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낙제생, 용의 피를 깨우다

1화

청연문 연무장 한가운데,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늘색 석판 위에 손바닥을 얹은 채였다. 석판은 미미하게 빛나다가,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하청." 시험관 노인이 짧게 말했다. 그 한 글자로 내 등급이 결정됐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래 문도들 중 상청 경지에 오른 자가 벌써 열이 넘었다는데, 나는 아직도 문턱을 못 넘은 셋 중 하나였다. 천고사라는 낡은 사찰에서 정신을 차린 게 반년 전이었다. 청연문에 거두어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때는 뭐라도 되겠지 싶었는데, 지금은 뭐라도 안 되고 있었다. "저게 그 유명한 최악의 재질이라는 놈인가."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귀가 뜨거워졌지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때 백의를 입은 청년이 걸어 나왔다. 임지훈이었다. 대장로의 수제자, 종파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이름. 스물한 살, 잘생긴 얼굴에 웃음기가 걸려 있었는데 그게 더 무서웠다. "이도현이라고 했나." "예." "네 재질로는 상청도 요원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있는 거지." "밥을 먹어야 하니까요." "..." 임지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주변이 다시 웃음으로 채워졌다. 이번엔 나를 향한 조롱이 아니라 당황을 감춘 웃음이었다. "재밌는 놈이군." 그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청연문은 밥 먹여주는 곳이 아니다. 힘을 만드는 곳이지. 힘이 없는 자는 짐이야." 그의 발끝이 내 어깨를 툭 밀었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균형이 무너지며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흙먼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씁쓸한 맛이 났다. "짐은 버려지는 게 순리다." 임지훈이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뒤이어 대장로가 단상 위에서 입을 열었다. "이도현." "예, 대장로님." "반년째 하청에 머문 제자는 흔치 않다. 규정대로라면 오늘로 방출이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방출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이곳에 온 지 한 달만 되어도 안다. 문파의 보호를 잃고, 배운 것을 봉인당한 채 세속으로 던져진다는 뜻이었다. 나는 흙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섰다. 무릎이 아렸다.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장로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에 이미 답이 쓰여 있었다. "기회." 그가 되뇌었다. "그렇다면 다음 달 초하루까지 상청에 오르도록. 못 오르면 그날로 문을 나가야 할 것이다." 한 달. 반년을 못 넘은 벽을 한 달 안에 넘으라는 소리였다.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기회가 아니라 사형선고에 붙인 예의 바른 딱지였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달이면, 뭐라도 되겠지. 그날 밤, 나는 처소 구석에 앉아 쇄골 부근을 들여다보았다. 쇄골 안쪽에 옅은 청색 자국이 있었다. 천고사에서 정신을 차린 그날부터 있던 흔적이었다.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도 몰랐다. 다만 그날 밤, 그 자국이 유독 뜨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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