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폐건물은 오래된 상가였다. 사거리 코너에 붙어있던, 한때는 분식집이었을 법한 자리였다. 셔터가 반쯤 내려앉아 있었고, 그 아래로 몸을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나 있었다. 틈으로 코를 들이밀자 곰팡이와 젖은 종이 냄새가 확 끼쳤다. 이 냄새만으로도 등급이 낮을 리 없다는 걸 알아야 했는데, 그때는 그냥 낡은 건물 냄새라고만 생각했다.
손전등은 집에 두고 왔다. 스마트폰 플래시로 대신했다. 액정 화면 위쪽에는 조합 앱이 떠 있고, 그 밑으로 임무 카드가 접혀 있었다. '지하 1층 이상 이동 통제선', '단순 확인 후 즉시 철수'. 굵은 글씨로 두 번이나 강조되어 있었다. 담당자가 친절하게 웃으며 이 카드를 건네줄 때, 나는 그 웃음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웃음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셔터 안으로 들어서자 발밑에서 유리 조각이 서걱거렸다. 조심스럽게 걸었는데도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런 데서는 발소리 하나로도 존재감을 다 들켜버린다. 나는 숨을 죽이고 한 걸음씩 옮겼다.
가게 안쪽 깊숙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 입구에서 잠깐 멈췄다. 계단 아래는 완전한 어둠이었고, 플래시 불빛이 닿는 데까지도 그 어둠을 다 밀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뭔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느낌이 있었다. 귀로 듣는 소리는 아니었다. 발바닥으로, 정확히는 뼈로 전해지는 진동이었다.
가야 하나. 여기서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스마트폰 화면에 알림이 떴다.
[경고: 위험도 산정 오류 감지]
F등급이라던 서류가 무색해지는 문장이었다. 나는 화면을 다시 눌러봤다. 오류가 뜬 게 오류인가 싶어서. 하지만 문구는 그대로였고, 심장은 벌써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돌아갈까.
솔직히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런데 오만 원이 아까웠다. 이 임무 하나에 오만 원. 지하실 확인만 하고 나오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이 급하면 이렇게 멍청해진다. 월세도 밀렸고, 조합에서 받은 선지급금은 벌써 편의점 삼각김밥값으로 다 나갔다. 오만 원이면 이번 달 통신비는 해결이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계단이 조금씩 울렸다. 낡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지하는 넓은 창고였다. 천장이 낮아서 허리를 살짝 굽혀야 했고, 기둥이 여러 개 규칙적으로 서 있었다. 기둥마다 낡은 봉인지가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종이가 반쪽씩 뜯겨 나가 있었다. 누군가 이미 손을 댔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최근에.
나는 플래시를 기둥 하나하나에 비춰가며 걸었다. 봉인지 뜯긴 자국이 하나가 아니었다. 전부였다. 이 정도면 최소한 서너 번은 누가 다녀갔다는 얘기였다. 조합에서는 이걸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나한테 안 알려준 걸까.
창고 한가운데, 검은 안개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짙은 그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플래시를 정면으로 비추자 안개가 빛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빛이 통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뭉개졌다.
안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천천히 소용돌이쳤다. 시계 방향으로, 아주 느리게,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F등급 습격의 흔적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규모였다. F등급이면 이 정도 크기가 아니라 손바닥만 한 얼룩 정도여야 정상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몇 자릿수는 위였다.
"이게 무슨 정찰이야, 이건."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목소리가 창고 안에서 이상하게 울렸다. 나는 그 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스마트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알림이 아니라 문자였다. 이단풍이었다.
[미안, 그 건물 나도 방금 알았어. 원래 조합에서 상급 습격지로 분류했던 곳인데 등급을 낮춰서 배정한 거 같아. 빨리 나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정보를 숨긴 채 나를 밀어 넣은 거였다. 담당자의 매끄러운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웃음이 너무 과했던 거, 오만 원치고 조건이 너무 좋았던 거, 다른 지원자들이 아무도 이 임무를 안 받겠다고 했다는 거.
이런 미친.
이단풍한테 답장을 보낼 시간도 아까웠다.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섰다. 계단까지는 열 걸음도 안 됐다. 뛰면 금방이었다.
그 순간, 검은 안개가 폭발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콰앙, 하는 소리가 창고 전체를 흔들었다. 기둥 하나가 무너지며 먼지가 확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낮춘 자세는 유지했다. 이럴 때 서 있으면 표적이 되기 쉽다는 건 게임 지식으로도, 상식으로도 알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거대한 짐승의 실루엣, 그림자로만 이루어진 몸통에 붉은 눈 두 개가 떠 있었다. 눈만으로도 사람 몸통만큼 컸다. 그 눈이 뜨는 순간, 창고 안의 공기가 통째로 무거워졌다. 마치 압력이 달라진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이건 F등급이 아니었다.
이건 게임 설정상 최상급 보스몹이었다. 이름까지 기억났다. 묵영. 수백 년 봉인된 고대 종마. 게임 안에서는 레이드 파티 삼십 명이 붙어야 겨우 잡던 놈이었다. 그것도 몇 번씩 전멸한 다음에나.
여기 왜 있는 건지, 왜 하필 나한테 걸린 건지 따질 겨를이 없었다. 도망쳐야 했다. 다리가 풀리는 감각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몰려왔다. 몸이 두 방향으로 잡아당겨지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짐승의 낮은 울음이 울렸다. 낮고 긴 소리였는데, 그 소리가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벽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비처럼 쏟아졌다. 나는 앞으로 몸을 던졌다. 계단을 향해서.
발을 헛디뎌 무릎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통증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손바닥도 같이 긁혔는지 뭔가 따가운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도 나중 문제였다.
계단 입구까지 몇 걸음 남지 않은 순간, 붉은 눈 두 개가 정확히 나를 향해 돌아갔다.
시선이 마주쳤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표적이 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 확실히 알았다. 저게 나를 보고 있다는 걸.
[대상 특정: 유하린]
스마트폰 화면에 뜬 알림을 볼 겨를도 없이, 거대한 그림자 앞발이 내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림자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수 있는 건지 그날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