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천장을 보고 누운 지 세 시간째였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누군가의 게임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딱히 재밌지도 않았다.
그냥 틀어놓고 있었을 뿐이다.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서울 노원구, 방 두 개짜리 오피스텔.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게 벌써 삼 년 전이었고, 그 뒤로 나는 이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
유산이 있었고, 후견인인 박정호 아저씨가 관리를 대신 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돈이 있다고 딱히 재밌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먹고 자고 영상 보고, 다시 먹고 자고 영상 보고.
하루가 복사 붙여넣기처럼 반복됐다.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친구는 없었다.
애초에 사람 만나는 게 피곤했다.
말 한 번 섞으려면 머릿속으로 대사를 세 번은 검토해야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방송인지 뭔지 모를 화면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천장에는 어제도 봤던 그 얼룩이 그대로 있었다.
'저건 대체 언제 생긴 거지.'
이 방에서 삼 년을 살았는데도, 저 얼룩의 정체는 아직도 모른다.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런 얼룩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도 오늘의 몇 안 되는 일정 중 하나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였다.
일어날 이유도, 누울 이유도 딱히 없는 시간.
그래도 배는 고팠다.
몸을 일으켜 부엌 쪽으로 걸어가려던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별생각 없이 화면을 켰다가, 동네 커뮤니티 알림을 봤다.
[속보] 상계동 인근 게이트 발생, 모험자 길드 지부 긴급 개설
게이트.
던전.
뉴스에서나 보던 단어가 우리 동네에 떨어졌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던전이라니.'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여 관련 기사를 눌렀다.
세계 각지에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게 몇 년 전이었고, 그 안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마석이라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상식이었다.
모험자 길드라는 조직이 생겨서 그걸 관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늘 텔레비전 화면 안의 일이었다.
남의 동네, 남의 이야기.
···물론 여기까지는 그랬다.
기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사진 속에는 상가 건물 위로 하늘 한쪽이 갈라진 것 같은 균열이 찍혀 있었다.
'진짜 상계동이네.'
내가 매일 지나다니던 그 길, 그 상가.
댓글창에는 벌써 온갖 반응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기 우리 애 다니는 학원 바로 옆인데 무섭다"
"길드 지부 어디 생겼음? 등록하면 돈 준다는데 진짜냐"
"오늘 처음 열린 초보 게이트라던데 벌써 사람들 몰렸다더라"
댓글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넘기며 읽는 사이, 창문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봤다.
멀리 상가 건물 옥상 위로 뭔가 검은 균열 같은 게 보였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훨씬 이상했다.
마치 하늘에 누가 칼로 그은 것 같은 자국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느낌은.
무료함이 문제였다.
지루함이 사람을 이상한 짓으로 이끈다는 말을, 이렇게 몸으로 체감할 줄은 몰랐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가 볼까.'
'아니, 뭘 어떻게 하겠다고.'
'그냥 구경이나 하는 거지.'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번갈아 떠들었다.
결국 나는 옷을 걸쳐 입었다.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발이 먼저 움직였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지갑도 안 챙겼다는 걸 깨달았다.
'뭐, 오늘은 돈 쓸 일도 없겠지.'
*
길드 지부는 원래 문구점이 있던 자리에 급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간판도 아직 임시 현수막이었고,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걸 어떻게 뚫고 들어가지.'
문 앞에서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줄 맨 끝에 섰다.
앞에 선 아저씨가 큰소리로 담당자와 뭔가 협상을 하고 있었고, 뒤에 선 아주머니는 계속 통화를 하며 짜증을 냈다.
"아니 그니까 언제 끝나는지도 모른다잖아, 나 진짜 미치겠네."
소란스러운 공간이 낯설어서, 손바닥에서 벌써 땀이 났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뻐근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말고도 또래로 보이는 애들이 몇 명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여기 서 있는 거겠지, 생각하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삼십 분쯤 기다리자 순서가 왔다.
부스 앞에 서니 심장이 다시 빨라졌다.
"어떻게 오셨어요?"
접수대 너머 여자 직원이 물었다.
목소리가 사무적이었다.
"등록··· 하려고요."
말이 자꾸 끊겼다.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직원은 익숙한 듯 태블릿을 내밀었다.
"신분증 주시고, 여기 동의서 작성해주세요."
신분증을 건네자 직원의 손끝이 잠깐 멈췄다.
"학생이시네요?"
'벌써 뭔가 걸리는 건가.'
등이 뻣뻣해졌다.
"열여섯이요."
직원은 별말 없이 도장을 찍었다.
"미성년자는 절차가 조금 다르긴 한데, 일단 초보자 등록부터 해볼게요."
뭐가 다른지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될 일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동의서에는 자잘한 글자가 잔뜩 적혀 있었다.
'부상 및 사망에 대한 책임은···'
읽다 말고 그냥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어차피 안 읽어도 서명은 해야 할 것 같았고, 줄은 아직도 뒤로 길게 늘어서 있었으니까.
직원이 태블릿 화면을 내 쪼그마한 부스 안 단말기에 연결하며 말했다.
"손바닥 여기 올려주세요."
단말기는 작은 유리판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손을 대자 단말기가 파랗게 빛났다.
띠링-
눈앞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갑자기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모험자 등록이 시작됩니다.]
[이름: 김도훈]
[성별: 남]
[연령: 16]
[신체능력 측정 중···]
'이게 진짜였구나.'
뉴스로만 보던 그 시스템 창이 눈앞에 있었다.
영상 속 게임 화면 같기도 하고, 그보다 더 선명했다.
손끝이 저릿했다.
숨을 죄다 죽인 채로 창을 바라봤다.
옆에서 다른 부스에서도 비슷한 파란 불빛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서 "오오" 하는 낮은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측정 완료]
[신체능력 등급: 하 (체육 평가 2등급 기준 수준)]
'역시.'
예상은 했지만 직접 숫자로 보니 조금 씁쓸했다.
체육 시간마다 오래달리기에서 늘 뒤에서 세 번째였던 이유가 이렇게 시스템으로 증명되는 기분이었다.
'그마저도 운동 능력은 써먹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
다음 문장이 뜨기까지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그 몇 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스킬 부여 진행 중···]
'스킬이라니.'
손바닥에서 열이 올랐다.
뭔가 뜨거운 게 손 안쪽에서 퍼지는 느낌이었다.
살짝 손을 떼려고 했지만, 단말기에 손바닥이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원래 이런 거 맞나.'
[스킬 획득: 공격]
짧고 단순한 이름이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허탈했다.
'공격이라니, 그게 다야?'
혹시 이름만 저렇고 뒤에 설명이 더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나 그 밑으로는 아무 설명도 뜨지 않았다.
정말로 딱 그거였다.
'공격.'
이름만 봐서는 뭘 어떻게 하는 스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직원 쪼그마한 부스 너머로 화면을 확인하던 접수 담당자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뭔가 확인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태블릿과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화면이 잘 안 나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직원은 태블릿을 몇 번이나 두드리다가, 결국 다시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뭔가를 재확인하려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저기, 학생."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금 전까지의 사무적인 톤과는 확실히 달랐다.
"잠깐만요."
뭐가 잘못됐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의 흥분이 순식간에 불안으로 바뀌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아주 잠깐 이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손바닥은 여전히 단말기 위에 놓여 있었고, 파란 불빛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설마 등급 잘못 뜬 건가.'
'아니면 스킬 창이 뭔가 이상한가.'
머릿속으로 온갖 경우의 수가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직원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태블릿 화면을 손끝으로 짚은 채, 직원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