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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윤서연이 내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입을 열지 못했다. 반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학년 전체에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학교 마돈나라 불리는 윤서연이 직접 말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거 몰카 아니냐.' 주변을 두 번쯤 둘러봤는데 카메라 같은 건 안 보였고, 그냥 윤서연이 진짜로 내 앞에 서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 김도윤인데요." 목소리가 살짝 갈라진 것 같아서 스스로도 민망했다. "도윤이. 아까 그거 진짜 신기했어. 그 애 완전 아파했는데 갑자기 괜찮아지더라?" 서연은 눈을 반짝이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거 무슨 원리야? 어디서 배운 거야? 혹시 한의원 같은 데서 배웠어?" 질문이 세 개씩 연달아 날아오는데 나는 그중 뭐부터 답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웃기만 했다. 이럴 때 사회성 좋은 애들은 뭐라도 재치있게 받아치겠지만, 나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그냥, 집에서 배운 거예요." 애매한 대답으로 넘기려 했는데, 서연은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집에서? 부모님이 의사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말을 얼버무리는 사이, 다행히 그때 다른 학생들이 서연을 부르러 왔다. "서연아! 다음 경기 시작한대!" 서연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뛰어갔고, 나는 그 틈을 타서 반대 방향으로 슬쩍 빠져나왔다. '큰일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스마트폰으로 학교 SNS 계정을 확인해봤는데, 이미 체육대회에서 벌어진 일이 짧은 영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십오 초짜리 영상이었는데 조회수가 벌써 삼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화질이 흐리고 얼굴이 잘 안 보여서 아직 나라는 걸 특정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지만, 댓글창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저거 뭐임 ㅋㅋㅋ 무슨 마법 손인가] [체육대회 응급처치 레전드다] [저 학생 누구야 특정좀] [뒷모습 봐서는 우리반 애 같은데 아닌가] [병원 안 가고 저렇게 나아지는 게 말이 됨?] 댓글이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끼며 스마트폰을 껐다. 이런 식으로 관심을 받는 건 태어나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고, 좋으면서도 무서웠다. 마치 시험지에 이름을 안 썼는데 만점을 받은 것 같은, 얼떨떨하고 불안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도윤아, 잠깐 이리 와봐."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른 건, 체육대회 사건 이후 처음으로 나에게 관심을 보인 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출석부에서 내 이름을 부를 때조차 시선을 안 마주치던 선생님이었는데, 그날은 목소리부터 뭔가 진지했다. 교무실에는 담임 말고도 낯선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안경 너머로 눈빛이 예리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명함을 건네받고 보니 '재활의학과 전문의'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왜 여기까지······.' "학생, 그날 응급 처치한 방법이 좀 특이해서요. 혹시 어디서 배운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의사는 아주 부드럽고 전문적인 말투로 물었지만, 나는 그 시선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마치 CT 촬영을 하듯 나를 스캔하는 눈빛이었다. 정확한 의학 지식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 그냥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어깨 마사지 좀 해본 경험이 있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부기가 그렇게 빨리 가라앉는 건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데, 혹시 다시 한번 시연해볼 수 있을까요?"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사실 나조차도 재현이 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상황이 급박해서 손이 저절로 움직인 거였고, 지금처럼 이렇게 눈앞에서 대놓고 요구받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여기서 진짜로 해보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뭔가 검사받고, 논문 소재 되고, 그러다 뉴스에 나오는 거 아냐.' 머릿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그려지자 손끝이 더 떨렸다. 결국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그건 그날 특별한 상황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하고 둘러댔다. 의사는 잠깐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그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담임선생님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상황을 넘겨줬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이 아직 어려서 부담스러운 것 같네요." 담임선생님의 말에 의사는 명함을 하나 더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연락 줘요. 이건 순수하게 학술적인 관심이니까요." '학술적인 관심이라니, 그게 더 무섭다고요.' 교무실을 나오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동시에 이상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 의사가 그냥 넘어갈 사람 같지는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명함을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계속 손이 떨렸다. 그날 오후, 복도를 지나가다가 나는 다시 서연과 마주쳤다. "도윤아! 나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서연은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평소 밝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뭔가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나 요즘 어깨가 진짜 심하게 아픈데, 병원 가도 딱히 답이 없대. 물리치료도 받아봤고, 한의원도 가봤는데 그때뿐이고 계속 도루묵이야. 너 그때 그거, 나한테도 해줄 수 있어?" 나는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능력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을 상대로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안 되면 어떡하지. 아니, 만약에 진짜로 되면 그건 또 어떡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사이, 서연은 내 눈치를 살피며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그 모습이 평소 학교에서 보던 당당한 이미지랑은 다르게, 정말 아파서 지쳐 보였다. "부담되면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그 애의 표정이 진심으로 힘들어 보였기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 어디서 하면 돼요?" "내일 방과 후에, 시청각실 어때? 거긴 사람 잘 안 와." 서연이 살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 보였는데, 나는 그 미소에 뭔가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더 긴장이 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뛰는 걸 느꼈는데, 그게 긴장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머니 속 명함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이제는 서연까지. '이 능력, 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야.' 내일 시청각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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