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언니, 저도 마법소녀예요

2화

쉬는 시간, 청람중학교 3학년 2반 교실. 창문 틈으로 봄바람이 밀려들어왔고,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어깨부터 발끝까지 지난밤의 피로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채 고여 있었다. “하은아, 너 요즘 팔에 자꾸 그거 뭐야.” 창가 자리에서 서윤이 내 팔을 툭 쳤다. 손끝이 닿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서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반이었던 적이 세 번이다. 그 세 번의 시간 동안 나는 서윤이 뭔가를 물을 때 절대 즉흥적으로 묻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윤은 관찰하고, 기록하고, 확신이 생겼을 때에야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질문도 그랬다. 그냥 궁금해서 던지는 말이 아니라, 이미 며칠 치 데이터를 쌓아놓고 확인하려는 질문이었다. 나는 순간 소매를 잡아 내리며 웃음으로 넘기려 했지만, 이미 서윤의 눈은 내 손목 위 옅은 자국을 지나치지 않고 있었다. 어젯밤 격수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낙하 반동으로 옥상 배관에 스친 상처였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각도가 애매해서 옷으로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배관 모서리가 팔 안쪽을 긁고 지나갔을 때, 나는 통증보다 먼저 각도를 계산했다. 셔츠 소매로 가릴 수 있는 범위, 밴드로 덮을 수 있는 넓이, 그리고 서윤이 앉는 자리에서 보이는 시야각까지. 그 계산은 지금 이 순간 완벽하게 틀렸다는 게 증명되고 있었다. “아, 이거 어제 계단에서 넘어졌어.”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팔에 이런 자국이 생겨?” 서윤의 목소리에는 억양 변화가 거의 없었다.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그저 사실을 확인하는 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서윤이 진심으로 걱정할 때와 그냥 궁금해할 때의 온도차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걱정일 때는 문장 끝이 아주 살짝, 0.5초 정도 늘어졌다. 그냥 궁금할 때는 문장이 딱 잘렸다. 이번은 전자였다. 문장 끝이 늘어졌다. “그리고 요즘 너 자꾸 밤에 문자 답장이 느려. 학원 끝나고도 한참 있다가 답하고.” 서윤은 관찰자였다. 소미처럼 눈에 보이는 정보를 요란하게 떠벌리는 성격이 아니라, 조용히 데이터를 쌓아두고 어느 순간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쪽이었다. 문자 답장 시간, 팔의 상처, 최근 며칠간 부쩍 늘어난 지각과 졸음. 서윤의 머릿속에서 이 세 가지는 이미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게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소미의 호기심은 스쳐 지나가지만, 서윤의 관찰은 절대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학원 숙제가 많아져서 그래.”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지금 얼마나 부실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학원 숙제는 예전과 똑같았다. 달라진 건 나였다. 서윤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내 팔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수긍의 뜻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서윤이 방금 얻은 데이터를 저장했다는 신호였다. 점심시간, 급식실로 가는 복도에서 소미가 다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이것 봐, 설백성 얘기가 또 올라왔어. 이번엔 목격자가 사진도 찍었대!” 손끝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냉기가 손목을 타고 팔꿈치까지 번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곁눈질로만 살폈다. 흐릿한 실루엣이었다. 다행히 얼굴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롱코트 자락만 겨우 식별 가능한 수준이었다. 화질은 형편없었다. 픽셀이 뭉개져서 형태만 겨우 짐작할 정도였다. 그래도 화질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처음 목격담이 올라왔을 때는 그냥 그림자였다. 두 번째는 실루엣이었다. 세 번째, 오늘 소미가 보여준 사진은 코트의 재질과 자락의 길이까지 구분이 가능했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다. 목격자가 늘어나는 속도와 화질이 나아지는 속도는 정확히 비례하고 있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다음 목격담에서는 얼굴 윤곽 정도는 잡힐지도 몰랐다. “근데 사람들이 이상한 얘기도 하더라. 이거 진짜 마법소녀 아니라 그냥 이상한 무기 든 미친 사람 아니냐고. 관리국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고.” 소미는 재미있다는 듯 그 논쟁을 읽어주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댓글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는 소미의 목소리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미에게는 이 모든 게 흥미로운 괴담이었고, 학교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화젯거리였다. 나는 속이 서늘해지는 걸 참아야 했다. 관리국이 나를 찾기 시작하면, 그건 격수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와 마주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격수는 힘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관리국은 그렇지 않았다. 관리국이 움직이면 조사가 시작되고, 조사가 시작되면 신원 확인이 이어지고, 신원 확인 다음에는 내 가족과 학교와 이 모든 일상이 함께 끌려나올 것이다. 그 셈은 이미 몇 번이나 해본 것이었고,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절대 걸리면 안 된다. “하은아, 듣고 있어?” 소미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신기하다.” 내 목소리가 얼마나 건조했는지, 소미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오후 수업 시간, 나는 창밖의 하늘을 보다가 반쯤 졸았다. 어제 세 시간도 못 잔 탓이었다. 격수와의 교전이 예상보다 길어졌고, 처리 후 잔여물을 수거하고 흔적을 지우는 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집에 들어와 씻고 눕자 새벽 세 시가 지나 있었다. 몸은 침대 위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옥상 위, 배관 사이,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 위를 헤매고 있었다. 칠판의 글씨가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졌고, 나는 몇 번이나 그것을 억지로 밀어 올렸다. 담임이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섰다. “강하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반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몰렸다가 흩어졌다. 몇몇은 이미 관심을 잃고 다시 필기를 시작했다. 서윤만이 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서윤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걸 느끼면서 자리에 앉았다. 뒷목이 뜨거웠다. 서윤이 지금 무엇을 계산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팔의 상처, 늦은 답장, 이제는 수업 시간의 졸음까지. 서윤의 목록에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것이다. 남은 수업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등을 곧게 펴고 눈을 크게 뜨려고 애썼다. 그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다는 걸 알면서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교 후, 서윤이 나를 붙잡았다. 교문을 나서자마자였다. 서윤은 평소보다 걸음이 빨랐고, 나를 붙잡은 손에도 평소와 다른 힘이 들어가 있었다. “가방 좀 줘봐. 무슨 벽돌 넣고 다니는 것 같길래.”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내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어제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마력 압축탄의 잔여 결정체가 몇 개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겉보기엔 반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였지만, 손에 닿으면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는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격수를 처치한 후에 남는 이 결정체들은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면 며칠 안에 스스로 부서지면서 옅은 빛을 뿜어내는 성질이 있었다. 어제는 그걸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배관에 스친 상처를 소독하고, 옷을 갈아입고, 겨우 침대에 누울 시간밖에 없었다. 가방 정리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었다. “아, 이거 그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윤이 가방끈을 잡아당겼다. 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몸 쪽으로 끌어안았다.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어제 생긴 상처가 다시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통증은 지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 동작이 너무 다급했던 탓에, 서윤의 손끝이 가방 옆주머니 지퍼에 스치며 살짝 열렸다. 찰나였다. 하지만 그 찰나 안에서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결정체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둥그런 구슬이 보도블록 위를 두어 바퀴 돌다 멈췄다. 은은한 빛이 그 안에서 미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심장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서윤의 시선이 그 빛에 완전히 고정되었다. “이게 뭐야…….”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궁금함도 아니고 걱정도 아닌, 처음 들어보는 톤이었다. 서윤이 몸을 숙여 그것을 집으려는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보다 먼저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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