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학교, 나는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눈두덩을 이끌고 등교했다.
밤새 뒤척인 탓이었다. 눈을 감으면 어제 본 잔상들이, 골목 사이로 스며들던 그 서늘한 기운이 계속 떠올랐고, 눈을 뜨면 다시 평범한 하루를 연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교문을 지날 때 울리는 등교 알림음마저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교실 문을 열자 소미가 벌써 휴대폰을 손에 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은아, 왔나! 빨리 이거 봐라.”
소미는 언제나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첫 마디는 커뮤니티 이야기였고, 나는 그게 오히려 고마울 때가 있었다. 소미가 신나 있는 동안에는 내 표정을 살필 여유가 그 애에게 없었으니까.
“어제 목격담 또 올라왔어. 신도림 쪽에서 격수 두 마리 동시에 사라졌대. 근데 이번엔 설백성이랑 청장미 님이 같이 있었단 얘기도 있어!”
나는 심장이 덜컹했지만 표정을 관리했다.
“그게 진짜야?”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딱 한 톤만 올려서 물었다. 이런 순간에는 지나치게 무심해도, 지나치게 놀라도 의심을 산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확실친 않아. 목격자가 딱 한 명이래. 근데 사람들이 그러던데, 설백성이 청장미 님 도와줬다는 얘기도 있고, 반대로 청장미 님이 설백성 잡으려던 거란 얘기도 있고.”
소미는 신도림 게시글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댓글창까지 하나하나 읽어줬다. 목격자의 닉네임, 사진 없는 텍스트 후기, 그 아래 달린 반신반의하는 댓글들. 나는 그 글을 이미 어젯밤에 세 번쯤 읽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가지 소문 모두 정답에서 살짝 빗겨나 있었다. 도와준 것도 아니었고, 잡으려던 것도 아니었다. 진짜는 그 둘 사이 어딘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어긋남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위험해지는 건 소문이 아니라 나였다. 차라리 소문이 엇나가고, 서로 부딪치고, 방향을 잃는 편이 나았다.
“근데 청장미 님은 진짜 팬 많더라. 어제 팬아트만 백 개 넘게 올라왔어.”
소미가 화면을 넘기며 감탄했다. 나는 그 팬아트 중 몇 장을 어젯밤 실제로 본 적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그림 속 인물과 실제로 나눈 대화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은 곳에 다시 한번 밀어 넣었다.
수업 종이 울렸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고,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는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 교실 안에서 이 사건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알아도 소용없는 앎이었다. 이 안에서는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앉아 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점심시간, 급식실은 여느 때처럼 시끄러웠다. 식판 부딪치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 저 끝자리에서 터지는 장난스런 비명. 나는 그 소음 속에서 혼자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서윤이 조용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하은아.”
“응.”
서윤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다. 꾸밈이 없었고, 필요한 말만 정확히 골라 썼다. 사투리를 쓰는 소미와는 정반대의 결이었다. 소미의 말은 굴곡이 많고 정겨웠지만, 서윤의 말은 다듬어진 돌처럼 매끈하고 단단했다.
“나 어제 되게 걱정했어. 너 요즘 계속 뭔가 숨기는 것 같아서.”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서윤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 게 힘들었다. 서윤은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려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숨긴 것까지 포함해서 받아들이겠다는 눈빛이었고, 그게 오히려 더 아팠다.
“근데 뭔지 안 물을게. 대신 하나만 약속해줘. 진짜 위험한 일이면 나한테 말해줘야 해.”
그 말에는 사투리도 꾸밈도 없었다. 서윤 특유의 정제된 문장이었고, 나는 그 안에 담긴 무게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응. 약속할게.”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이 약속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위험한 일은 이미 매일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걸 말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계산은 이미 끝나 있었다. 서윤에게 사실을 말했을 때의 위험과, 말하지 않았을 때의 죄책감. 둘을 저울질하면 답은 늘 같은 쪽으로 기울었다. 말하지 않는 쪽이, 최소한 서윤을 이 사건 밖에 묶어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마워.”
서윤이 짧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안심과 불안이 반씩 섞여 있었고, 나는 그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서윤은 내가 거짓 약속을 했다는 걸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미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근데 다음 주에 설아 님 대규모 팬미팅 있는 거 알아? 관리국 주최로 하는 공개 행사래. 청담대로에서!”
그 말에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청담이라면, 청장미 님이 말한 격수 밀집 구역 세 곳 중 하나였다.
