좋겠지.' 도윤은 그렇게 계획을 세우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는데, 손끝은 이미 다음 영상을 클릭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그는 화면 속 세계에 빠져들었고, 그럴수록 이 위태로운 비밀이 어쩌면 자신의 삶을 바꿔줄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확신이 점점 짙어졌다. 그날 밤, 도윤은 낡은 캠코더를 창고 구석에서 꺼내 들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그것은 예전에 부모가 쓰던 것이었는데, 배터리가 남아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일단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삐빅. 전원이 들어오는 소리에 도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지하 계단을 향해 발을 옮겼는데, 균열 너머의 공간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 여겨 일단 입구 쪽 통로만 촬영하기로 마음먹었다. 계단은 낡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발을 옮길 때마다 미세하게 삐걱거렸는데, 그 소리마저도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다. 도윤은 혹시나 아영이 자고 있을까 싶어 발걸음을 더욱 조심스럽게 옮겼다. 렌즈를 통해 비치는 어둑한 통로와, 벽면을 따라 이끼처럼 자라난 이질적인 발광 식물들이 은은한 초록빛을 내는 광경은 그가 매일 보던 것이었지만, 화면 안에 담기니 낯설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괜찮은 시작이 될지도.' 도윤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통로의 구석구석을 담았고, 처음 시도하는 촬영임에도 손끝에서 묘한 흥분이 번져오는 것을 느꼈다. 렌즈 너머로 비치는 균열의 가장자리는 마치 유리가 깨진 듯한 불규칙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틈새로 흘러나오는 옅은 냉기와 함께 이질적인 공기의 흐름이 피부에 와닿았다. 도윤은 그 감각을 카메라가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각도를 조금씩 바꿔보았다.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라도 시작해보는 거야. 후원이라도 조금 들어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텐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며 카메라를 움직이는 동안, 도윤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옅은 미소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의 삶을 바꿔줄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또각, 또각. 계단 위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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