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살롱에서의 첫 손님은 삼십 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이모가 나를 슬쩍 밀어 보내며 "긴장하지 말고, 그냥 어제 연습한 대로 해" 라고 속삭였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더 긴장이 됐다. 나는 손이 떨리는 걸 감추려고 최대한 천천히 그분의 어깨에 손을 얹었는데, 손바닥에 닿는 체온이 생각보다 뜨거워서 순간 멈칫했다.
'제발, 제발 떠라.'
마음속으로 빌듯이 되뇌는 사이, 다행히 그 이상한 창이 다시 떠올랐다. 어깨 근육의 긴장도와 뭉친 부위가 표시되면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는데,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아주머니가 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못 들은 척 손끝에 힘을 주며 창이 알려주는 부위를 하나씩 눌러나갔다.
"어머, 시원하네."
그 한마디에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시술은 큰 문제 없이 끝났고, 손님은 만족한 얼굴로 나가면서 이모에게 팁을 두둑이 건넸다. 이모는 그 돈을 받으며 나를 향해 눈을 찡긋했는데, 나는 그게 무슨 신호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말마다 살롱에 나가서 몇 명씩 시술을 하게 됐다. 이모는 아예 예약 시간표에 내 이름을 적어 넣기 시작했고, 나는 그 표를 볼 때마다 이게 진짜 내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한 명, 두 명, 세 명.
손님을 받을수록 그 숫자가 조금씩 쌓여가는 걸 보면서도 만 명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아득하게 느껴졌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지금 속도로는 몇 년이 걸릴지 감도 안 잡혔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생각을 관두고 다음 손님을 맞이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원래 나는 이런 행사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다. 반 대표로 뽑힌 것도 아니고, 응원단에 낀 것도 아니고, 그냥 관중석에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역할이었다. 다른 애들은 트랙 위에서 뛰거나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열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스탠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게 나는 스탠드 구석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살롱 예약 앱을 켜서 다음 주 일정을 확인하고, 손님 숫자를 다시 세어보고, 만 명까지 남은 거리를 다시 계산해보는 게 그날의 유일한 몰두였다.
그런데 갑자기 운동장 쪽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졌다.
"어어어어! 위험해!"
고개를 들어보니 이단 평행봉 같은 기구를 옮기던 학생들이 균형을 잃고 있었다. 무거운 철제 프레임이 그대로 옆에 서 있던 남학생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나조차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 남학생은 놀라서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은 소리만 지를 뿐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쿵!
프레임이 그대로 그 학생의 팔과 다리를 짓눌렀고, 운동장 전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선생님들이 뛰어오고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나는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냥 다리가 알아서 뛰었고, 스탠드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내려 순식간에 그 학생 곁에 도착해서 다친 팔을 붙잡았다.
[위급 상황 인식.]
[응급 처치 모드 활성화.]
처음 보는 문구였다. 지금까지 살롱에서 봤던 창과는 색깔부터 달랐는데, 붉은 테두리가 눈앞에서 번쩍이는 걸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손끝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한 저림이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거 뭔데, 이거 뭔데.'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도 손은 이미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다친 학생의 팔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고, 손이 알아서 근육과 인대의 흐름을 읽으며 부어오르던 부위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학생은 처음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었지만, 곧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부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가라앉는 걸 지켜봤다.
"어······ 안 아파요. 진짜 안 아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로 소름이 쫙 돋았다. 주변 학생들이 하나둘 몰려들어서 그 광경을 지켜봤는데, 스마트폰을 들어 그 장면을 찍는 애들도 몇몇 보였다. 나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야, 너 방금 뭐 한 거야?"
체육 선생님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내 손목을 붙잡았다. 손목을 잡힌 순간 나는 도망갈 틈도 없이 다시 붙들려버렸다.
"얘 다리도 좀 봐줘, 빨리."
엉겁결에 나는 다른 부상자까지 몇 명 더 손을 대게 됐다. 넘어지면서 발목을 접질린 애, 파편에 스쳐 손등이 까진 애. 신기하게도 손을 대는 대상마다 통증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걸 보면서 나 자신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손끝이 저릿할 때마다 창이 떠오르고, 그 창이 알려주는 대로 손을 움직이면 상처가 가라앉는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이거, 그냥 마사지가 아니었어.'
어젯밤까지만 해도 나는 이 능력을 그냥 특이한 재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초능력이었다. 게임 속 스킬처럼 눈앞에 창이 뜨고,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한 처치를 알아서 유도해주는,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었다.
소란이 좀 진정되고 나서, 나는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다. 손에서 아직도 그 이상한 저림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감각을 확인했는데, 그러다 뒤늦게 알게 됐다. 이미 스마트폰을 든 몇몇 학생들이 그 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찍고 있었다는 걸.
'아, 이거 큰일인데.'
퍼지면 안 되는 영상이 벌써 몇 명의 폰에 저장돼 있을 거란 생각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낯선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너 이름이 뭐야?"
고개를 돌리자, 그날 처음으로 나는 학교 전체가 다 아는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밝은 미소와 긴 머리,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윤서연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 방금 그거 뭐야? 완전 대단하던데."
윤서연의 눈빛에는 순수한 놀라움과 함께 묘한 흥미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채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