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삼 학년 이 반 교실 문을 열면 늘 똑같은 냄새가 났다. 땀 냄새와 급식 냄새, 그리고 스물여덜 명의 열여섯 살짜리들이 뿜어내는 알 수 없는 반항의 냄새가 뒤섞인, 그 특유의 공기. 십오 년째 매일 아침 그 문을 열면서도 나는 아직 이 냄새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어떤 날은 그냥 교실 냄새고, 어떤 날은 유독 코를 찔러서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지 미리 알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후자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재민이는 뒷자리에서 이어폰을 낀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나는 벌써 세 번째로 그 이름을 불렀다. 앞자리 애들 몇 명이 슬쩍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앞을 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것들도 이미 알고 있는 거다. 오늘도 뭔가 한 판 벌어질 거라는 걸.
"재민아, 수업 시간이야."
대답이 없었다.
네 번째로 불렀을 때, 그제야 재민이가 고개를 들었는데, 그 눈빛에 담긴 게 무기력함이 아니라 명백한 경멸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나는 속으로 숨을 한 번 크게 삼켰다. 저 눈빛, 저건 잠이 덜 깨서 나오는 눈빛이 아니다. 저건 계산된 눈빛이다. 딱 어느 정도까지 선을 넘어도 되는지 이미 계산이 끝난, 열여섯 살짜리의 눈치.
"아, 왜요."
짧고 퉁명스러운 그 두 마디에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웃었고, 나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로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교과서 몇 쪽을 펴라는 말, 이어폰은 수업 중엔 빼야 한다는 말, 다 해봤자 마이동풍인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말들.
십오 년 차 교사라는 경력이 이럴 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히려 경력이 쌓일수록 참는 법만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화를 내는 법을 배우기보다, 화를 삼키는 법을 더 정교하게 배워온 십오 년.
그날 오후 학부모 상담이 하나 더 걸려 있었는데, 재민이 어머니였다. 사실 며칠 전 재민이가 반성문을 쓰게 된 사건 — 후배를 밀쳐서 계단에서 넘어뜨린 일 — 때문에 예정돼 있던 통화였다.
"우리 애가 왜 반성문을 써야 하죠? 선생님이 먼저 자극한 거 아니에요?"
전화기 너머로 날카롭게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두통약 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통화가 시작된 지 오 분도 안 됐는데 벌써 세 알째 먹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 그날 상황은 담임인 제가 직접 목격했고요, 다른 학생들 진술도 있습니다."
최대한 사무적으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지만 이미 관자놀이 쪽에서 뭔가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미리 다 정해놓고 전화를 건 게 분명했다. "선생님이", "선생님 때문에", "선생님이 먼저"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계속 반복됐고, 나는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서 최소한의 사실만 짚어내려 애썼다.
"어머님, 저도 십오 년째 이 일을 하고 있고요. 학생 편을 안 들고 싶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니라, 정말 사실이 그렇습니다."
"십오 년이나 하셨으면서 애 하나를 그렇게 몰아붙이세요?"
몰아붙였다는 표현이 나오는 순간, 나는 속으로 아, 이건 이제 대화가 아니라 그냥 화풀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삼십 분을 더 통화하고 나서 교장실로 불려 올라갔을 땐, 이미 오늘 하루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강 선생님, 학부모님이 민원을 넣으셨던데, 좀 유연하게 대처하시면 안 될까요?"
교장이라는 사람은 항상 이런 순간엔 유연이라는 단어를 참 편하게 썼고, 나는 그 유연함이라는 말이 결국 교사가 알아서 참으라는 뜻이라는 걸 십오 년 동안 배워왔다. 교권이라는 말은 각종 공문서와 연수 자료에는 넘치도록 쓰이지만, 실제로 학부모 민원이 하나 걸리면 그 단어는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는 것도,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담임교사에게는 학생 지도에 관한 일차적 권한이 있고, 교육청 규정상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해 서면 지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그 규정이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힘을 갖는지는 매번 다시 확인해야 하는 문제였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교장실을 나섰는데, 복도를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일을 왜 아직도 하고 있는 걸까.
답은 잘 나오지 않았다. 복도 창밖으로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받는 다른 반 아이들이 보였다. 공을 차며 웃는 얼굴들, 저 나이대엔 다 저렇게 순진해 보이는데, 왜 교실 안에만 들어오면 그 순진함이 다른 얼굴로 바뀌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마지막 수업, 재민이는 또 사고를 쳤다.
짝꿍의 필통을 창밖으로 던지고는 낄낄거리며 웃었고, 짝꿍이 울음을 터뜨리자 반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필통이 창밖으로 날아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그게 그냥 필기구 몇 개가 든 플라스틱 통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삼 년치 자존심 같은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짝꿍은 원래도 반에서 말이 없는 아이였고, 재민이는 그런 아이를 골라서 건드리는 재주가 있었다.
"재민아, 지금 당장 사과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재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씩 웃었는데, 그 웃음에서 나는 처음으로 순수한 적의를 느꼈다. 지금까지 봐온 반항이나 짜증, 무기력함과는 결이 다른, 명백하게 나라는 사람을 깔아뭉개기로 결심한 웃음이었다.
"싫은데요? 선생님이 뭔데요."
순간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윙-
하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서, 나는 눈앞이 살짝 흐려지는 걸 느꼈고, 손끝에서부터 뭔가 낯선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끼며 이게 뭔가 싶었다.
분노인가.
아니, 분노보다 더 차갑고 더 단단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마치 몸 안에 있던 뭔가가 그동안 계속 억눌려 있다가,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느낌. 십오 년 동안 삼켜온 것들이, 참아온 말들이, 웃음으로 넘겨온 모욕들이 한꺼번에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뭔데요, 왜 말이 없으세요?"
재민이가 한 발짝 더 다가와 비웃는 얼굴로 말했을 때, 나는 내 목에서 나가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게 깔린다는 걸 깨달았다.
"…앉아."
그 한 마디를 하는데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성대를 잠깐 빌려 쓴 것처럼, 낮고 굵고, 무엇보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였다. 평소 내가 아이들을 혼낼 때 쓰던, 애써 화를 누르며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음색이었다.
반 아이들 몇몇이 갑작스러운 침묵에 나를 쳐다봤고, 재민이도 순간 멈칫하는 게 보였다.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걸, 나는 이상하게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그런데 그 순간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쿠웅-
마치 몸속에서 무언가가 뒤집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발밑의 감각이 사라졌고, 교실 바닥이 확 가까워지는 느낌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