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청명산 중턱을 향해 다가오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야영지 경계에 숨죽여 엎드려서 그들의 모습을 살폈는데, 하나는 덩치가 산만 한 대머리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마른 체형에 눈매가 날카로운 놈이었다. 두 놈의 발걸음이 나무 사이를 헤집을 때마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고, 나는 그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기 냄새 난다니까." 대머리 쪽이 코를 킁킁거렸다. "고기 굽는 냄새 같은데."
"박덕수 형, 그거보다 아까 그 상단 마차가 여기 산길로 들어왔다는 게 문제야." 마른 쪽이 대답했다. "상단 물건 다 챙기고, 여기 숨어 있다는 애새끼도 처리하면 우리 팔자 폈다."
박덕수와 최강칠.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이미 이들의 정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청명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산적 무리의 일원이라는 걸.
"애새끼라니, 뭐야?" 박덕수가 되물었다.
"들었잖아, 선우 가문 도련님이 여기 버려졌다고. 그놈 잡아다 몸값 받으면 대박이지."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확 돋았다. 이놈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온 것이었다. 도망칠 시간이 없었다. 이 산속에서 열 살짜리 몸으로 저 성인 남자 둘을 상대로 도망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계산이었다. 다리 길이부터 다르고, 체력부터 다르고, 힘은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뛰어봐야 백 걸음도 못 가서 붙잡힐 게 뻔했다.
"백호야." 나는 낮게 속삭였다. "저놈들, 정면으로 싸울 순 없지?"
"내가 나서면 쉽게 처리하겠지만." 백호가 나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네 실력이 아니라 내 실력이 된다. 그게 네가 원하는 방향이냐."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백호의 말이 옳았다. 이 산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까지 신수의 뒤에 숨어 지낼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캠핑 스킬로 뭘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시험해볼 기회였다.
"좋아. 나 혼자서 해볼게. 대신 뒤에서 지켜봐줘."
백호는 대답 대신 눈을 가늘게 좁히며 뒤로 물러났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더 긴장시켰다. 지켜보겠다는 건 도와주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이건 온전히 내 몫의 싸움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캠핑 스킬은 야영지 안에서 회복과 안식을 제공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야영지 바깥, 접근하는 경로에는 반대의 성질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안식을 준다는 건 결국 공간을 통제한다는 뜻이고, 통제할 수 있다면 방향을 뒤틀 수도 있을 것이었다.
[캠핑 스킬 응용 시도]
[야영지 경계 트랩 설치]
[하위 스킬 해금: 방어 결계]
방어 결계라는 새로운 하위 스킬이 뜨는 순간, 나는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야영지 주변 산길에 흩어져 있던 마른 잎과 넝쿨을 이용해 은밀한 함정 몇 개를 짜기 시작했는데, 손이 알아서 재료를 골라내고 얽어내는 게 신기할 정도로 정교했다. 마치 몸에 오래전부터 새겨져 있던 기술처럼, 손가락이 넝쿨을 감고 꼬고 매듭짓는 동작이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이어졌다.
첫 번째 함정. 길목에 넝쿨을 팽팽하게 걸어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여기에 캠핑 스킬의 재료 강화 효과가 적용되니 그 넝쿨의 인장력이 어른 두 명이 걸려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손끝으로 살짝 당겨보니 마치 강철 줄처럼 팽팽하게 버텼다. 이 정도면 됐다.
두 번째 함정. 야영지 요리에서 쓰다 남은 매운 향신료 가루를 마른 잎에 섞어 바람에 흩날리도록 배치했다. 조금만 자극해도 눈과 코를 마비시킬 정도의 매운 기운이 뿜어져 나올 것이었다. 가루를 뭉치는 동안 손가락 끝이 얼얼해졌는데, 그 얼얼함이 오히려 이 함정의 위력을 확신시켜 주었다.
