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방과 후, 나는 시청각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고, 다시 잡았다가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복도 저편에서 청소 담당 애들이 대걸레를 끌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창밖으로는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는 소리가 둥, 둥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 평범한 소음들 속에서 유독 내 심장 소리만 크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냥 어깨 마사지야. 뭉친 근육 풀어주는 것뿐이잖아. 뭐가 그렇게 떨려.'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손바닥에서는 이미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시술했던 대상들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손을 얹을 수 있었을 텐데, 상대가 서연이라는 것만으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결국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서야 겨우 손을 뻗어 문을 열 수 있었다.
안에는 이미 서연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왔다! 여기 앉아봐."
의자를 끌어와 앉으면서 나는 손바닥이 더욱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이전까지 시술했던 대상들은 다 가족이거나 살롱의 낯선 손님들이었는데, 이번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매일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던 그 애를, 직접 만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저, 자세는 이렇게 하면 되나요?"
"응, 그렇게 앉으면 돼. 나 진짜 목이랑 어깨가 안 풀려서 죽을 것 같았거든."
서연이 웃으면서 목을 이리저리 돌리는 걸 보면서,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손을 들어 올렸다.
"여기가, 여기가 제일 아픈 거예요?"
서연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나는 그 뭉친 정도에 놀랐다. 겉으로 보기엔 밝고 완벽해 보이는 애였는데, 실제로 만져보니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고, 손끝에 조금만 힘을 줘도 그 안쪽에서 딱딱한 결절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평소에 통증이 상당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시술 대상 인식: 윤서연.]
[특이 사항 감지: 만성 통증, 수면 부족 동반.]
[권장 시술 강도: 상.]
창에 뜬 문구를 보면서 나는 순간 이 애가 왜 이렇게까지 뭉쳐있을까 궁금했다. 학생회 일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하지만 굳이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냥 손끝에 힘을 조금씩 실으며 근육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어, 아, 아아아······!"
서연은 처음엔 아픔에 몸을 떨었다. 어깨를 움찔거리며 숨을 짧게 들이쉬는 게 느껴졌는데, 나는 손을 떼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음이 아니라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는 걸 눈치챘다.
"하아······ 이거 뭐야, 진짜 시원하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고, 손끝의 감각을 따라 더 깊은 곳까지 접근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부분이 손끝을 따라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마치 뭉친 실뭉치를 하나씩 풀어내는 것 같은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강한 빛이 손끝에서 번쩍였다.
[특수 조건 충족.]
[숨겨진 옵션 발동: 완전 치유.]
나는 눈이 커지는 걸 느끼며 손을 떼려고 했지만, 이미 그 빛은 서연의 어깨 전체를 감싸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얗고 은은한 빛이 어깨선을 따라 스며들듯 번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마치 뭉친 근육이 실뭉치처럼 스르르 풀어지는 광경이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뭐, 뭐야 이거. 이런 옵션이 있었어?'
당황한 나는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빛은 몇 초 정도 이어지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어······?"
서연이 어깨를 몇 번 돌려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손으로 자기 목과 어깨를 몇 번이나 눌러보고, 팔을 위로 쭉 뻗었다가 내려보기까지 했다.
"나, 나 몇 년 동안 이렇게 안 아팠던 적이 없는데, 지금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이거 뭐야, 진짜 뭐야?"
서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청각실 문이 벌컥 열렸다.
쿵!
"서연아, 여기 있었어? 뭐하고······."
들어온 건 서연의 친구 두 명이었는데, 그 애들은 문가에 서서 방금 벌어진 광경, 즉 내 손끝에서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은은한 빛의 잔영을 그대로 목격하고 말았다.
정적.
"저, 저거 뭐야?"
한 명이 얼떨결에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특이한 마사지사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빛까지 목격당한 이상 더는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니, 저건 그게, 조명 때문에······."
말도 안 되는 변명이 입에서 튀어나왔지만, 정작 나 자신도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시청각실에 무슨 조명이 저렇게 반짝인단 말인가.
"도윤아, 잠깐만, 어디 가?"
서연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이미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문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복도를 미친 듯이 달리면서, 나는 뒤에서 누군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눈 끝으로 스치듯 봤다.
'찍혔어. 분명히 찍혔어.'
발이 땅에 닿는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고, 지나가던 애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학교 정문을 빠져나와 무작정 골목길로 꺾어 들어간 뒤에야, 나는 겨우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하, 하아······ 이게 뭔 일이야. 오늘 저녁에 학원 숙제도 해야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게 눈에 들어오겠냐.'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 학원 숙제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자, 이미 학교 익명 게시판에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화질은 흔들렸지만, 손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고, 댓글 수는 벌써 세 자릿수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 asmr 아니고 진짜 초능력 아니냐]
[저 남학생 누구야 특정 시급]
[체육대회때 그 학생이랑 같은 애 아니야?]
[와 저거 CG 아니야? 진짜면 미친거 아님]
나는 화면을 끄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댓글이 새로 달릴 때마다 알림이 뜨는 게 보였는데, 그 숫자가 늘어나는 걸 보고만 있어도 손이 떨려왔다. 지금까지는 그냥 신기한 재능 정도로 숨겨왔던 것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세상에 드러나버린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부모님한테는 또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채로 나는 몇 번이나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조회수가 올라가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빨랐고, 이미 다른 반 애들까지 링크를 공유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