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날 밤, 아이들이 마을 공용 숙소에서 잠든 걸 확인한 뒤 나는 몰래 어머니 오두막으로 향했다.
숙소 문을 살짝 열어 하람이와 다온이가 이불을 걷어차고도 쿨쿨 자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애들 재우는 것도 일이라면 일인데, 다행히 오늘은 순순히 자준 덕에 시간이 남았다.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이 정도 마나 밀도를 가진 아이들이 우연히 한 마을에서 자랐을 리 없다는 것부터, 어머니가 이걸 알고도 나한테 숨겼을 가능성까지.
밤바람이 제법 센 걸 보니 곧 환절기였다. 옷깃을 세우고 마을 안쪽 길을 걸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이어갔다. 하람이의 냉기 계열 마나, 다온이의 정밀한 탐지 능력, 그리고 나머지 애들이 조금씩 보여준 이상한 재능들. 하나씩 떼놓고 보면 그냥 재능 있는 애들이라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근데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
어머니 오두막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안에 없는 모양이었다. 문을 두어 번 두드려봤지만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간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 접었다. 어머니가 어딜 가든 나한테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잠시 서성이다가 대신 마을 원로 중 하나인 자작나무 할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 할머니는 마을 역사를 꿰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나이가 얼마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마을 사람들 말로는 마을이 생길 때부터 저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절반쯤만 믿었다.
할머니 오두막은 마을 끝자락,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문이 열렸다.
"이슬이구나. 이 밤에 무슨 일이니."
할머니는 문을 열어주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옷 대신 평소 입는 옷 그대로였던 걸 보니 아직 안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할머니. 근데 좀 급해서요."
"급하긴 뭐가 급하다고. 일단 들어와라. 밤바람이 차다."
안으로 들어가자 화로 불이 은근하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나한테 자리를 권하고는 화로에 장작을 하나 더 얹었다.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조금 밝아졌다.
"할머니, 하람이랑 다온이랑, 이번에 저한테 맡겨진 애들 있잖아요. 걔들 부모가 누군지 아세요?"
할머니는 잠시 나를 훑어보더니 자리를 권했다. 그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진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건 왜 궁금한 게냐."
"그냥, 애들이 좀 특별해 보여서요."
"특별하다니, 어떻게."
되받아 묻는 말투에 나는 잠깐 말을 골랐다. 마나 어쩌고 하는 얘기를 그대로 할 수는 없었다. 이 할머니가 마나를 감지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판에 괜히 김을 뺄 필요는 없었다.
"그냥 감이 좋다고 할까요. 애들 눈빛이 보통이 아니에요."
할머니 표정이 살짝 굳었다. 뭔가 아는 눈치였다. 손끝으로 화로 곁에 놓인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애들 부모는 다들 마을 밖에서 온 사람들이다. 사냥꾼도 있고, 상인도 있고, 떠돌이도 있었지. 다들 아이만 낳고 이 마을에 맡긴 채 떠났다."
"떠났다고요? 왜요?"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할머니는 말을 끌었다. 화로 불이 탁 튀며 작은 불씨가 허공으로 솟았다가 사그라들었다.
"그 부모들을 모아온 게 네 어머니였다는 것만 안다."
등줄기를 타고 냉기가 흘렀다. 어머니가 직접 그 부모들을 마을로 데려왔다는 것,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떠났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하나같이 이상할 만큼 강한 마나를 품고 있다는 것.
이게 우연일 수 있나.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봤다. 최소 다섯 명. 다섯 쌍의 부모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이 마을로 흘러들었고, 아이를 낳은 뒤 하나같이 떠났다. 이 정도 규모의 일을 우연이라고 부르려면 어지간히 낙천적인 사람이어야 했다.
"할머니, 혹시 그 부모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아세요?"
"다들 먼 곳이라 하더구나. 어떤 이는 북쪽 설산에서, 어떤 이는 동쪽 사막에서.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뿐이었다."
"남다른 재주라면, 예를 들면요?"
"활을 기막히게 쏘는 사냥꾼이 있었지. 밤에도 대낮처럼 눈이 밝은 자도 있었고. 물건이 어디로 흐르는지 감으로 읽어내는 상인도 있었다더구나."