“진짜 대박이야. 티켓 오픈 되면 바로 사자!”
소미가 흥분한 얼굴로 휴대폰을 흔들었다. 화면에는 이미 예매 오픈 일정과 좌석 배치도까지 캡처되어 있었다. 관리국이 직접 주최하는 공개 행사라는 문구가 화면 상단에 굵은 글씨로 박혀 있었다.
“관리국이 왜 팬미팅을 주최해?”
내가 묻자 소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거 몰랐나. 요즘 격수 사건 때문에 관리국이 시민들 불안 잠재우려고 이것저것 하잖아. 안전 홍보도 하고, 유명인들 불러서 행사도 열고. 설아 님도 관리국 홍보대사래.”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청담대로, 그리고 그 주변으로 뻗은 골목들. 청장미 님이 손끝으로 짚어가며 알려준 세 구역 중 하나가 정확히 그 자리에 겹쳤다.
서윤은 여전히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구역이, 격수가 유독 몰리는 세 구역 중 하나와 겹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우연일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를.
관리국이 왜 하필 그 구역에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대규모 인파를 모으는 행사를 여는가. 사람이 많을수록 격수가 몰린다는 건 이미 알려진 패턴이었다. 그런데도 관리국은 그 자리를 골랐다. 실수라고 보기엔 겹치는 우연이 지나치게 정확했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라던 청장미 님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경고로만 들렸는데, 지금은 그 문장이 눈앞의 사실과 정확히 들어맞고 있었다. 격수 밀집 구역, 대규모 행사, 관리국의 개입. 하나씩이라면 우연이라 넘길 수 있었지만, 셋이 겹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우연이라고 부를 수 없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셈은 이미 나와 있었다. 답을 몰라서 불안한 게 아니라, 답을 알아서 불안한 상황이었다.
“하은아, 표정이 왜 그래.”
소미가 물었다. 나는 재빨리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야. 그냥 배고파서.”
소미는 그 말을 순순히 믿고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애의 시선이 아주 잠깐 더 길게 내 얼굴에 머물렀다는 걸 느꼈다.
그날 하교 후, 나는 서윤과 소미와 함께 평소처럼 떡볶이집에 들렀다.
가게 안은 늘 그렇듯 매운 양념 냄새와 튀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항상 앉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소미가 제일 먼저 떡볶이 2인분과 튀김을 시켰고, 서윤은 조용히 물컵을 채워 우리 앞에 놓아주었다.
아무 일도 없는 척, 나는 웃고 떠들었다. 소미는 설아 님 이야기로 신났고, 서윤은 조용히 내 옆을 지켰다.
“이번 팬미팅 앨범 사인회도 같이 있대. 진짜 가고 싶다.”
소미가 튀김을 씹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그 행사장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출입구가 몇 개일지, 인파가 몰리면 대피로가 얼마나 확보될지, 그 계산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하은이는 안 갈 거야?”
소미가 물었다.
“글쎄. 그날 다른 일 있을 것 같아서.”
“무슨 일?”
“그냥, 집안일.”
거짓말은 짧을수록 안전했다. 길게 설명하려는 순간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의심이 스며든다는 걸 나는 이미 배웠다. 소미는 별 의심 없이 다시 떡볶이로 시선을 돌렸지만, 서윤의 젓가락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숨기는 것이 늘어날수록, 이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는 매번 뒤늦게 깨달았다.
떡볶이 국물이 튀김을 적시는 소리, 소미의 웃음소리,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요즘의 나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비밀을 끝까지 혼자 짊어져야 했다.
가게를 나설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소미는 버스를 타러 갔고, 서윤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몇 블록을 함께 걸었다. 갈라지는 골목 앞에서 서윤이 잠깐 멈춰 섰다.
“약속 잊지 마.”
“응, 안 잊어.”
서윤은 더 묻지 않고 돌아섰다. 그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울렸다.
거리는 조용했다. 가로등 아래로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저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발신자 표시 없는 낯선 번호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설백성 씨죠.”
낮고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나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무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낯선 번호를 통해 내 귀에 정확히 박히는 순간, 나는 이게 단순한 스팸이나 잘못 걸린 전화가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아챘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나는 최대한 낮게 물었다.
“관리국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그 순간, 밤거리의 소음이 전부 사라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자동차 소리도, 가로등 밑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심지어 내 숨소리마저 멀게 느껴졌다.
나는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는 걸 느끼며, 전화기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