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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다음 날 아침, 마을 광장에는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발밑의 흙은 밤새 내린 이슬을 먹어 눅눅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끝이 시렸다. 이곳은 숲속에 세워진 작은 정착지로, 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든 오두막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지붕마다 이끼가 얹혀 있어서 멀리서 보면 숲의 일부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마을 사람들도 그걸 노리고 지은 거라고 했다. 몸을 숨기기에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활을 든 사냥꾼들이 아침 훈련을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낯익은 동선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매일 반복하는 훈련인 듯했다. 그중 몇몇은 나를 보자 시선을 슬쩍 돌렸고, 한 명은 대놓고 눈을 마주치더니 활을 고쳐 잡는 척 딴청을 부렸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다크엘프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이랬다. 신기해하거나 불편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여기서는 나 말고 다크엘프가 거의 없었으니 신기함이든 불편함이든 늘 따라붙는 감정이었다. 가끔은 그 두 감정이 동시에 얼굴에 걸려서, 신기해하면서도 슬쩍 물러서는 우스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 저 사냥꾼이 딱 그랬다. 광장 한복판에 어머니가 서 있었고, 그 앞에 아이 일곱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첫눈에 봐도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정확히는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소개하마. 하람, 다온, 이한, 서리, 노을, 별하, 소망이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한 명씩 가리킬 때마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하람이라는 아이는 무표정하게 나를 노려봤고, 다온이라는 아이는 대번에 손을 흔들었다. 이한은 뒷짐을 지고 있었고, 서리는 어머니 뒤에 반쯤 숨어 있었다. 노을은 땅바닥에 있는 개미를 관찰하느라 내 존재조차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고, 별하는 팔짱을 낀 채 어른스러운 척 턱을 치켜들었다. 소망은 아까부터 계속 나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엘프 나이로 이십 년 전후, 겉모습은 인간 나이 열 살쯤 되어 보였지만 정신 연령은 그보다도 어렸다. 엘프는 성장이 느린 종족이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은 아직도 유치원 수준의 정신 상태로 이십 년을 살아온 셈이다. 이십 년 동안 유치원생이라니, 부모 입장에서는 축복인지 재앙인지 헷갈릴 노릇이었다. "이 다크엘프 아줌마 누구야?" 소망이라는 아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줌마 소리를 들으니 속으로 뭔가 무너졌다. 나는 아직 여든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이 세계에서는 아줌마로 통용되는 외견을 갖게 된 모양이었다. 억울했지만 반박할 근거가 부족했다. "언니야. 오늘부터 며칠 봐줄 언니." 어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할 힘조차 없었다. 언니든 아줌마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짜 봐줄 거예요? 그냥 며칠만이죠?" "그래. 사흘 정도면 될 거다." "사흘이면 결정석 세 개 값 맞죠? 하루에 한 개." "이야, 계산 빠르네. 그래, 그렇게 치자." 어머니는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나는 그 손가락을 보며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사흘. 그 정도면 결정석 세 개 값어치는 나올 것 같았다. 밥값에 방값까지 해결되는 셈이니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아이 일곱을 데리고 사흘을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결정석 세 개면 참을 만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 쪽으로 다가갔다. "안녕. 나는 이슬이야. 앞으로 며칠 같이 놀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몇몇은 시큰둥했고 몇몇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봤다. 다크엘프를 처음 보는 아이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람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나를 훑었고, 다온은 벌써 내 손을 잡아끌며 뭔가를 보여주려 했다. 서리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내 귀를 구경하더니 다시 어머니 뒤로 숨었다. "언니, 귀가 왜 그렇게 길어요?" "우리 종족은 다 이렇게 생겼어." "신기하다." 