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72년 무예, 곰으로 환생

4화

어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강철심의 몸을 코로 세게 밀어붙였다.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강철심은 순순히 따랐다. 지금은 반항할 때가 아니었다. 굴로 돌아가는 길, 어미의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뭔가 화가 난 걸음걸이였다. 짐승도 화를 내는구나. 발밑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졌다. 어미가 그 소리마저 신경질적으로 짓밟았다. 강철심은 어미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등의 털이 평소보다 곧추서 있었다. 이거, 진짜 화났네. 협곡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뭔가 위험한 데 가까이 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미의 반응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굴에 도착하자 어미는 강철심을 산이와 다른 새끼들 사이에 억지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 앞을 몸으로 막고 앉았다. 감시하겠다는 뜻이었다. 귀찮게 됐네. 강철심은 몸을 웅크리며 굴 안쪽 냄새를 맡았다. 마른 풀 냄새, 흙냄새, 그리고 형제들의 살냄새. 이 냄새도 이제 익숙해졌다. 산이는 옆에서 늘어져 자고 있었다. 다른 새끼 하나는 어미의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강철심의 머릿속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협곡에서 느낀 그 감각. 짧은 앞다리, 낮은 무게중심. 인간이었을 때는 단점으로 여겼을 조건이었다. 체육관에서 늘 듣던 소리가 있었다. 팔 길이가 짧으면 그립 싸움에서 손해다. 리치가 짧으면 거리 조절이 힘들다. 그런 지적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몸에서는 오히려 특정 기술에 최적화된 구조였다. 예를 들면. 상대의 다리를 파고들어 넘기는 태클. 낮은 자세에서 시작해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기술. 인간의 몸으로는 관절 구조상 한계가 있던 동작이었다. 허리를 숙이면 무릎이 먼저 걸렸다. 어깨가 걸리고, 팔이 짧아 상대의 다리를 완전히 감싸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몸은. 네 다리로 서 있는 구조 자체가 이미 저중심이었다. 숙일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바닥에 붙어 있는 자세. 이건 반칙 아닌가. 강철심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 어미가 다시 사냥을 나갔다. 이번엔 굴 입구를 막듯 큰 돌을 옆에 밀어두고 갔다. 나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강철심은 굴 안에서 조용히 웃었다. 밖에 안 나가도 돼.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필요한 건 사냥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산이가 마침 옆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형제 곰은 여전히 강철심을 놀잇감쯤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좋아, 마침 잘됐다. 강철심은 산이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산이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앞발을 들었다. 익숙한 신호였다. 장난치자는 뜻. 그 순간, 강철심은 몸을 낮췄다. 최대한. 산이의 앞발이 허공을 갈랐다. 강철심의 몸이 그 아래로 파고들었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산이의 배 밑으로 들어갔다. 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앞발로 산이의 뒷다리를 낚아챘다. 낮은 자세에서 순간적으로 몸통을 밀어붙였다. 쿠당. 산이의 몸이 그대로 뒤집혔다. 뭐야, 이거. 강철심 자신도 잠시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매끄럽게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방금 동작을 되짚어봤다. 접근 각도, 무게중심 이동, 낚아채는 순서. 교본에 나오는 그대로였다. 아니, 교본보다 더 쉬웠다. 산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땅바닥에 등을 대고 뒤집혔던 게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좀 더 세게. 강철심은 다시 몸을 낮췄다. 같은 방식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산이가 버텼다. 덩치 차이가 있었다. 몸무게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힘으로는 안 된다. 그래도.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옆으로 파고들었다. 무게중심을 파악해 정확히 그 아래를 노렸다. 산이의 다리가 순간 휘청였다. 다시. 쿠당. 두 번째로 넘어졌다. 와, 이거 진짜 되네. 인간이었을 때 갈고닦은 유술 이론이, 짧은 앞다리와 낮은 체형이라는 이 몸의 특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짧은 팔은 상대에게 붙잡히기 힘들다. 낮은 중심은 태클에 유리하다. 네 다리 보행은 오히려 저중심 자세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거기다 하나 더. 발톱. 인간의 손에는 없던 무기가 이 몸에는 붙어 있었다. 지금은 힘을 뺀 채 쓰고 있지만, 필요하면 그립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 이거, 진짜 물건이었네. 좌절했던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약점이라 여겼던 몸이, 실은 특정 기술에 완벽히 최적화된 구조였다. 산이가 세 번째로 덤벼들었다. 이번엔 조금 더 신중하게, 몸을 낮춰서 접근했다. 제법인데. 두 번 당하고 나니 학습을 한 모양이었다. 곰도 학습이 되는구나. 하지만 강철심의 반응은 더 빨랐다. 산이의 접근을 미리 읽고, 옆으로 살짝 비틀었다. 거리, 각도, 타이밍. 셋 다 맞아떨어졌다. 중심이 흔들린 산이의 몸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쿠당. 세 번째. 산이가 이번엔 정말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 곰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어렴풋이 느낀 눈치였다. 강철심은 그 표정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지. 산이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강철심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경계와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 지금까지 놀잇감으로만 보던 존재가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강철심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세를 다시 낮추며 다음 동작을 준비했다. 한 번 더 해볼까. 그때였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미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발걸음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느리고, 뭔가를 끌고 오는 듯한 소리. 강철심은 자세를 낮춘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 사이사이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그리고 낮게 울리는, 짐승의 것 같지 않은 신음. 산이도 놀이를 멈추고 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끼들 전부가 동시에 입구를 향해 귀를 세웠다. 뭔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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