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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쇠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흙 냄새. 회사 탕비실 커피 냄새도 아니고 병실의 알코올 냄새도 아닌, 처음 맡아보는 조합이었다. 여기에 뭔가 탄내가 살짝 섞여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향 냄새였다. 그다음 느낀 건 무게였다.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무겁고 짧았다. 손가락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그건 움직임이라기보다 경련에 가까웠다. 관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이 몸에는 낯선 모양이었다.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생각이 따라왔다. 근데 왜 아직 생각을 하고 있지. 죽으면 생각도 멈춰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내가 알던 물리학에서는 그랬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나도 뒤따라간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이후는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지우개로 뇌 한쪽을 문질러놓은 것 같았다. 남은 건 감각뿐이었다. 춥고, 밝고, 누군가 나를 안고 있다는 감각. 그 감각만큼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으어, 으어어어." 내가 낸 소리였다. 성대가 내 것이 아니었다. 서른몇 해를 살아온 인간이 낼 법한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목구멍을 타고 나가는 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 것을 빌려 쓰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그랬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봐요, 여보. 눈을 떴어요!" 여자 목소리였다. 굵고 낮은, 그런데도 분명히 여자인 목소리. 나를 안은 팔이 흔들리면서 시야가 위아래로 출렁였다. 초점이 잡히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갓 태어난 눈이라는 게 이렇게 부실한 렌즈였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눈앞에 있는 얼굴은 붉은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그러나 분명 여성인 얼굴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고, 그 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워프인가. 게임에서 본 그 드워프. 판타지 소설 표지에서나 보던 그 종족이 지금 내 코앞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울지도 않고 이렇게 빤히 보네." 남자 목소리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이쪽도 수염이 있었다. 다만 이쪽은 진짜로 남자였다. 두 사람 다 키가 나지막했고, 팔뚝이 내 허리보다 굵었다. 팔뚝 하나가 내 몸통만 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이게 부모라는 건가. 나는 계산을 시작했다. 원래 하던 습관이었다. 회사에서도 사고가 터지면 일단 손해를 계산하고 나서 감정을 느낀다. 지금도 똑같았다. 이 몸은 갓 태어난 아기다. 이 세계는 판타지풍의 어딘가다. 부모는 드워프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팔다리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시력도 흐리고, 언어도 없다. 결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일단 운다. 울음은 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기소개였다. 뭘 하든 갓난아기가 우는 건 정상이고, 안 우는 갓난아기는 뭔가 이상한 애로 찍히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튀지 마라, 그게 생존 원칙이다. 회사 신입 시절 배운 원칙을 갓 태어난 몸으로 다시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으에엥." 연기였다. 눈물은 진짜였지만 타이밍은 계산된 것이었다. 목이 아프도록 힘을 줘서 소리를 내는데, 이게 또 몸에 힘이 없어서 생각보다 오래 유지가 안 됐다. 몇 초 울다가 숨이 차서 잠깐 멈추면 그것도 그럴싸하게 보였는지 두 사람 다 더 좋아했다. "아이고, 우리 애기." 여자 드워프가 나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수염이 뺨에 닿았다. 부드러웠다. 예상외였다. 드라마나 만화에서 본 수염은 다 뻣뻣하고 억센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닿아보니 오히려 담요보다 나았다. "애가 힘이 좋네. 소리도 크고." 김철웅이 한마디 거들었다.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 자랑스러움이 진짜라는 게 더 이상했다. 낳자마자 뭘 알고 자랑스러워하나 싶었지만, 그런 게 부모라는 존재인 모양이었다. 산실 안에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산파인지 사제인지 모를 노인이 구석에서 향을 태우고 있었고, 그 연기 냄새가 방 전체를 채웠다. 향은 짙고 씁쓸한 냄새를 풍겼는데,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노인은 나를 흘끗 보더니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풀어졌다. 그 반응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저건 뭔 표정이지. 찰나였지만 확실했다. 놀람도 아니었고 반가움도 아니었다. 뭔가를 알아본 표정, 그런데 그걸 입 밖에 내지 않기로 한 표정이었다. "이름은 뭐로 하실 겁니까." 노인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건조했다. "도윤이요. 도윤이라고 부르려고요." 여자, 아마 나중에 박선희라고 불릴 사람이 대답했다. 그 이름은 한국어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남자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계 이름도 아닌데 뭐 어때. 우리 부부 이름도 특이하잖아." 박선희, 김철웅. 