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박정수는 관리청 3년 차 감시관이었다.
직급은 대리급, 담당 구역은 서울 강북권 일대의 미등록·저등급 계약 사례 모니터링.
쉽게 말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하위 등급 계약을 훑어보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승진 가망 없는 부서다.
관리청 내에서도 이 팀은 "잉여 인력 창고"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누구도 여기서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박정수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3년째 이 자리에 있으면서 그가 발견한 가장 짜릿한 사건은 F등급 테이머가 계약한 슬라임이 실습 도중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는, 뭐 그런 수준의 이야기였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자동 필터링된 보고서 목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형식적인 재확인 건이었다.
F등급 테이머의 계약 성공 사례, 초급 슬라임 계약, 특이사항 없음.
그는 마우스 휠을 굴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서 쓴맛만 남은 아메리카노였다.
탕비실 커피머신은 3주 전부터 고장 나 있었고, 총무팀에 수리 요청을 넣은 지 벌써 두 번째였다.
보통은 이런 목록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한 항목이 하나 끼어 있었다.
[모니터링 대상 : 이도훈 (테이머, F등급)]
[계약 개체 : 몽이 (분류 미확정)]
[특이사항 : 실습장 감시 카메라 스킬 발동 감지, 원인 미확인 시각 왜곡 현상]
박정수는 미간을 좁혔다.
시각 왜곡 현상이라니, 이건 통상적인 필터링 문구가 아니다.
관리청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분류 불가'라는 태그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이 태그를 실제로 마주친 적은 딱 한 번, 그것도 교육 자료 화면에서였다.
그는 첨부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에서, 평범해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슬라임과 함께 실습장에 있었다.
슬라임이 인형을 향해 몸을 부딪힌 순간, 화면이 잠깐 하얗게 번쩍이고, 학생의 눈앞에 반투명한 무언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카메라는 그 반투명한 창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다.
마치 시스템 자체가 그걸 '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영상 데이터에는 오류 픽셀만 가득했다.
박정수는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결과는 똑같았다. 그 반투명한 창이 뜨는 순간마다 화면은 정확히 그 구간만 깨져 있었다.
우연이라면 이렇게 정교하게 우연일 수가 없다.
그는 이게 카메라 결함인지, 시스템 자체의 방어 기제인지 판단이 안 됐다.
어느 쪽이든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박정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관리청에서 3년 근무하며 이런 종류의 데이터 오류는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S급 재해지정종이 각성하던 순간의 기록에서였다.
그때도 시스템은 화면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은폐했다. 마치 인간이 봐서는 안 될 걸 필사적으로 가리는 것처럼.
그는 즉시 개체 '몽이'의 상세 정보를 조회했다.
[분류 : 미확정]
[성장 곡선 : 표준 대비 47배]
[전투력 : 표준 대비 측정 불가]
[재해지정 가능성 : 분석 중... 분석 중... 분석 중...]
분석 중이 세 번 뜬다는 건, 시스템이 판단을 유예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박정수는 이런 케이스를 예전 교육 자료에서 본 적이 있었다.
표준 등급 체계를 벗어나는 개체에게만 나타나는 현상.
강사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이런 개체를 만나면, 여러분이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최대한 빨리 위로 던지고 손 터는 것."
당시엔 웃으면서 넘겼던 농담이 지금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다니엘 4:35, 그는 자기 뜻대로 하늘의 군사와 땅의 거민에게 행하시나니 그 손을 금할 자가 없도다]
박정수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저 구절이 유독 서늘하게 다가왔다.
손을 금할 자가 없다는 게, 지금 이 슬라임 얘기 같았다.
아니, 뭐지, 성경도 슬라임 앞에서는 별수 없다는 건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는 화면을 캡처해 개인 폴더에 백업부터 해뒀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나중에 이 기록이 통째로 삭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을 뿐이다.
관리청에서 3년을 버티다 보면 이런 잔망스러운 자기방어 습관이 하나둘 생긴다.
그는 곧바로 상부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보고 대상] 이도훈 (테이머, F등급), 계약 개체 '몽이'
[요약] 계약 개체의 성장 곡선이 표준을 크게 초과함. 테이머의 유니크 스킬로 추정되는 미확인 능력이 관찰됨. 개체의 진화 방향성이 시스템 분류를 벗어나는 것으로 판단됨. 관심군 등록 및 추가 모니터링을 권고함.
작성하면서도 박정수는 손이 떨렸다.
관심군 등록은 별거 아닌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부 기관—기업 연계 부서와 브로커들에게도 정보가 흘러갈 수 있는 시작점이다.
