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발소리는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그러다 둘이 되었고, 곧 셋, 넷으로 늘어났다. 발소리라기보다는 무언가가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규칙적인 리듬이었다. 타박, 타박, 타박.
로한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등이 나무껍질에 닿았다. 거칠고 축축한 감촉이 셔츠 너머로 느껴졌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방금 잡은 숲멧돼지 한 마리와, 무리로 나타나는 숲멧돼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위험은 배로 늘어난다. 웹소설에서 몇 번이나 본 문장이었다. 그 문장이 지금 이 순간처럼 현실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는 상태창을 다시 열었다.
[마력: 1,760 / 1,800]
방어막 한 번 쓴 것으로 마력이 그렇게 많이 줄지는 않았다. 그는 안도했다. 마력이 넉넉하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적어도 마력이 바닥나서 죽을 걱정은 당장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로한은 나무 틈으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시야가 좁았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진 오후 햇살이 어른거렸고, 그 사이로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숲 사이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숲멧돼지 세 마리였다. 크기는 조금 전 잡은 놈보다 작았다. 새끼거나, 아니면 어린 개체였다. 몸통에는 아직 솜털 같은 잔털이 남아 있었고, 어금니도 조금 전 놈에 비해 짧았다. 놈들은 냄새를 따라 이곳까지 온 듯했다. 코를 킁킁거리며 땅을 훑고 다니는 모습이, 죽은 어미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로한은 침을 삼켰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반대 방향으로 뛰면 놈들이 쫓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바꿨다. 어린 개체 세 마리. 이건 경험치와 소재를 얻을 좋은 기회였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방어막을 쓸 정도의 위협은 아니었다. 화염구를 쓸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망친다고 해서 이 숲에서 완전히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을 뚫고 나가야 했다.
그는 나무 뒤에서 나와 손을 뻗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화염구."
웹소설에서 수백 번 본 마법 이름을 그대로 외쳤다. 반응이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스토리지도, 토지 마법도 실제로 될 거라고는 반신반의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웅—
손끝에 작은 불꽃이 맴돌았다. 크기는 주먹만 했다. 색은 짙은 주황이었고, 가운데는 새하얗게 타올랐다. 손바닥에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지만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손과 불꽃 사이에 얇은 막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로한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되는구나.
머릿속으로 수십 개의 생각이 스쳤다. 이건 진짜 마법이었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외치던 그 마법이, 지금 자신의 손끝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흥분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감탄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불꽃을 가장 앞에 있던 놈을 향해 날렸다. 불꽃은 예상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 명중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몸에 붙은 불이 순식간에 털을 태우고 살을 파고들었다. 코를 찌르는 탄내가 났다. 나머지 두 마리가 놀라 흩어졌다.
[스킬 발현: 화염구 (마력 소모 120)]
마력 소모가 방어막보다 훨씬 컸다. 로한은 계산을 시작했다. 화염구 열다섯 번이면 마력이 바닥난다는 뜻이었다. 무한한 자원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지금 이 순간 확인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투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처음 알았다면 더 큰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는 단검을 뽑아 들고 남은 두 마리를 향해 달렸다. 발밑의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린 개체들은 힘이 약했다. 몸을 낮추고 달려드는 놈의 목덜미를 향해 단검을 그었다. 저항은 미미했다. 두 번의 공격으로 둘 다 쓰러뜨렸다.
숲이 다시 조용해졌다.
로한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 다가오는 발소리는 없었다. 나무 위에서 새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희미하게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 세계에 온 지 며칠 만에 마법을 쓰게 되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끝의 감각은 분명했다. 상상이 아니었다.
그는 사체들을 하나씩 스토리지에 넣었다. 사체를 집어넣을 때마다 손끝이 저릿한 감각이 스쳤다. 스토리지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기술이었다. 마지막으로 처음 잡았던 어미의 사체를 다시 꺼내 살펴보았다.
