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재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넘어져서 앞니가 부러진 사람도 나였고, 편의점 로또 백만분의 일 당첨권에 당첨된 것도 나였는데 정작 그게 하필 오만 원짜리 즉석복권이라 실제로 손에 쥔 건 커피 한 캔 값이었으며, 군대에서는 유일하게 관물대 위 선풍기가 나한테만 떨어졌고,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필 그 가게가 세무조사에 걸려 월급이 통째로 날아가는 식으로, 굵고 잘게 부서지는 불운들이 이십삼 년 인생 곳곳에 백과사전 한 권 분량으로 촘촘히 박혀 있었다.
첫 번째,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버스에서 유일하게 나만 멀미로 토했다.
두 번째,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전날 맹장이 터졌다.
세 번째, 첫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화장실 간다며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불운은 나에게 성실했다. 지독하게, 무섭도록 성실했다.
그리고 그 정점이, 작년 겨울의 가상화폐였다.
친구 놈이 확실하다며 밀어줬던 코인이 상장 사흘 만에 -90%를 찍었고, 물타기로 대출까지 끌어다 넣은 나는 순식간에 오천만 원 빚쟁이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30%였다. 괜찮다고,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50%가 되었을 때도 나는 물타기를 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지금까지의 손해가 확정된다는, 그 얄궂은 계산법에 사로잡혀서. -70%, -85%, 그리고 마침내 -90%.
은행 대출로도 감당 못 해 사채로 옮겨간 순간부터 인생은 급전직하했는데, 이자는 매달 복리로 불어나 반년 만에 원금의 세 배를 넘겼고, 나는 밤마다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튀어 오르는 사람이 되었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발신자 표시가 뜨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놈들이라는 걸.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었다.
"서준아, 우리 애가 너 좋아해서 이렇게 오래 기다려준 거야." 낯이 익은 사채업자 김 실장이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뿜으며 말했다. 좋아한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그의 뒤에는 팔뚝만 한 몽키스패너를 든 남자 셋이 서 있었다. 폐공장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쇠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손발이 밧줄로 고정된 나는 의자에 묶인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머리 위 형광등 하나가 깜박거렸다. 그 규칙적인 점멸이 이상하게도 내 심장 박동과 겹쳐지는 것 같았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조,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목소리가 갈라졌다. 웃기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시간을 달라는 말이 통할 리 없다는 걸 나조차 알고 있었으니까.
"시간? 시간이 돈이야, 인마." 김 실장이 손짓하자 몽키스패너를 든 남자가 다가왔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손가락 끝이 얼음장처럼 굳었고, 숨이 목구멍에서 막혀 나오지 않았다.
남자의 발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그 소리가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들렸다. 하나, 둘, 셋. 남자는 몽키스패너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조졌다. 진짜 조졌다.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 얼굴, 갚지 못한 빚, 대출 서류에 도장 찍던 순간, 코인 창을 새로고침하며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 이렇게 죽는 건가. 스물세 살에, 이런 폐공장 바닥에서.
그 순간, 발밑 콘크리트 바닥에서 낯선 빛이 스며 나왔다. 처음엔 조명이 깜박이는 줄 알았는데, 파랑도 아니고 보라도 아닌 이상한 색의 문양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그 빛은 점점 커지면서 발밑 전체를 잠식했고, 김 실장과 남자들이 놀란 얼굴로 뒷걸음질 쳤고, 나는 의자에 묶인 채로 그 빛 속에 통째로 잠겨버렸다.
"뭐, 뭐야 이거!" 누군가의 외침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김 실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게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왔다. 몽키스패너를 든 남자가 뒷걸음질치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모습도, 슬로우모션처럼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의식이 흩어지는 감각. 몸이 물속에 잠기듯 무게를 잃었고, 시야가 백지처럼 하얘졌다. 밧줄에 묶인 손목의 통증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식은땀도, 그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지워졌다.
다음 순간 나는 눈을 떴다.
습기 가득한 흙냄새와 낯선 새 울음소리가 제일 먼저 감각을 두드렸다. 밧줄은 사라져 있었고, 나는 어느 숲속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하늘은 두 개의 태양이 낮게 떠 있는 이상한 색이었으며, 낙엽 위로 스며든 빛은 지구의 그것과는 명백히 다른 채도를 띠고 있었다. 공기마저 달랐다. 습하면서도 시원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뭐야 이거, 진짜."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이상했다. 어딘가 가늘고, 어딘가 높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더니, 어딘가 작아진 느낌이었다. 옷은 헐렁하게 몸에서 흘러내렸고, 팔목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얇았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뚫어지게 쳐다봤다. 손금의 모양은 비슷한데, 크기가 확실히 달랐다. 마디도 없고, 굳은살도 없었다. 스물세 살 남자의 손이 아니었다.
웅덩이에 비친 얼굴을 보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초등학생, 딱 그 정도의 얼굴이 물 위에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눈, 코, 입의 배치는 분명 내 얼굴이었는데, 그 위에 어릴 적 사진에서 봤던 내 모습이 그대로 겹쳐졌다.
"......씨발, 진짜!!" 나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스물세 살 남자가 열두 살짜리 얼굴을 하고 이세계 숲 한복판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그 어떤 논리로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웅덩이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나 문질러 봐도, 물에 비친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이게 꿈인가. 아니, 꿈이라면 이렇게 생생할 리가 없었다. 나뭇잎 냄새, 흙의 촉감, 발밑에서 느껴지는 이슬의 서늘함, 그 모든 게 진짜였다.
하지만 나는 원래 재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이런 일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곧 뒤따랐다. 불운은 성실했다. 이세계까지 따라올 정도로.
정말 우연일까?
죽을 뻔한 순간에 하필 이상한 빛에 휩싸여, 하필 이세계로, 하필 몸까지 줄어들어서. 이게 우연이라면 나는 신을 믿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아주 나쁜 신을.
일단 살아야 했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리는 짧아졌어도 움직임에는 문제가 없었다. 무릎을 몇 번 굽혀 보고, 팔을 휘저어 보고, 걸어도 보았다. 몸이 작아진 것 말고는 이상은 없는 듯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나무들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인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길이 있다는 건 누군가 그 길을 지나다녔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사람이 사는 곳이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그 길 저편에서 무언가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불안한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사람이 있다는 건 문명이 있다는 뜻이었지만, 저렇게 쓰러져 있는 모습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아직 알지 못했다. 그 쓰러진 사람이 이 낯선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끈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끈이 이미 끊어져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