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로부터 열흘 남짓, 강씨 세가에는 겉으로는 평온한 시간이 흘러갔다. 새벽이면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연무장에 태호의 작은 그림자가 어김없이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늘 강효가 팔짱을 낀 채 매서운 눈으로 아이의 자세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밭 위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마치 세가의 심장 박동처럼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낮이 되면 태호는 서아와 함께 세가 뒷마당을 뛰어다니며 나비를 쫓고, 연못가에 앉아 물수제비를 뜨며 또래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 속에서도 순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서아가 까르르 웃으며 태호의 소매를 잡아끌 때마다, 그는 잠시나마 단전 안에 도사린 검은 실의 존재도, 세가를 짓누르는 무거운 그림자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서서히 깊어지고 있었다.
"공자님, 검을 그렇게 쥐시면 힘이 낭비됩니다." 강효가 태호의 손목을 잡아 자세를 교정해주며 말했다. 그의 손은 투박했지만, 아이의 손목을 감쌀 때만큼은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검이란 것은 손목의 힘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단전에서 뻗어나가는 기운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힘을 주려 하지 말고, 흘려보내야 한다." 태호는 그 말을 곱씹으며 몇 번이고 검을 고쳐 잡았다. 손끝에서 검병까지 이어지는 감각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는 스승의 말을 몸으로 새기려 애썼다. "다시 해보아라." 강효의 말에 태호는 숨을 고르고, 하단전 깊숙한 곳에 자리한 기운을 조심스레 끌어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단전 안에 자리한 금단으로부터 진기를 끌어올릴 때마다, 그는 깊숙한 곳에서 여전히 꿈틀거리는 검은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태호가 진기를 운용할 때마다 미세하게 반응했다. 처음에는 그저 스치는 느낌이었으나, 열흘이 지난 지금은 마치 실이 살아 움직이며 진기의 흐름을 따라 함께 감기는 듯한 감각으로 변해 있었다. '이 실이…… 내 진기의 흐름을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다.' 태호는 검을 내려치는 순간에도, 그 이질적인 감각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검이 허공을 가르며 예리한 파공음을 내뱉었지만, 태호의 머릿속에는 오직 단전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검은 실의 감촉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공자님, 지금 흐름이 흔들렸습니다." 강효가 예리하게 지적했다. 태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강효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태호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잠시 망설였다. 말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지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이 힘이 자신에게 해가 될지 득이 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검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쓰다 보니." 태호는 애써 태연하게 답했다. 강효는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 한 켠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 아이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강효는 그 생각을 애써 접어두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태호의 검을 완성시키는 것이지, 아이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효는 태호를 데리고 연무장이 아닌 세가 후원의 작은 정자로 향했다. 정자에는 이미 찻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옅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검을 쉬고, 대신 다른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강효의 표정은 평소보다 한결 무거웠다. 그는 찻잔을 태호 앞으로 밀어주며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무맹의 비무 대회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회에서 세가의 성과가 곧 세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야."
태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찻잔의 온기가 손바닥에 스며들었으나, 그의 마음은 이미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할아버님께서는 네가 그 대회의 예선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계신다." "제가…… 말입니까?" 태호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아무리 금단을 이루었다 한들, 여덟 살의 나이로 무맹의 공식 대회에 나선다는 것은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태호의 머릿속에 순간 여러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향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던 조부, 근심을 감추지 못하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촌 형 태영까지. "가주님의 뜻이 그러하시다. 세가의 위신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계시지." 강효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근심이 섞여 있었다. 그 자신도 태호를 이렇게까지 이른 시기에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자님, 두려우십니까." 강효가 조심스레 물었다. 태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태호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말을 이었다. "세가를 위한 일이라면, 해야겠지요." 그 말에 강효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덟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너무나 어른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날 밤, 강씨 세가 대청에서는 원로들이 모인 자리가 열렸다. 대청 안은 벌써부터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고, 촛불의 그림자가 벽면을 따라 일렁이며 참석자들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강도천이 상석에 앉아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이 냉정했으나, 그 안에는 감출 수 없는 피로가 배어 있었다. "이번 비무 대회에 태호를 내보낼 것이다." 그 선언에 대청 안이 술렁였다. 원로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가주님, 아무리 태호 공자가 기재라 하나 여덟 살 아이입니다. 무맹 대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리이온데……" 한 원로가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만에 하나 공자에게 변고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세가의 위신을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입니다." 다른 원로 역시 말을 보탰다. "차라리 좀 더 시일을 두고 준비를 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청 안의 시선이 일제히 강도천에게로 쏠렸다.
