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복도 끝에서 좀비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대략 세어보니 열 마리는 넘었다.
'……이건 좀 많은데.'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걸음걸이가 죄다 삐걱거리는데, 그 숫자만큼은 무슨 대형마트 개점 행사 줄서기 수준이었다.
1층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게 나을지, 옥상으로 올라가는 게 나을지 고민했다.
창문 쪽은 높이가 애매했다.
잘못 뛰면 발목이 나갈 것 같았고, 발목이 나가면 그 다음은 뻔했다.
좀비 뷔페의 메인 메뉴가 되는 거였다.
결론은 옥상이었다.
위로 올라가면 최소한 등 뒤는 안전했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허벌 살아온 45년 인생 중 이렇게 급하게 계단을 오른 적은 없었다.
체력장 오래달리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꼴찌만 면하면 됐지만, 지금은 못 뛰면 그냥 인생이 끝나는 거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아, 조금만 더 버텨줘라. 여기서 심근경색으로 죽으면 그건 좀 억울하잖냐.'
옥상 문을 박차고 나가는데, 좀비 몇 마리가 이미 뒤따라붙었다.
[알림: 다수의 몬스터가 접근 중입니다.]
'그래, 고맙다. 안 보여도 알겠다.'
시스템은 가끔 이렇게 쓸데없이 친절했다.
당장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는데, 굳이 자막으로 재확인시켜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옥상은 넓었다.
예전엔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좀비 사냥터로 변할 참이었다.
한쪽 구석엔 누가 쓰다 버린 축구공이 바람 빠진 채로 굴러다녔다.
'저 공으로 슛 좀 날려도 좀비 하나쯤은 넉다운 되겠는데.'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이런 순간엔 이상하게 이런 잡생각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아이템박스에서 용사의 갑주를 꺼내 급하게 걸쳤다.
무게가 만만치 않았지만, 방어력만큼은 확실했다.
갑주를 걸치는 순간, 몸이 한 뼘쯤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움직임은 둔해지지 않았다.
'이게 그 장비빨이라는 건가.'
좀비들이 하나둘 옥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좋다. 여기서 정리하자.'
첫 번째 놈이 달려들었다.
서걱-!
두 번째 놈이 팔을 뻗었다.
촤악-!
세 번째 놈은 아예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놈은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는데, 그 모습이 꼭 뒤집힌 딱정벌레 같았다.
'……미안하지만 너는 그냥 누워 있어라.'
발로 밀어 계단 쪽으로 굴려버렸다.
레벨 1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잘 움직였다.
장비 보정이 확실히 있었다.
스탯이 없어도, 장비 자체의 절삭력과 방어력은 그대로였으니까.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 획득.]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 획득.]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 획득.]
메시지가 연달아 떴다.
숫자는 초라했지만, 죽는 좀비 숫자는 절대 초라하지 않았다.
'경험치 2씩이면 서른 마리는 더 잡아야 레벨업 한 번 하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다섯, 여섯, 일곱.
네 번째, 다섯 번째 놈은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왼쪽에서 오는 놈은 성검으로 베고, 오른쪽에서 오는 놈은 갑주 어깨로 그냥 밀쳐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좀비가 옥상 바닥에 나뒹굴었다.
여섯 번째 놈은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는데, 손톱이 갑주에 부딪혀서 오히려 저 놈 손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건 니가 잘못 골랐다.'
일곱 번째 놈까지 정리하고 나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땀이 갑주 안쪽으로 흘러들어가 등줄기가 축축했다.
'에어컨도 없는데 이 갑옷 입고 여름 나려면 고생좀 하겠구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도, 시선은 계속 남은 좀비 숫자를 세고 있었다.
마지막 놈이 달려들었을 때, 나는 성검을 크게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부와아앙-!
바람 소리가 났다.
그 한 번에 남은 세 마리가 동시에 쓰러졌다.
[알림: 다수의 몬스터를 동시에 처치했습니다.]
[레벨업!]