그 이름들도 낯설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이 세계에는 이미 한국어를 쓰던 누군가가 먼저 와 있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이름 하나로 이렇게까지 뇌가 바빠질 줄은 몰랐는데, 갓 태어난 몸으로도 계산기는 여전히 잘 돌아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 말고도 이 세계에 떨어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아니면 이 세계 자체가 원래 한국어와 뭔가 얽혀 있다는 것. 둘 중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해지는 답은 아니었다. 노인이 향로 옆에 쭈그려 앉으며 다시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조금 더 오래. "희한한 이름이구먼. 좋은 이름이다." 노인은 그렇게만 말하고 시선을 거뒀다. 좋은 이름이라는 말과 아까의 그 표정 사이에 뭔가 어긋나는 게 있었다. 좋은 이름이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산실 밖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낮고 무거운 종소리였다. 절이나 교회 종과는 다른, 더 음습한 울림.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와 뼛속까지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 "오늘도 생贄일이구나."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하면서 노인의 눈이 다시 나를 향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그 눈빛에는 동정이 있었다. 갓 태어난 애를 보고 왜 동정을 하지. 아기한테 무슨 동정할 게 있다고. 태어난 지 몇 분도 안 된 존재에게 벌써 안타까워할 일이 생겼다는 게, 좋은 신호는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종소리가 세 번 더 울렸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발소리도 들렸는데, 급하게 뛰는 소리가 아니라 천천히, 마치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걸음걸이였다. "밖이 왜 저래요?" 박선희가 창문 쪽을 보며 물었다. 남자, 김철웅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까까지의 자랑스러운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저 위쪽 마을에서 생贄를 바쳤나 보네. 마족한테." 생贄. 그 단어가 귀에 박혔다. 뜻은 몰랐지만 감은 왔다. 제물이라는 말이었다. 사람을 뭔가에게 바친다는 뜻. 한자를 아는 게 이럴 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이번엔 누구래요?" 박선희가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지만, 그 걱정의 무게는 이상하게 가벼웠다. 마치 매번 있는 일에 매번 반응하는 걸 그만둔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몰라. 아랫마을 사람일지, 위쪽마을 사람일지." 김철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로, 어깨를 으쓱했다. 종이 울리고 사람이 흐느끼고 있는 와중에, 저 위쪽마을 누군가가 마족에게 바쳐졌다는 소식에 어깨를 으쓱하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세계는 그런 곳인가. 나는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마족이라는 존재가 있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으며, 그게 종소리로 알리는 일상적인 행사라는 것. 그리고 그걸 알리는 종소리에도 이 산실 안 어른들은 그저 잠깐 놀라는 정도의 반응만 보인다는 것. 일상화된 공포. 그게 이 세계의 첫 인상이었다. 교과서로 배운 세계사에도 인신 공양 풍습이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건 다 몇백 년 전, 몇천 년 전 이야기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게 오늘의 일이고, 아마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반복될 일상이었다. 부모가 놀란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였다. 박선희가 다시 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수염 사이로 드러난 이가 하였다. 그 웃음에는 아무런 거짓이 없었다.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애정이었다. "우리 도윤이는 걱정 마. 엄마 아빠가 지켜줄 테니까." 그 말을 하면서 박선희는 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 심장 박동이 들렸다. 크고 느린 박동이었다. 그 박동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가, 곧 그 마음을 취소해야 했다. 그 애정이 오히려 불안했다. 왜인지는 아직 몰랐다. 지켜준다는 말이 이 세계에서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저 종소리가 오늘 지켜지지 못한 누군가의 소식이라는 걸 알고 나니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종소리가 그치고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향 연기가 서서히 옅어지고, 산실 특유의 쇠와 흙 냄새만 다시 남았다. 노인은 향을 마저 태우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딱 한 번, 나를 돌아봤다. 그 시선은 아까와 같았다. 동정, 그리고 뭔가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의 침묵. 노인이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틀이 삐걱거리는 소리,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사라지고도 나는 한동안 그 시선이 남긴 자국을 지우지 못했다. 그 시선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앞으로 이 세계에서 몇 년을, 아니 몇십 년을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종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노인이 나를 보며 지었던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세울 첫 목표로는 지나치게 거창했지만, 어쩌겠나. 이 몸에 남은 유일한 자산이 계산하는 머리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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