강도천은 그 말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세가에는 시간이 없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호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죽간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창고의 곡식이 두 달을 버티지 못한다. 이번 대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리는 무맹 안에서의 입지마저 잃게 될 것이다." 그의 시선이 원로들을 하나하나 훑고 지나갔다. "태호가 예선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세가에 투자하려는 상단과 문파들이 눈길을 돌릴 것이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승리가 아니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증명, 그리고 가능성이다." 냉철한 계산이 밑바탕에 깔린 결정이었으며, 그 계산의 중심에는 여덟 살 소년의 어깨가 놓여 있었다. 몇몇 원로들은 여전히 불안한 낯빛을 감추지 못했으나, 가주의 단호한 어조 앞에서 더 이상 반박의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자리에는 강윤석과 강윤재 형제도 참석해 있었다. 강윤재는 아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태호야, 네가 견뎌낼 수 있겠느냐.' 그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가주의 앞에서 감히 그 말을 꺼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반면 강윤석은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계산이 오가고 있었다. '태영의 자리가 더욱 좁아지겠구나.' 그는 곁눈질로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대청 구석에 서 있던 태영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강윤석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눈빛 깊은 곳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려놓겠다는 계산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대청 안의 사람들은 하나둘 흩어졌으나, 그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태영은 그 자리에 잠시 더 머물러 있다가, 결국 조용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그는 홀로 세가 뒷산을 올랐다. 밤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고, 달빛이 산길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나뭇잎이 서걱이는 소리마저 그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내가 열네 살까지 쌓아온 것이, 여덟 살짜리 하나에게 통째로 짓밟히는구나.' 그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방울이 배어났지만, 그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음속의 불길이 뜨거웠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 밑동에 몸을 기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나는 매일같이 검을 놓지 않았고, 단 하루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의 눈앞에 태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진무구한 웃음을 짓던 어린 사촌 동생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얄밉게 느껴졌다.
그때, 산길 아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태영이 고개를 돌리자, 검은 무복을 입은 낯선 여인이 나무 그늘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스물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허리에 찬 얇은 단도가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여유로우면서도 절제되어 있었다. "누구냐." 태영이 경계하며 검병에 손을 얹었다. 그의 목소리는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미세하게 갈라져 나왔다. 여인은 대답 대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동시에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기이한 웃음이었다. "강씨 세가의 후계자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운이 좋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자신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씨…… 가문의 사람이냐." 태영이 낮게 물었다. 인근 이씨 가문과 강씨 세가는 오래전부터 미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두 가문의 반목에 대한 이야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인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이수아라 한다. 기억해두어도 좋다. 어차피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테니."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이 단도를 향해 미끄러졌다. 그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그것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태영은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기세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단도 절정 경지에 오른 강자의 살기가, 산길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숨을 삼키며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달빛과 나무 그림자,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낯선 여인뿐이었다. '이대로라면……'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죽을 것 같으냐." 태영은 애써 태연한 척 검을 뽑아 들었으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검을 쥔 손바닥에는 이미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이수아는 그런 그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단동 후기 경지의 애송이가, 자신만만하기는." 그녀가 낮게 웃으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 발걸음 하나에도 태영은 뒷걸음질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오늘 밤, 강씨 세가에 경고를 하나 남기고 가마."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는 조금도 낮지 않았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겹쳐졌다. 산속의 정적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졌고, 그 침묵을 깨뜨릴 첫 번째 움직임이 임박해 있었다. 태영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오기가 뒤섞여 있었고, 이수아의 입가에는 여전히 조롱 섞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바람이 순간 멎은 듯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가르는 첫 번째 움직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