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생님, 이제 헌터 합니다

4화

그리고 삼 주 뒤, 나는 헌터청 산하 탐험자 등록센터 시험장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서류상 이름은 강도현, 나이 서른둘, 무직. 주민등록번호도 새로 발급받았고, 병원에서 받은 신분증에 붙은 사진 속 얼굴은 낯설지만 이제는 매일 거울에서 보는 얼굴이었다. 대기실 의자는 딱딱했고, 벽에는 각종 주의사항이 붙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몬스터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생명보험 가입을 권장합니다" 같은 살벌한 문구들이었다. 나는 그걸 읽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씨발, 여기 무슨 직업소개소가 아니라 사망 각서 받는 곳인가. 대기실에는 나 말고도 대략 십여 명이 앉아 있었는데, 대부분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다리를 떨며 초조해했고, 나만 유일하게 삼십 대로 보이는, 그것도 딱히 초조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폰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그 시선에서 '저 아저씨는 여기 왜 왔지' 하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알아, 나도 알아, 이 씨발 상황이 이상하다는 거. "강도현 씨, 이쪽으로 오세요." 담당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앳된 얼굴에 생기 있는 표정, 말끝마다 느낌표가 붙는 듯한 말투였다. "처음 응시하시는 거죠? 신기하네요, 이 연령대에서 신규 등록하시는 분은 별로 없는데!" "…네, 뭐." 나는 최대한 무난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신기해할 게 아니라 내가 더 신기하다, 이 씨발. 직원은 서류를 확인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이전 직업, 각성 시기, 각성 계기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준비해온 대로 "회사원이었다가 사고로 각성했다"는 뻔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직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걸 받아 적었고, 나는 그 순간 이 세계가 각성자라는 존재에 얼마나 관대한지 새삼 느꼈다. 갑자기 서른두 살짜리 무직자가 나타나서 초인적인 힘을 가졌다고 말해도,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필기시험은 예상보다 훨씬 낯설었다. 첫 문제부터 던전 등급 체계에 관한 질문이 나왔는데, 나는 이 세계에 그런 등급 체계가 있다는 것조차 처음 알았다. 던전은 발견 순서에 따라 고유 번호가 부여되며, 내부 몬스터의 평균 위협도를 기준으로 F등급부터 S등급까지 분류된다. F등급은 일반인도 무장 없이 통과 가능한 수준이며, S등급은 국가 소속 정예 부대만 진입이 허가된다. 탐험자는 개인 자격시험을 통해 D등급부터 S등급까지 개별 등급을 부여받으며, 이 등급은 진입 가능한 던전의 범위를 결정한다. 신규 등록자는 예외 없이 최하위인 F등급 자격시험부터 시작해야 하며, 실전 평가와 필기 평가를 모두 통과해야 상위 등급 응시가 허가된다. 문제지를 읽으면서 나는 십오 년 동안 학생들에게 문제 출제 방식을 지적하던 버릇이 튀어나와 속으로 이 문제 출제자는 답이 두 개 나올 수 있게 만들었다고 투덜거렸는데, 그러면서도 손은 답을 하나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4번 문제는 아예 "게이트 발생 시 시민 대응 수칙"을 묻는 문제였는데, 나는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사지선다인데 두 개는 확실히 아니고, 남은 두 개 중에 하나를 찍어야 했는데, 나는 십오 년간 시험 감독을 하면서 학생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걸 고르는지 지켜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결국 아무 근거 없이 3번을 찍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오십 문제 중에 열두 개 맞으셨네요." 감독관이 채점표를 보여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상식으로도 이 정도는 안 나오는데, 혹시 준비를 전혀 안 하셨어요?" "…네, 뭐,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 십오 년 동안 각종 지필평가를 만들고 채점해온 내가, 이런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시험 문제 출제 위원회에서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던 강수아가, 던전 등급 체계 하나 몰라서 열두 개밖에 못 맞았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끄러움이나 짜증이 예전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 상황이 어이없어서 조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게 바로 이 몸의 감정 기복이라는 건가. 필기시험이 낙제 수준이었지만, 실기시험은 응시 자체가 허가되었다. "필기는 재시험 대상이지만, 신체능력 측정 결과가 좋으면 예외적으로 통과시켜드리는 규정이 있어요." 감독관이 그렇게 설명해줬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몸이 힘이 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게 시험장 기준으로 얼마나 대단한 수준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기시험장은 넓은 체육관 같은 곳이었고, 각종 측정 기구가 늘어서 있었다. 