[레벨 2가 되었습니다.]
'오, 벌써 레벨업.'
생각보다 빠른 성장이었다.
좀비가 원래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인지, 아니면 초반 레벨 보정인지는 몰랐다.
그냥 나쁠 게 없었다.
레벨 2라고 해도 딱히 몸이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뭐 대단한 스킬창이 뜨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숫자가 하나 올랐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마치 게임 캐릭터 키우던 시절, 밤새 사냥해서 겨우 레벨 하나 올렸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옥상에 좀비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시체들 사이로 핏자국이 옥상 바닥에 얼룩덜룩하게 번져 있었다.
축구공이 그 핏자국 옆에서 여전히 바람 빠진 채로 굴러다니고 있는 게, 이상하게도 그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끝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옥상 난간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건너편 건물, 아파트 옥상 위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저거 지금 촬영하는 거 아니야?'
거리가 있어서 얼굴은 안 보였지만, 확실히 카메라를 든 자세였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옆에 한두 명이 더 붙어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5년 전, 아니 어제까지도 나는 그냥 이름 없는 비정규직 용무원이었다.
존재감 없이 청소하고, 이사장 아들한테 모욕당하고, 조용히 퇴근하는 게 내 인생이었다.
누가 내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일 같은 건 평생 없을 줄 알았다.
증명사진 찍을 때조차 사진관 사장님이 하품하면서 셔터를 눌렀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좀비 열 마리를 성검으로 썰고 있는 걸 누군가 찍고 있었다.
'……이거 좀 곤란해지는데.'
나는 서둘러 성검을 아이템박스에 집어넣었다.
갑주도 마찬가지였다.
장비를 벗는 순간, 다시 평범한 아저씨의 몰골로 돌아왔다.
옷차림도 원래대로 후줄근한 작업복이었다.
누가 봐도 그냥 용무원 아저씨였다.
방금까지 좀비 열 마리를 썰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몰골이었다.
하지만 늦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찍힐 만큼 다 찍혔을 것이었다.
'……뭐, 어차피 세상이 이렇게 됐으니 아무도 신경 안 쓸 수도 있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옥상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설마 저게 무슨 유튜브 채널 같은 거 하는 사람이면 어쩌지.'
'아니, 이 난리통에 유튜브를 누가 봐.'
'……근데 이 난리통이니까 오히려 더 볼 수도 있잖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계속 불안했다.
라디오에서 흐릿하게 흘러나오던 뉴스가 다시 떠올랐다.
정부, 계엄, 감염 사태.
국가급으로 무너진 세상이라면, 사람들은 지금 뭔가 붙잡을 화젯거리에 목말라 있을 것이었다.
레벨 1인데 좀비를 쓸어버리는 정체불명의 남자.
그런 소재라면 딱 좋은 미끼였다.
예전 같으면 그냥 웃긴 영상 하나로 끝났을 거다.
'도시전설, 옥상 히어로' 같은 제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며칠 화제되다 사라졌겠지.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그런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정부도, 군대도, 협회 같은 곳들도 전부 이런 정체불명의 힘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을 게 분명했다.
'……딱 걸리면 그냥 조용히 살긴 힘들겠는데.'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조용히 살자. 눈에 띄지 말고, 딱 목숨만 부지하자.'
45년 동안 존재감 없이 살아온 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선 오히려 그게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튀지 않고, 묻혀서 살아남는 것.
그게 내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다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1층에 도착하자, 학교 정문 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생존자들이었다.
정문 철제 담장 너머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배낭을 메고 있었고, 누군가는 부상당한 다리를 절뚝이며 서 있었다.
다들 하루아침에 삶이 뒤바뀐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이, 이미 스마트폰을 들고 옥상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봐! 방금 저 위에서 뭔가 빛나는 거 봤어!"
다른 누군가가 맞받았다.
"나도 봤어! 칼 같은 거 휘두르던데?"
그 목소리들이 정문을 넘어 내 귓가까지 또렷하게 날아와 박혔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곤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