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골목에서 눈뜨니 소녀였다

5화

PC방까지 걸어가는 십오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이 얄궂은 계획을 몇 번이고 다시 굴려보았다.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번다는 게, 말이 되나. 근데 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별풍선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시청자들이 후원을 해주면 그게 곧바로 현금으로 환전되는 구조라고, 예전에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하던 시절 손님들이 나누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주워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남 얘기였는데, 이제는 그게 내 생존줄이 될 판이었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후원 구조는 대략 이랬다. 시청자가 실제 현금을 충전해 사이버 머니 형태의 별풍선을 구매하고, 그걸 방송인에게 선물하면 방송인은 일정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현금으로 정산받는다. 정산 주기는 보통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 그 정산 주기까지 버틸 여유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일단 오늘 하루 배를 채울 정도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제는 계정이었다. 방송 플랫폼에 가입하려면 최소한 이메일 하나쯤은 필요했는데, 다행히 이메일은 신분증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부분이라 한숨 돌렸다. 걸어가는 내내 발바닥이 아팠다. 이 몸의 발은 나한테 익숙한 크기가 아니라서 신발 안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느낌이 났고, 금발 머리카락이 바람에 얼굴을 스칠 때마다 낯선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씨발, 언제 익숙해지려나. PC방 간판이 보이자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는 시늉을 하며 최대한 불쌍하고 가련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이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이 얼굴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카운터 앞에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알바생에게 말을 걸었다. "저... 한 시간만 쓸 수 있을까요? 돈이 지금 없는데, 나중에 꼭 갚을게요." 알바생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나를 훑어보았는데, 그 눈빛에서 이미 거절의 기색이 짙게 느껴져서 나는 속으로 씨발, 이거 안 되겠나 싶었다. "저희 그런 거 안 해요."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한번 애원 조로 말을 이었다. "진짜 딱 한 시간만요, 저 지금 갈 곳도 없고..." 그 말을 하는 순간 목소리가 살짝 떨렸는데, 그게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걸 알바생도 느꼈는지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게 보였다. 알바생은 팔짱을 낀 채 잠시 나를 훑어보더니, 뭔가 계산하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이에요?" "...아니요. 그냥, 사정이 좀 있어서." "부모님한테 연락은 해봤어요?" 그 질문에 나는 순간 말이 막혔다. 부모님이라니. 이 몸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뭘 연락하라는 건지. 그냥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떨궜다. "...한 시간만이에요. 딱 한 시간. 그 이상은 안 돼요." 결국 알바생은 마지못해 자리를 내주었고, 나는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하며 구석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는 순간, 45년 인생 최초로 여자 화장실 대신 남자 화장실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 상황이 웃긴 건지 슬픈 건지 헷갈렸다. 인생 참, 뭐가 이렇게 꼬였나. 일단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생년월일 입력란에서 잠시 손이 멈췄다. 이 몸의 나이가 몇 살인지도 확실치 않았지만, 대충 십대 후반쯤으로 짐작하고 적당히 채워 넣었다. 인증 메일이 오는 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방송 플랫폼 회원가입도 어렵지 않게 끝냈는데, 신분증 인증 없이도 익명 방송이 가능한 카테고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방송 플랫폼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본인 인증을 마친 정식 크리에이터와, 인증 없이 임시로 운영 가능한 게스트 계정. 게스트 계정은 별풍선 정산이 느리고 상한선도 낮지만, 그런 세세한 조건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일단 방송을 켜고 뭐라도 받아야 했다. 방송 제목을 뭐라고 지을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단순하게 적었다. [급전 필요합니다. 아무 얘기든 들어드려요] 너무 없어 보이나 싶었지만 어차피 지금 상황이 없어 보이는 게 맞으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웹캠을 켜자 화면에 내 얼굴이 떠올랐는데, 새삼 이 금발 벽안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다시 한번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화면 속 여자애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였는데, 그 사실이 자꾸 헷갈렸다. 이게 내 얼굴이라고? 이 뽀얀 피부에, 이 커다란 눈에? 이걸로 돈을 번다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나는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초반 몇 분은 시청자가 0명이었다. 화면 구석에 뜬 숫자 0이 야속하게 느껴졌는데, 나는 괜히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며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는 척했다. 