악력계, 도약 측정판, 그리고 벽에 붙은 표적을 향해 무기를 던지는 코스까지 있었다. 체육관 한쪽 구석에는 러닝머신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그 위에서 이미 다른 응시자가 전속력으로 뛰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뛰는 모습이 딱 마라톤 완주 직전의 사람 같았다. "악력계 잡아보세요." 나는 별생각 없이 손잡이를 쥐었는데, 감독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한 번 더 해보실래요?" 다시 잡았을 때 숫자가 화면에 뜨자, 감독관 뒤에 서 있던 다른 직원까지 몰려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이거 측정 오류 아니에요?" "장비 재부팅해봐요." 장비를 다시 켜고 세 번을 다시 측정했지만 숫자는 매번 비슷하게 나왔다. 직원 하나가 아예 계산기를 꺼내들고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로또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 사람 같아서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게 그 각성자 등급 최상위권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도약 측정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제자리에서 뛰어오른 높이가 측정판 상단을 넘어서서, 결국 측정판 위쪽 프레임에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쿠웅- 프레임에 부딪힌 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렸고, 순간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죄, 죄송합니다." 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얼굴 근육이 예전만큼 다양한 표정을 만들지 못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표정이라는 게 이렇게 감정에 종속되는 거였구나, 하는 걸 이 몸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이어진 표적 던지기 코스에서도 사달이 났다. 감독관이 나무 막대 형태의 훈련용 창을 건네주며 저 앞의 표적을 향해 던지라고 했는데, 나는 그냥 평범하게 던졌을 뿐인데 창이 표적을 뚫고 지나가 뒤쪽 매트리스에 반쯤 박혀버렸다. 감독관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류판만 만지작거렸고, 옆에 있던 다른 응시자들은 이미 나를 신기한 동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강도현 씨, 잠깐 이쪽으로 좀…" 감독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별도 면담실로 데려갔다. 면담실은 좁고 창문이 없는 방이었는데, 책상 위에 놓인 서류철에는 이미 내 측정 결과가 인쇄되어 있었다. 숫자 옆에 빨간 펜으로 밑줄이 여러 개 그어진 걸 보니, 이게 흔치 않은 수치라는 게 확실했다. "측정치가 신규 응시자 기준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준입니다. 저희가 상위 기관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보고까지 해야 돼요?" "이 정도면 D등급이 아니라 최소 B등급 이상 응시 자격이 나와요. 근데 필기가 이 상태라서, 실전 평가 하나 더 거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멍해졌다. 필기는 낙제인데 실기는 최상위권이라니, 이거 완전히 균형이 안 맞는 조합 아닌가. "혹시 필기를 다시 볼 수는 없나요?" 내가 물었더니 감독관은 서류를 뒤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재시험은 육 개월 뒤에나 가능하고, 지금은 실전 평가로 대체하는 게 훨씬 빠르실 거예요. 어차피 신체능력만 보면 강도현 씨는 이론 몰라도 현장에서 문제없으실 것 같은데…" 그 말이 왠지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 이론도 모르는데 몬스터랑 붙어보라는 소리 아닌가. "그 실전 평가는 어디서 하는데요?" "F등급 던전 현장 견학 겸 실전 대응 평가입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관악산 부근 게이트로 오시면 됩니다." 감독관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나는 그 도장 소리를 들으며 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빨라지는 걸 느꼈다. 십오 년 동안 교실 안에서만 살아온 강수아가, 이제는 몬스터가 나온다는 던전 앞에 서게 된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면담실을 나서면서 감독관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F등급 던전이라도 절대 안전한 건 아니니까, 준비물 목록 꼭 확인하시고 오세요. 특히 무기는 대여도 가능하니 미리 신청하시고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복도를 걸어 나왔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내일 저 하늘 아래서 뭘 마주하게 될지, 나는 아직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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