세 번째 함정. 나무를 얽어 만든 작은 발판 아래에 흙을 파내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를 낙엽으로 완벽하게 위장했다. 흙을 파내는 손톱 밑에 검은 흙이 잔뜩 끼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손이 떨렸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몰라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다행히 세 개의 함정을 완성했을 때까지도 산적들은 여전히 저 아래 길목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함정 세 개의 위치를 눈으로 훑으며 순서를 되새겼다. 넝쿨, 향신료, 구덩이. 순서가 어긋나면 효과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었다.
"어, 이쪽에서 냄새가 더 짙어지는데." 박덕수가 코를 벌리며 야영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재빨리 야영지 안으로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곧 첫 번째 함정에 걸린 넝쿨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억!"
박덕수가 넝쿨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서슬에 뒤따르던 최강칠도 균형을 잃고 넘어지며, 하필 두 번째 함정의 향신료 가루 뭉치를 걷어차고 말았다.
"으아아악! 눈이야! 눈!"
매운 향신료 가루가 바람을 타고 두 사람의 얼굴을 덮쳤다. 최강칠은 그 자리에서 눈을 부여잡고 뒹굴었고, 박덕수도 눈물 콧물을 쏟으며 방향을 잃고 허둥댔다. 두 사람의 비명이 산속에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며 나는 숨을 참았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지금 웃으면 위치가 들킨다.
"이 새끼, 어디 있어! 나와!"
박덕수가 소리치며 앞으로 비틀거리다가, 결국 세 번째 함정 위를 밟았다. 낙엽으로 위장한 구덩이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며, 박덕수는 그대로 구덩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으어어!"
구덩이 안에서 올라오는 둔중한 신음이 들렸고,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조그맣게 내뱉었다. 세 개의 함정이 순서대로, 정확하게 작동한 것이었다.
최강칠은 여전히 눈을 못 뜬 채로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방향이 완전히 엉뚱해서 나무 기둥만 몇 번이나 베고 있었다. 나무껍질이 튀는 소리와 함께 최강칠의 욕설이 산속에 메아리쳤다.
"강칠아, 그거 아니야! 반대쪽이야!" 구덩이 안에서 박덕수가 소리쳤지만,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된 최강칠은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계속 헛칼질을 해댔다.
나는 야영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심장이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그 안에 섞인 감정은 두려움보다는 짜릿함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 내 손으로 만든 함정이 성인 산적 둘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것이다. 손끝이 여전히 떨렸지만, 이건 공포의 떨림이 아니라 흥분의 떨림이었다.
[캠핑 스킬 응용 성공]
[적대 개체 2 무력화]
[숙련도 상승: 방어 결계 Lv.1 → Lv.3]
스킬창에 뜬 문구를 보며 나는 웃음이 터졌다. SS급 캠핑, 이게 진짜 이런 식으로 쓰이는 거구나. 회복과 안식이라는 얌전한 단어 뒤에 이런 응용법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세계는 나에게 텐트를 치는 법만 가르쳐준 게 아니라,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제법이군." 백호가 뒤에서 나타나며 낮게 중얼거렸다. "강함이 아니라 지혜로 이긴 거다."
그 말이 어쩐지 뿌듯하게 들렸다. 성인 두 명을 상대로, 열 살짜리 몸으로, 손에 든 것이라곤 넝쿨과 향신료와 흙뿐이었는데도 이겨낸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의 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구덩이에 빠진 박덕수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건 고통의 신음이 아니라 다급한 경고였다.
"강칠아! 여기가 문제가 아니야! 저 위쪽! 저 위쪽에서 뭔가 내려온다!"
나는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눈을 들어 산 위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능선 위로 여러 개의 횃불이 흔들리며 이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횃불의 수를 세다가 나는 세는 걸 그만두었다. 열 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산적 둘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백호야, 저게 뭐야?"
백호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좁혀졌다. "저건 산적의 무리가 아니다. 저 기운은··· 훨씬 정제되어 있어. 아마도 가문에서 보낸 자들일 거다."
가문. 그 한 단어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만들어낸 첫 승리의 여운을 채 즐기기도 전에, 더 큰 위협이 산 위에서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넝쿨이나 향신료 가루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백호의 목소리에 담긴 긴장감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몰랐다. 저 횃불의 행렬 속에, 나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몰아넣을 존재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