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사흘째 되는 날, 서쪽 골짜기에는 이미 마을 사람 절반이 모여 있었다.
다들 뭔가 구경거리를 보러 온 표정이었다.
조롱 섞인 웃음도 몇몇 얼굴에서 보였다.
심지어 몇몇은 벌써 술병을 들고 나와 있었다.
마치 축제라도 보러 온 사람들처럼.
"저 인간이 정말 늑대 무리를 막는다고?"
"어떻게든 자기 목숨은 부지하겠지."
"우리 조상들 방식이 있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영주랍시고 왔으면 우리 방식을 따라야지, 안 그래?"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유하만이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눈은 조롱도 기대도 아닌, 뭔가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촌장이 다가와 골짜기 지형을 가리켰다.
"매년 우리는 이곳에서 화염 진법을 이용해 늑대를 막는다.
영민족 전통이다."
"화염 진법이라면?"
"뿔 달린 자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불의 결계를 세운다.
다만 그 결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약해져."
"…시간이 얼마나 가는데?"
"반 시간쯤이 한계다."
"그럼 반 시간 넘어가면 어떻게 되오?"
"결계가 무너지고, 그때부터는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
말투는 무덤덤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매년 그렇게 몇 명씩 잃는다는 뜻이겠지.
나는 그 사실을 굳이 묻지 않았다.
대신 골짜기 전체를 눈으로 훑었다.
좁은 입구, 넓게 퍼지는 중앙 공터, 그리고 그 뒤로 흐르는 온천 물줄기.
바위벽 높이, 입구 폭, 뒤쪽 퇴로까지.
전쟁터에서 수십 번 봤던 지형이었다.
지형만 놓고 보면 방어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결계는 필요 없소."
"뭐라고?"
촌장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주변에서 누군가 헛웃음을 흘렸다.
"결계 대신 지형을 쓰겠소. 이 골짜기 입구가 좁으니, 거기서 막으면 스무 마리든 백 마리든 한 번에 두세 마리씩만 상대하면 되오."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니다."
"방식이 뭐가 중요하오. 결과가 중요하지."
촌장의 얼굴이 굳었다.
주변 사람들도 낮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전통을 무시하는 건가?"
"저러다 다 죽으면 어쩌려고."
전통을 무시한다는 눈빛이 몇몇에게서 느껴졌다.
[영주님, 조금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하가 작게 귀띔했다.
[여기 사람들에게는 화염 진법이 조상 대대로 지켜온 방식이라서요. 단순한 방어술이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 같은 거예요.]
"…알겠소."
대답은 했지만 방법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지형을 쓰는 게 확실히 더 효율적이었으니까.
정체성이니 전통이니, 그런 건 내 목숨값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속으로는 그렇게 뇌까렸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늑대 무리의 울음소리가 골짜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아우우우, 아우우우.
소리가 겹겹이 울려서 실제 숫자보다 훨씬 많게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이 긴장한 얼굴로 화로 근처로 물러섰다.
누군가는 아예 뒷걸음질을 쳐서 마을 방향으로 슬금슬금 이동하기 시작했다.
촌장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서서 나를 지켜봤다.
실패하길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나는 골짜기 입구, 폭이 제일 좁은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 딱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틈이었다.
검을 뽑아 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가 목구멍을 훑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긴장감이었다.
전장에서와 다른 점은, 이번엔 지켜야 할 게 내 목숨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뒤에 서 있는 저 사람들, 조롱하고 수군거리던 저 사람들까지도.
어둠 속에서 붉은 눈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스무 마리가 넘는 늑대 무리가 골짜기 입구로 몰려들었다.
크르르릉.
선두에 선 놈이 가장 컸다. 어깨까지 오는 몸집에, 이빨이 달빛에 번뜩였다.
콧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온다!"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비명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좁은 입구 정면에 서서 첫 번째 놈을 맞았다.
서걱.
검이 정확히 목을 갈랐다.
피 냄새가 확 퍼졌다.
두 번째 놈이 옆에서 뛰어들었지만 입구가 좁아 한 번에 하나씩만 들어올 수 있었다.
서걱, 서걱.
연속으로 두 마리를 더 베었다.
전쟁터에서 수백 명을 상대했던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숨을 고르고, 다리를 낮추고, 검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휘둘렀다.
힘을 아끼는 게 관건이었다.
반 시간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하니까.