이러다 한 시간 그냥 날리는 거 아닌가 싶어 속이 타들어가던 그때, 어느 순간 숫자가 1로 바뀌었다. [시청자1이 입장하셨습니다] 채팅창에 뭔가 글자가 올라왔다. [뭐임 이거 asmr임?] "아, 아니요, 그냥 얘기 들어드리는 방송이에요." 어색하게 답하는데, 곧이어 두 번째 시청자가 들어왔다. [시청자2가 입장하셨습니다] [혼혈이신가요? 완전 예쁘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뭔가 낯간지러운 칭찬에 나는 45년 인생 처음으로 이런 류의 반응을 받아보는 게 신기했는데, 마흔다섯 평생 누가 나한테 예쁘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그러다 세 번째 시청자가 입장하며 채팅창이 조금 더 활발해졌다. [시청자3이 입장하셨습니다] [방제 왜케 서글퍼요 뭔일 있으세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진짜 사연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다. 완전한 거짓은 티가 나기 쉬웠고, 반쪽짜리 진실이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었다. "사정이 좀 있어서 지금 갈 곳이 없어요. 지갑도 잃어버렸고, 아는 사람도 없고..." 반은 진실이었다. 나는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채팅창은 오히려 그 서글픈 사연에 관심을 보이며 점점 활발해졌다. [헐 진짜요? 부모님은요?] [신고하지 마세요 여러분 그냥 지켜봐요] [별풍선 쏴드릴게요 힘내세요] [가족 없으세요? 보호소 같은 데는요] [님 목소리 좀 특이하시다 성우 준비하세요?]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나는 어느 걸 먼저 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머뭇거렸다. 목소리 얘기가 나온 건 좀 의외였다. 내가 알던 내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여리고 맑은 소녀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게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원래 이래요. 하하." 얼버무리며 넘기는데, 그 순간 화면 위쯤에서 별풍선 알림이 떠올랐다. [시청자2님이 별풍선 5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오백 원 짜리 몇 개가 모인 것보다 더 큰 숫자였는데, 나는 그 알림을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돈이 된다고?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흥분이 올라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시늉을 하며 나는 이 상황이 얼마나 웃긴지 새삼 깨달았다. 45세 아저씨가 미소녀 몸을 빌려 인터넷 방송으로 구걸하듯 돈을 버는 상황. 이게 인생의 반전인지 나락인지 헷갈렸지만, 일단 배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 인생이란 게 참,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거구나 싶었다. 방송은 그렇게 삼십 분쯤 이어졌다. 시청자는 셋에서 더 늘지 않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나는 최대한 신중하게 답을 골라가며 정체를 숨겼다. [근데 진짜 어디 사세요? 서울이신 거 같은데] "그냥... 이 근처예요." [학교는 다니세요?] "...안 다녀요." [나이가 몇이세요? 목소리 들으니까 저보다 어린 거 같은데] "그냥... 십대예요." 적당히 얼버무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문득 시청자1이 뭔가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머리에 뭐 나셨어요? 방금 화면에서 잠깐 이상한 게 보였는데]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뭐, 뭘 봤다는 거지. 손을 뻗어 정수리를 만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채팅창에는 그 질문에 동조하는 다른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도 봤어요 뭔가 뿔 같은 거] [화질이 안 좋아서 잘 안 보였는데 진짜 신기하네요] [콘셉트인가 코스프레 방송이었어요?] [방금 캠 화질 왜 이럼 갑자기 노이즈 낀 거 같은데] 웹캠 각도를 살짝 조정하며 나는 애써 웃음으로 넘기려 했지만, 손끝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진짜로 뭔가 보였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노이즈나 화질 문제일 뿐인 건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웃음소리를 섞어가며 대답했다. "에이, 그냥 화질 때문이겠죠. 하하..." 어색하게 웃어넘기며 방송을 이어갔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몸에 대한 의문이 다시 한번 커지고 있었다. 정말 이 몸은 단순한 우연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인 게 아닐까. 애초에 눈을 떴을 때부터 이 상황 자체가 정상적인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으니, 이제 와서 뿔 하나 더 보인다 한들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편해질 리가 없지. 이 씨발아, 정신 차려. 그리고 그 순간, 채팅창 맨 위로 낯선 아이디 하나가 새롭게 입장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는데, 그 아이디는 이상하게도 다른 시청자들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 관리자스러운 느낌이 나는 이름이었다. [GM_관제팀이 입장하셨습니다] 나는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저건 뭐지. 방송 플랫폼 관리자인가. 그런데 왜 이름이 하필 저따위인지. 게임에서나 볼 법한 명칭이 실시간 방송 채팅창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채팅창은 조용했다. 다른 시청자들의 대화도 잠시 멈춘 듯, 화면 위로 그 이름 하나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나는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 계정이 뭘 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봇 계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은 이미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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