노을이 개미를 관찰하다 말고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러곤 아무 말 없이 다시 개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화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태도였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넘기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뭔가 급한 일이 있다는 표정이었는데, 그 급함이 진짜 급함이 아니라 도망치는 급함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등 뒤로 옷자락 휘날리는 속도가 좀 지나치게 빠르긴 했다. * 아이들과 첫날은 그냥 흘러갔다. 숲을 산책하고, 열매를 따고, 작은 강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숲길에서는 별하가 유독 앞장서서 걸었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자기가 대장인 척 손을 뻗어 방향을 가리켰고, 신기하게도 그 방향은 늘 맞았다. 열매를 딸 때는 다온이 손이 빠르고 정확해서, 가장 잘 익은 것만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하람은 계속 팔짱을 낀 채 나를 감시하듯 지켜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냥 심심해서 그런 거였다. "언니, 나 이거 먹어도 돼요?" 노을이 낯선 열매를 하나 내밀며 물었다. 나는 마나 흐름을 슬쩍 살펴 독성이 없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은 그걸 한입에 삼키더니 또 다른 열매를 찾아 나섰다. 강가에 도착해서는 다들 신발을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데 서투른 어른이었지만, 그래도 큰 사고는 없었다. 서리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질 뻔한 걸 소망이 옷깃을 잡아 살렸고, 별하는 자기가 다 예상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 하람은 혼자 강가 돌 위에 앉아 물수제비를 뜨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나는 오두막 한쪽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사흘 중 하루가 지났고, 아직은 괜찮았다. 문제는 둘째 날부터였다. * 강가에서 이한이 갑자기 물을 튀기며 놀다가, 그 물방울이 허공에서 잠깐 얼어붙는 걸 나는 목격했다. 순간적으로 눈을 의심했다. 다시 봐도 분명 얼음 결정이었다. 손톱만 한 결정이 공중에서 반짝이더니, 물방울보다 조금 늦게 강물로 떨어져 흩어졌다. 이한 본인은 그걸 눈치도 못 채고 계속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슬쩍 이한 주변의 마나 흐름을 살폈다. 그리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한 주변의 마나 밀도가, 내가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높았다. 나조차도 아직 그 정도 밀도로 마나를 압축하지 못했다. 이 세계에 넘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핑계를 대도, 이 정도 밀도는 어지간한 상급 정령사도 쉽게 만들지 못할 수준이었다. 일곱 살 정신 연령의 애가, 자기도 모르게 물을 얼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아이들 쪽도 살폈다. 서리 근처엔 미세한 바람 소용돌이가 상시로 맴돌았다. 겉으로는 그냥 강바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서리가 움직일 때마다 소용돌이도 같이 방향을 틀었다. 별하 주변엔 빛의 잔상 같은 것이 은근하게 남아 있었다. 아까 앞장서서 걸을 때 방향이 늘 맞았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온은 손으로 만지는 물건마다 아주 잠깐씩 색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내 눈이 이상한가 싶었는데, 다온이 주운 조약돌이 손안에서 회색에서 옅은 파랑으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두 번이나 확인했다. 하람, 노을, 소망까지 차례로 살펴봤다. 하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만큼 마나도 조용히 안정된 형태로 퍼져 있었는데, 그 안정감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나이에 안 맞는 통제력이었다. 노을은 개미를 관찰할 때조차 주변 흙의 마나 밀도가 미세하게 높아졌다가 낮아졌다. 소망은 유독 나를 뚫어지게 볼 때마다 자기 눈동자 안쪽에서 옅은 빛이 스치는 걸, 나는 세 번쯤 목격했다. 일곱 명 모두, 어느 정도씩은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마을 아이 일곱을 골라 나에게 맡긴 게, 그냥 우연히 이 일곱 명이었을 리 없다.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뒤늦게 스쳐 지나갔다. 결정석 세 개에 넘어가서 놓쳤던 그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뭔가를 숨기고 있을 때 짓는, 딱 그 표정.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웃던 그 얼굴이, 지금 와서 보니 웃음이 아니라 안도였던 것 같기도 했다. "언니, 저기 물고기 봐!" 다온이 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결정석 세 개로는 도저히 셈이 안 맞는 일을 맡은 게 아닌가 하는 계산이었다. 이 아이들, 대체 뭐지. 그리고 어머니는, 정확히 얼마나 알고 나한테 이 일을 떠넘긴 걸까. 사흘, 겨우 사흘이라고 했다. 그 사흘 동안 이 일곱 명을 무사히 데리고 있는 게, 정말 결정석 세 개짜리 일일지 슬슬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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