늑대들은 계속 밀려들었지만 좁은 입구 덕분에 한 번에 두세 마리 이상은 절대 넘어오지 못했다.
서걱, 콰직, 서걱.
시간이 지날수록 쓰러진 늑대의 수가 늘어갔다.
발밑이 어느새 미끄러워졌다. 피와 진흙이 섞인 탓이었다.
숨이 조금씩 거칠어졌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놈이 옆구리를 스치듯 물어뜯으려 했고, 나는 몸을 반쯤 틀어 피하며 검을 역으로 그었다.
서걱.
피부가 살짝 벗겨진 느낌이 났지만 상처는 얕았다.
계속해서 놈들이 몰려왔다. 뒤에서, 옆에서, 위에서.
숫자는 줄어드는데도 기세는 줄지 않는 느낌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감탄이 흘렀다.
"저게 정말 인간이야?"
"결계도 없이 저렇게…"
"혼자서 저걸 다 막는다고?"
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순수한 놀라움이 보였다.
반 시간쯤 지났을 때, 남은 늑대는 다섯 마리도 되지 않았다.
팔이 무거워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무리를 이끌던 가장 큰 놈이 마지막으로 달려들었다.
놈의 눈에는 이미 두려움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살짝 틀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서걱.
놈이 쓰러지자 나머지 늑대들이 겁을 먹고 그대로 도망쳤다.
골짜기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바람 소리와 내 숨소리만 남은 그 정적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헉, 헉.
숨이 거칠게 몰아쳤다.
몸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검을 바닥에 짚고 서서 마을 사람들을 돌아봤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조롱하던 얼굴들이 하나같이 창백해져 있었다.
"…끝났소."
간신히 그 말만 뱉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촌장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표정이 복잡했다.
놀람과 불편함이 섞인 얼굴이었다.
"…이런 방식은 처음 본다."
"결과는 나온 것 같소만."
"결과는 그렇지. 하지만…"
촌장이 말을 흐렸다.
"우리 전통은 힘을 합치는 거다. 혼자 모든 걸 해치우는 방식이 아니야."
그의 눈빛에는 존경보다 미묘한 경계가 더 짙게 담겨 있었다.
그 말에는 묘한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시험을 통과했다는 기쁨이 아니라, 어딘가 이질적인 방식에 대한 경계였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낮은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저 인간, 너무 강한 거 아니야?"
"혼자서 스무 마리를 처리했어."
"우리보다 강하다는 거잖아."
"그럼 우리는 이제 저 인간한테 의지해야 하는 건가?"
그 말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마치 늑대 대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영주님.]
유하가 다가와 낮게 말을 걸었다.
[통과하신 건 맞지만, 좋아하실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이오?"
[사람들이 놀라움보다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너무 강한 존재는, 저희 입장에서는 늑대만큼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는 거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두려워해요. 당신이 나쁜 뜻이 없다는 걸 알아도, 그 힘 자체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시험을 통과한 게 오히려 새로운 벽을 만든 것 같았다.
촌장은 여전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존경과 경계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등 뒤로 슬쩍 몸을 피했고, 누군가는 감탄한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날 밤, 마을에는 작은 축하 자리가 마련됐지만 분위기는 어딘가 미묘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가 났지만 그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촌장은 끝까지 나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몇몇은 술잔을 부딪히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냈지만 어색함이 감돌았다.
유하만이 화로 근처에서 나에게 다가와 앉았다.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부탁하오."
"당신은 정말 강하시네요. 그런데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붉은 눈이 화로 불빛을 받아 더 진하게 빛났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표정도 미묘하게 흔들렸다.
"이 협곡에는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가끔 내려옵니다.
그것들이 당신 냄새를 맡고 찾아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셔야 할 겁니다."
"더 무서운 것들이라니?"
"…지금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그 대답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확실하지 않다는 건 뭔가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 말에 별 뜻 없이 넘기려 했지만, 유하의 표정은 진지했다.
마치 뭔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화로 너머 어둠 속에서, 협곡 저편 어딘가에서 낮고 긴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방금 물리친 늑대 무리의 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훨씬 크고 무거운 소리였다.
땅바닥이 미세하게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의 대화가 순식간에 멈췄다.
누군가는 젓가락을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집 방향을 살폈다.
촌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유하는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에 화로 불빛과는 다른 서늘한 색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