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짜 성승, 요괴와 걷다

5화

산길을 오른 지 두 시간째였다. 발바닥이 뜨겁게 부어오르고, 등에 진 짐이 어깨를 짓눌렀다. 땀은 이미 다 말라 소금기만 남긴 채 피부에 허옇게 앉아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무렵, 갑자기 숲이 뚫리며 눈앞이 확 트였다. 대저택이었다. 담벼락은 새하얀 회벽이었고, 지붕에는 붉은 기와가 촘촘히 얹혀 있었다. 마당엔 향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로 등불이 은은하게 걸려 있었다. 밤도 아닌데 등불을 켜놓았다. 저 시간에 저렇게 밝혀놓는다는 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애초에 밤이 필요 없는 무언가가 살고 있다는 뜻이거나. 둘 다 마음에 안 든다. 돈석이 입을 헤벌리고 중얼거렸다. "이야, 여기 사시는 분은 부자시네요." 그 말투에 이미 침이 한 사발쯤 고여 있는 게 느껴졌다. 너 지금 저 집 재산 감정하는 눈빛이거든, 그거 알아? 하지만 나도 속으로는 똑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으니 딴죽 걸 자격은 없었다. 대문이 스르륵 열렸다. 안에서 향긋한 냄새가 확 밀려나왔다. 꽃향기와 음식 냄새가 섞인, 위험할 정도로 좋은 냄새였다. 간장에 조려낸 육류의 냄새, 그 위로 얹힌 계피와 술 향, 그리고 어디선가 은은하게 풍기는 매화향까지. 배 속에서 위장이 요란하게 꿈틀거렸다. 저기, 나 지금 함정일지도 모르는 곳 코앞에서 밥 냄새에 반응하는 거 정상인가? 정상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었다. 위장은 이성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하녀로 보이는 여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옷차림이 단정했고, 걸음걸이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훈련받은 태도였다. "취경단 어르신들이시군요. 저희 마님께서 진작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산길 두 시간, 인적도 없는 곳, 미리 연락할 방법도 없었을 텐데. 설마 이 산 어딘가에 감시하는 눈이 있었던 건가, 아니면 이 저택 자체가 뭔가를 미리 알고 있는 존재인 건가. 둘 다 소름 돋는 가정이었다. 안내를 따라 들어가니 넓은 대청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나이는 사십 대 초반쯤, 화려한 비단옷을 입었지만 얼굴에는 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비단은 얼핏 봐도 고급스러웠다. 자수 결이 일반 상인이 취급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대상: 임서낭. 미망인. 신원 불명확.】 신원 불명확이라는 표시가 유독 눈에 걸렸다. 이거 게임으로 치면 몬스터 도감에 물음표 떠 있는 거잖아. 물음표 붙은 몬스터가 순한 경우를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임서낭이 옅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꿀을 두 배로 넣은 차처럼, 달다기보다는 오히려 뭔가를 감추려는 단맛이었다. "저는 남편을 잃고 이 산속에서 딸과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재산은 많으나 지킬 사람이 없어 늘 불안했지요." 말을 잇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게 진짜 슬픔인지, 아니면 슬픔을 연기하는 손끝인지는 구분이 안 됐다. 강마천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님, 어려운 사정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취경 원행 중이라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저 사람 저렇게 예의 갖춰서 거절하는 거 보면 진짜 무협 세계관 정석 인물이다. 나였으면 벌써 "저희 여기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물어봤을 텐데. 임서낭이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다만 하루만 쉬어가시라는 것뿐입니다. 산길이 험하니, 하룻밤 정도는 큰 지장 없으시겠지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눈빛이 이상하게 우리, 정확히는 나를 오래 응시했다. 아니 저기요, 왜 저를 보십니까. 저 여기서 제일 약해 보이는 사람 아닌데요. 근데 딱 저만 보는 저 시선, 뭔가 알고 저러는 것 같아서 더 소름 돋는다. 그때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며 젊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비단 치마가 스치는 소리, 옥 장식이 부딪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걸음마다 옥 장식이 짤랑, 짤랑 부딪혔다. 그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얼굴을 본 순간, 돈석의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들렸다. "제 딸입니다. 손님들을 대접하라 일러두었지요." 임서낭이 딸을 소개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처음보다 훨씬 더 깊어 보였다. 딸은 하얀 얼굴에 눈매가 서늘했고, 입가에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기, 저 미소 뭔가 낯이 익은데. 꼭 게임에서 보상 아이템 주기 전에 짓는 NPC 표정이거든. [경고: 해당 인물의 정체가 시스템상 확인되지 않습니다. 신중히 판단하십시오.] 귓속 목소리가 낮게 경고했다. 와, 이거 완전 게임에서 보던 미녀 NPC 함정 퀘스트 오프닝이잖아. 첫째, 재산 많은 미망인. 둘째, 사연 있는 과부. 셋째, 예쁜 딸. 넷째, 하룻밤 묵으라는 권유. 다섯째, 시스템상 확인 안 되는 인물. 이 조건이 다섯 개나 겹치면 그건 함정이 아니라 함정 안내서다. "사부님, 뭔가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강마천이 낮게 물었다. "아뇨, 그냥, 배가 좀 아파서요." 둘러댔지만 속으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재산 많은 미망인, 예쁜 딸, 하룻밤 묵으라는 권유, 시스템상 확인 안 되는 인물. 이거 백 프로 시험이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종류의. 돈석이 이미 정신을 놓은 채로 딸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저기요, 사부님, 저희 그냥 하룻밤 쉬었다 가면 안 됩니까?" "돈석 씨." "딱 하룻밤인데요!" "돈석 씨, 지금 눈빛이 딱 하룻밤이 아니라 딱 목숨 걸어보겠다는 눈빛인데요." "에헤이, 사부님도 참, 사람이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살아야지요." 저 인간은 지금 이 저택이 함정일 확률보다 술이 나올 확률에 더 진지하게 베팅하고 있었다. 임서낭이 그 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젊은 분들이 다들 지쳐 보이시니, 오늘은 편히 쉬시지요. 술과 음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술이라는 말에 돈석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저 반짝임 보니까 진짜 낚싯대 던지면 백 프로 물 것 같은데. 강마천은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배고픔과 피로 앞에서 완전히 거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의 손이 검자루를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목현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사부님, 판단은 사부님께 맡기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판단을 나한테 넘기다니. 목현, 당신 눈치가 제일 빠른 것 같더니 정작 결단은 안 하네. 하지만 다들 나를 보고 있었다. 강마천도, 돈석도, 목현도, 그리고 저 임서낭이라는 여인도. 심지어 그 딸도, 저 옥 장식 소리를 내며 서 있는 채로 내 쪽을 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108일 중 벌써 며칠이 지났고, 감찰관은 다음 순찰 때 재확인하겠다 했고, 이 저택은 시스템조차 신원을 확인 못 하는 함정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아까부터 코를 찌르는 음식 냄새에 배 속이 요란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성은 도망치라고 소리치는데, 위장은 저 안에서 나는 냄새를 향해 이미 발을 옮기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두 가지 본능이 정반대로 당길 수 있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하룻밤만, 묵어가겠습니다."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임서낭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아주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 이거 완전히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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