활을 잘 쏘는 사람, 마을을 오가는 물건 흐름을 감으로 읽는 상인, 밤에도 눈이 밝은 사냥꾼. 각자 다른 재능들이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응축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재능들을, 나는 아이들 안에서 마나의 형태로 목격하고 있었다. 하람이가 장난을 치듯 손끝에 서리를 피워 올릴 때, 다온이가 어둠 속에서도 물건 위치를 정확히 짚어낼 때, 나는 그게 그냥 애들 재롱인 줄 알았다. 근데 이제 보니 부모의 재능이 그대로 옮겨간 거였다. 유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계획적이었다.
"할머니는 이게 뭔지 아세요? 왜 이런 애들을 한곳에 모으는 건지."
"나는 그저 마을 노인일 뿐이다. 네 어머니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오랜 세월 지켜본 바로는, 그 여자가 하는 일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안 알려주시고요."
"모르니 못 알려주지."
할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더 캐물어도 나올 게 없어 보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더 차가워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머니가 이걸 진짜 알고 있었다면. 몇 년, 아니 몇십 년 전부터 이 마을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아이를 낳게 하고, 그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나한테 넘겼다면.
그건 그냥 보모 알바가 아니었다.
결정석 세 개에 홀려서 덥석 받은 일이 이런 규모의 판이었다니. 시급으로 치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알바였는데, 문제는 내가 그 값을 무엇으로 치러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는 거였다.
이건 뭔가를 시험하는 자리였다. 어머니가 나를 이용해서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우연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촘촘했다. 그 별빛 아래서 나는 한동안 서서 숨을 골랐다. 애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람이의 장난스러운 웃음, 다온이의 새침한 눈초리. 저 애들이 어떤 목적의 재료로 쓰이는 거라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결심을 하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이번엔 어머니가 오두막에 있었다.
오두막 안은 여느 때처럼 활과 화살, 말린 약초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화로 앞에 앉아 낡은 활을 손질하고 있었다. 시위를 팽팽하게 당겨보고, 다시 풀고, 활대를 손끝으로 쓸어보는 손길이 익숙했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냐."
목소리가 무심했다. 활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그 애들, 그냥 평범한 애들이 아니잖아요."
그제야 어머니는 손질하던 활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에는 놀람이 없었다. 이미 내가 알아챌 걸 예상했다는 듯이었다.
"눈치챘구나."
"어머니가 알고 계셨던 거죠. 부모들을 모으고, 애들을 한 마을에서 키우고, 그걸 저한테 넘긴 것까지."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얄궂게 느껴졌다.
"똑똑하구나. 역시 내 딸이다."
"칭찬이 아니라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설명할 시간은 나중에 주마. 지금은 그냥 애들을 잘 돌보는 게 중요해."
"어머니, 그게 말이 되나요? 애들 부모를 마을 밖에서 모아왔고, 애들 낳자마자 떠나게 만들고, 그 애들이 하나같이 이상한 마나를 품고 있는데, 그게 그냥 우연이라고 넘어가라고요?"
"우연이라 한 적 없다."
"그럼요?"
"필요했던 거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필요했다는 말, 그 한마디가 계획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이었다.
"왜요? 이 애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건데요?"
어머니는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활을 다시 집어 들고 등을 돌렸다. 손끝으로 시위를 몇 번 튕겨보는 소리만 오두막 안에 울렸다.
"어머니, 저 지금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 네가 있어야 한다. 그게 다다."
무슨 일이 생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미 나를 이 일에 밀어넣기로 오래전부터 정해둔 사람처럼 흔들림 없었다. 등을 돌린 채로도 그 단호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머니, 최소한 뭘 조심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셔야죠. 애들이랑 저랑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다만 지금 말해준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그게 무슨 논리예요."
"오늘 밤까지 기다려라. 아니, 오늘 오후면 알게 될 거다."
더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그 목소리에서 느꼈다. 어머니는 활을 챙겨 오두막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따라 나가려다 멈췄다. 뭘 물어도 대답을 안 해줄 사람을 쫓아가는 건 시간 낭비였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석 세 개에 넘어간 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계산된 함정에 발을 들인 거였다. 그 결정석 세 개가 갑자기 헐값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 규모의 일에 끌려들어가는 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돌아서서 아이들 숙소로 향하는 길, 마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사흘째, 정확히 오늘이었다.
숙소 앞에 다다르자 안에서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소리였는데, 오늘은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다가왔다. 문을 열기 전,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무슨 일이 생기든, 그걸 감당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게 그 말의 진짜 의미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