한 번 관심군에 오르면, 개체와 계약자 둘 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는 걸, 그는 3년 경력 내내 지켜봐 왔다.
작년에 있었던 한 사례가 떠올랐다. B등급 판정을 받았던 어느 헌터 지망생이, 관심군에 등록된 지 한 달 만에 세 개 기업으로부터 동시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학생은 결국 학교도 그만두고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관리청 서류에는 그냥 "이적 처리 완료"라는 한 줄만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절차는 절차다.
보고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커지면 그 책임은 전부 그의 몫이 된다.
관료제란 그런 것이다, 남을 지켜주기보다는 자기 목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박정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마치 그 말이 면죄부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결재란에 서명을 하기 전, 잠시 손을 멈췄다.
영상 속 학생의 표정이 떠올랐다.
뭔가 대단한 일을 벌이려는 야심가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얼떨떨하고, 어리둥절한, 그냥 평범한 열여덟 살 고등학생의 얼굴이었다.
슬라임이 벽에 몸을 부딪히는 순간에도, 그 학생은 놀란 표정보다는 "이게 뭐지" 하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반값 할인 상품인 줄 알고 산 물건이 알고 보니 명품이었을 때 짓는 표정 같았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악의 없는 사람이 통제 불가능한 힘을 손에 쥐었을 때가, 관리청 입장에서는 가장 처리하기 곤란한 케이스였다.
욕심 있는 놈은 다루기 쉽다. 협상을 걸든 회유를 하든, 원하는 게 뻔하니까.
근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놈은, 뭘로 어떻게 구슬려야 할지 답이 안 나온다.
박정수는 결국 서명을 마쳤다.
[관심군 등록 완료]
[담당 부서 이관 : 특수개체 관리팀]
서명 버튼을 누른 순간, 그의 모니터 옆에 놓인 서류함 위로 팀장이 다가왔다.
"박 대리, 뭐 특이한 거 있어?"
"...있는 것 같습니다. 좀 큰 건일 수도 있어요."
팀장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표정이 굳었다.
"이거... 성장 곡선 47배? 이거 확실해?"
"세 번 재검증했습니다."
팀장은 의자를 끌어와 박정수 옆에 바짝 앉았다.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모니터에 박혀 있었다.
"영상은 봤고?"
"봤습니다. 화면 깨지는 구간 있는 거 보셨죠."
"그거 나도 봤어. 그거 딱 하나 생각나는 케이스가 있는데."
"S급 각성 기록 말씀이시죠."
팀장이 안경을 다시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 그거."
팀장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위에 보고하면... 기업 쪽에서도 냄새 맡을 텐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박정수도 잘 알고 있었다.
S급 재해지정 가능성이 있는 개체는 관리청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민관 합동 특별관리 대상으로 전환되고, 그 순간부터 대형 헌터 길드나 기업 계열 연구소들이 정식으로 접근 권한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좋게 말하면 국가적 자원 보호.
나쁘게 말하면, 열여덟 살 소년과 그의 슬라임이 순식간에 여러 이익 집단의 표적이 된다는 뜻이었다.
팀장이 자리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박 대리, 이거 네가 발견한 거니까 앞으로 이 케이스 계속 담당해. 위에서 뭐라 하든, 처음 발견자가 계속 물고 있는 게 원칙이잖아."
"...예."
박정수는 그 말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판단이 안 섰다.
큰 건을 잡았다는 성취감과, 앞으로 이 폭탄을 계속 안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박정수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서울의 야경이 평소와 다름없이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 불빛이 강변북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고, 저 멀리 아파트 단지의 창문들이 하나둘 불을 끄고 있었다.
평범한 밤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하지만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저 야경 어딘가, 강북구 어느 골목에서, 세상의 균형을 흔들 수도 있는 무언가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언가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정작 그게 뭔지도 모른 채 편의점 반값 삼각김밥을 먹으며 웃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박정수는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다.
운명의 무게라는 게 이렇게 가벼운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보고서 전송 완료]
[특수개체 관리팀이 사건을 인계받았습니다]
모니터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현장 조사관 파견 예정 : 48시간 내]
박정수는 그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48시간. 이틀도 안 되는 시간이다.
그 이도훈이라는 학생은, 자기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뒤바뀔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을 터였다.
박정수는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강북구 방향의 불빛들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 불빛들 중 어느 하나 아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소년과 슬라임을 떠올리며, 그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았다.
창밖의 강북구 골목 어딘가, 이도훈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48시간 뒤, 그의 눈앞에 나타날 낯선 사람이 어떤 얼굴로 무슨 말을 건넬지, 그것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