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서준혁이 팔짱을 낀 채 몇 초쯤 나를 봤다.
시간이 이상하게 늘어졌다. 초침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정적이었다.
방 안이 조용했다. 오세연 팀장도, 다른 면접관들도 서준혁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붙였다. 다들 서류철만 만지작거리면서 눈은 서준혁 쪽으로 슬쩍슬쩍 굴리고 있었다. 대표라는 사람이 저렇게 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등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진다. 뭘 이기고 지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감이 왔다.
"이름이."
서준혁이 물었다.
"강도윤입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게 신경 썼다. 이 몸으로 산 지 며칠도 안 됐는데 목소리 관리까지 해야 한다니.
"강도윤 씨."
그가 이름을 곱씹었다. 뭔가 확인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마치 이름표를 하나씩 손끝으로 짚어보듯이.
"프로필 사진이랑 다르네요."
또 그 얘기.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번엔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서준혁이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 말투가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성전환을 코앞에서 목격한 사람의 반응이라기엔 지나치게 차분했다.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설마 알고 있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아무리 대단한 대기업 대표라도 사람 몸이 바뀌는 걸 미리 알 방법은 없다. 상식적으로.
그런데 저 눈빛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채용하겠습니다."
서준혁이 말했다.
면접실 안이 순간 얼어붙었다. 오세연 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대표님, 아직 다른 지원자분들 면접도……"
"강도윤 씨는 오늘부터 계약직으로 채용합니다. 매니지먼트 서포트 역할로."
서준혁이 딱 잘라 말했다. 반박할 여지를 두지 않는 어조였다. 옆에 앉은 면접관 하나가 슬쩍 손목시계를 보다가 얼른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아무도 이 상황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건은 서류로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좋아.
일단 채용은 됐다. 근데 이유가 하나도 안 밝혀졌다.
이게 문제였다. 취업 자체는 나쁠 게 없다. 당장 갈 곳도 없고, 돈도 없고, 이 낯선 몸으로 어디 붙어살 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유 없는 호의는 항상 뭔가 붙어 있다. 특히 대기업 대표라는 인간이, 프로필 사진과 다른 얼굴을 코앞에서 보고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채용을 결정하는 상황이라면.
"왜 저를."
내가 물었다. 실무 능력을 보고 뽑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저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사람을 뽑는 눈이 아니라 뭔가를 확인하는 눈이었다.
서준혁이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짧게 웃었다.
웃는 것도 이상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고 눈은 그대로였다.
"직감입니다."
그거밖에 안 말해줬다.
직감. 그 두 글자로 사람 하나를 즉석에서 채용한다고? 나 같으면 최소한 자격증이나 경력이라도 물어봤을 텐데, 저 인간은 그런 거 아무것도 안 물어봤다. 이름 확인, 사진 대조, 그리고 끝.
더 캐물으려는데, 오세연 팀장이 서둘러 서류를 정리하며 회의실 분위기를 정상으로 돌리려 애썼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계약서는 인사팀에서……"
"제가 직접 처리하죠."
서준혁이 말했다. 팀장 눈이 살짝 커졌지만, 대표가 하겠다는 걸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 말에 팀장이 나를 한 번 힐끔 보더니, 뭔가 알겠다는 듯 옅게 웃었다. 저 웃음의 의미는 또 뭔지 모르겠다. 원래 저런 사람인가, 아니면 나한테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저런 반응을 하는 건가. 이 회사, 알아갈수록 정상적인 곳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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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파랬다.
복도 조명 아래서 보니 얼굴색이 더 확실히 드러났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마치 방금 뭔가 크게 놀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은인님."
환이 다가와서 소매를 붙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손끝이 얼음장 같았다.
"뭐야, 왜 그래."
"드릴 게 있습니다."
환이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냈다. 부적처럼 생긴 노란 종이였는데,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한자인지 뭔지, 처음 보는 문양들이 종이 가득 뒤엉켜 있었다.
"이게 뭔데."
"몸이 다시 돌아올 때 대비하는 겁니다."
"돌아올 때."
그 말이 걸렸다. 지금 상황에서 제일 궁금한 부분이었다. 이 몸으로 계속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언젠가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지. 그것도 모른 채로 이렇게 취업까지 해버렸다.
"안 돌아오면."
환이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피한다는 것 자체가 답이었다. 확신이 있으면 눈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럴 리는 없다는 게 확신이야, 소망이야."
아까 했던 질문을 그대로 반복했다. 환이 이번엔 대답을 못 했다.
망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몸이 언제 돌아올지, 애초에 돌아올 수 있는지조차 저 애도 모르고 있었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애가, 정작 제일 중요한 부분에서 아무것도 확신 못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가 찼다. 그렇다고 지금 화를 낸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환."
내가 낮게 불렀다.
"그 병에 든 거, 진짜 뭐야."
환이 입술을 깨물다가 겨우 대답했다.
"……오래된 것입니다. 저희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지던 것이고, 원래는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문."
이 단어가 나오니 갑자기 스케일이 커졌다. 이제 보니 단순한 사고나 실수가 아니라, 뭔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배경이 있는 사건이었다.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환이 말을 흐리며 뒤를 돌아봤다. 마치 누가 오는 걸 느낀 것처럼. 목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서 대표님이 부르십니다."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서준혁이 복도 끝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거리가 있었는데도 그 시선이 정확히 나한테 꽂혀 있는 게 느껴졌다. 저 인간, 대체 뭘 알고 있는 건가.
환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저 사람, 위험한 사람이야?"
내가 물었다.
환이 대답 대신 노란 종이를 내 손에 꾸겨 넣었다. 손바닥에 닿는 종이 질감이 이상하게 서늘했다. 그냥 종이가 아닌 것 같았다.
"급할 때 쓰세요."
그 말만 남기고 환은 대기실 쪽으로 사라졌다. 뒷모습이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손에 쥔 종이를 내려다봤다. 빽빽한 글자들 사이로, 뭔가 낯익은 듯한 문양 하나가 눈에 걸렸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났다.
복도 끝에서 서준혁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늘부로 나는 저 인간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직원이었다.
종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는 복도를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준혁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그 눈빛이 점점 더 또렷하게 보였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뭔가를 재는 눈.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다는 것 같은 그런 시선이었다.
"강도윤 씨."
가까이 다가가자 서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오늘부터, 잘 부탁합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보면서 잠깐 멈췄다. 뭔가 잡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등줄기를 스쳤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손을 맞잡는 순간, 서준혁의 손끝이 아주 잠깐, 평범하지 않게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