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삼십 년 만의 귀환자

3화

지은은 방 한가운데 서서 편지를 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촛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그녀의 실루엣만 흐릿하게 보였다. "무슨 일이야?" 서연이 촛대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성냥 긋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지은은 대답 없이 편지를 침대 위에 던졌다. 낡은 침대보 위로 하얀 종이가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나는 그 편지를 집어 들었다. 두꺼운 재질의 종이였고, 모서리에는 금박이 살짝 벗겨져 있었다. 교회 인장이 찍혀 있었고, 글씨는 정갈했지만 내용은 차가웠다. 붉은 밀랍 도장 아래로 검은 잉크 글씨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지은에게 교회로 돌아와 헌금의 절반을 바치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뭐야, 헌금?"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졌다. "교회가 나를 키워줬으니까 은혜를 갚으라는 거야." 지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조사단 급여의 절반을 바치라고, 안 그러면 힐러 자격을 취소하겠대." 서연이 편지를 낚아채 읽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편지를 촛불 가까이 가져가 한 줄 한 줄 다시 읽었다. "이거 완전 갈취잖아." "교회 소속 힐러들은 다 이래." 지은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거절하면 자격이 박탈돼. 그럼 조사단에서도 쫓겨나." 나는 편지를 다시 읽었다. 숫자가 명확했다. 조사단 급여의 절반, 매달. 한 달에 지은이 받는 돈은 은화 서른 냐프였고, 그중 절반이면 열다섯 냐프밖에 남지 않았다. 방세가 여덟 냐프, 식비가 다섯 냐프쯤 든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계산은 금방 끝났다. '이건 아니잖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은이 받는 돈은 원래도 적었는데, 그걸 반으로 나누면 밥값도 안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서연도 같은 계산을 했는지 편지를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러면 굶어 죽으라는 소리잖아." 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방 안을 채웠다. 다음 날, 나는 조성재를 찾아갔다. 조사단 본부 이층, 서류 더미로 가득한 그의 사무실은 늘 그렇듯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조사단 명의로 지은 편이 되어줄 수 없나요?" 내가 물었다. 조성재는 서류를 훑어보다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그의 안경 너머로 무심한 눈빛이 스쳤다. "교회 문제에 조사단이 왜 끼어?" 그가 되물었다. "지은 씨는 조사단 소속이잖습니까." 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의 책상 앞에 계속 서 있었다. 조성재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펜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한 번 쳐다봤다. "내가 편지 하나 써줄게. 조사단 소속 인력은 외부 압박에서 보호한다고." 그가 순순히 그렇게 말한 게 의외였다. 나는 예상보다 쉽게 승낙이 나온 것에 오히려 의심이 들었다. "그냥, 인력 손실 나면 골치 아프니까." 그가 덧붙였다. 그는 서류에 서명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요즘 힐러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걔 하나 뺏기면 나만 손해야." 나는 그 말이 배려가 아니라 계산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쨌든 도움이 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서명이 끝난 문서를 받아들고 나는 곧바로 방을 나섰다. 일주일 후, 교회 사자가 다시 찾아왔다.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였고, 손에는 지난번과 똑같은 문양의 봉인이 찍힌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서부터 위압적인 태도로 지은의 이름을 불렀다. 조성재의 서명이 담긴 문서를 보여주자 그는 인상을 쓰며 물러났다. 그는 서류를 몇 번이나 다시 훑어보더니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발소리가 계단을 따라 멀어지는 걸 우리 셋 다 숨죽인 채 듣고 있었다. 지은은 그날 밤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끝은 차가웠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고마워, 준하야." 그녀가 말했다. "네가 나서줄 줄 몰랐어." "당연히 나서야지." 내가 대답했다. 나는 괜히 말을 얼버무리며 다른 곳을 쳐다봤다. 서연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지켜보다가 웃었다. "너 생각보다 의리 있네."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웃음에는 장난기와 함께 약간의 안도가 섞여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 셋은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밤마다 좁은 방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서연은 자기 가문이 왜 몰락했는지 처음으로 자세히 이야기해줬다. 원래 남작가였는데, 아버지가 마족과의 전쟁에서 패퇴한 책임을 지고 몰락했다고 했다. 영지 이백 헥타르가 하루아침에 왕실에 몰수되었고, 남은 재산은 빚을 갚느라 다 흩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난 무조건 성공해야 해." 서연이 말했다. "가문을 다시 세워야 하니까." 그 말을 할 때 서연의 눈빛이 유난히 단단해 보였다. 나는 그 눈빛을 그냥 야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때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지은은 교회에서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 "난 부모가 누군지도 몰라. 교회 앞에 버려졌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다섯 살 때부터 청소랑 심부름을 했어. 힐링 마법을 배운 것도 은혜 갚으라는 명목이었고." 그녀는 손끝으로 침대보의 실밥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거부하면 안 된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두 사람에게 이제는 내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서연이 문득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넌 왜 아직 네 얘기 안 해?" 촛불이 흔들리며 서연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은도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나에게 꽂혔고,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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