피를 빼야 고기로 쓸 수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웹소설 속 사냥꾼 캐릭터들이 항상 하던 일이었다. 그는 단검으로 사체의 목을 다시 갈라 피를 흘려보냈다. 붉은 피가 흙바닥을 적셨다. 검붉은 색이 흙 사이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냄새는 여전히 역했지만, 조금 전보다는 익숙해진 듯했다. 사람은 무엇이든 반복하면 익숙해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작업이 끝나자 그는 자리에 앉아 상태창을 다시 열었다.
[레벨: 14]
[체력: 88 / 88]
[마력: 1,640 / 1,800]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을 늦게 발견했다. 언제 올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마 어린 숲멧돼지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스탯 상세 항목을 눌러보았다.
[보유 스킬: 단검술(초급), 스토리지, 토지 마법, 화염구(신규)]
그는 이제 남은 마법, 토지 마법이 궁금해졌다. 스토리지와 화염구는 이미 실전에서 써봤지만, 토지 마법은 아직 이름만 알고 있었다.
"토지 마법."
그가 속으로 외치자 창에 짧은 설명이 떠올랐다.
[토지 마법: 반경 3미터 이내의 지형을 일시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음. 마력 소모 변동적.]
설명이 짧아서 오히려 궁금증이 더 커졌다. 변형이라는 게 정확히 어디까지 가능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시험 삼아 손을 바닥에 대고 마력을 흘려보냈다. 웅— 소리와 함께 눈앞의 흙이 부드럽게 솟아올랐다가, 작은 둔덕 모양으로 굳었다. 흙이 움직이는 동안 손바닥에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마치 땅속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숨을 쉬는 것 같은 감촉이었다.
로한은 손을 떼고 둔덕을 살펴보았다. 높이는 무릎 정도였다. 표면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발로 밟아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건 야영지 만들 때 쓰면 되겠네."
그는 낮게 웃었다. 생각보다 유용한 스킬이었다. 바람막이가 될 둔덕을 세우거나, 야영지 주변에 낮은 담을 쌓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마력 소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상태창을 다시 확인해보니 마력은 크게 줄지 않은 상태였다. 소규모 변형에는 큰 마력이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기가 몰려왔다.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배낭 속 마른 빵을 꺼내 씹으며 주변을 살폈다. 빵은 딱딱하고 맛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감사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공기는 조금씩 서늘해지고 있었다. 밤이 되기 전에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숲의 밤이 어떤지, 로한은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웹소설 속 밤의 숲은 항상 위험한 곳이었다. 몬스터가 활동을 시작하고, 시야가 줄어들고, 방향을 잃기 쉬운 시간. 그 지식이 지금 이 순간 그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사이, 반쯤 무너진 천막이었다.
색이 바랜 천막의 한쪽 자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긴 풍경이 아니었다. 로한은 천천히 다가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천막 주변에는 부서진 나무 상자와 흩어진 화살, 그리고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상자는 뚜껑이 반쯤 뜯겨 있었고, 안에 있었을 물건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화살은 대부분 부러져 있었고, 몇 개는 촉이 사라지고 자루만 남아 있었다. 핏자국은 시간이 지나 검게 변해 있었다.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었다.
로한의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이곳에서 숲멧돼지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었다.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천막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은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짓밟힌 담요 조각과, 뒤집힌 냄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다만 한쪽 구석에 떨어진 나무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갖고 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모험가 인식표였다.
로한은 손을 뻗어 인식표를 집어 들었다. 나무 표면은 습기를 먹어 약간 부풀어 있었다. 손끝에 닿는 느낌이 서늘했다.
인식표를 뒤집자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름 같아 보였다. 획이 곧고 간결한 문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 세계의 문자를 아직 읽을 수 없었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 인식표의 주인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이 사람, 무슨 일을 당한 거지."
답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 숲에는 숲멧돼지보다 위험한 무언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
로한은 천막 안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 있던 것으로 보이는 가죽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무언가에 의해 뜯겨나간 흔적이었다. 짐승의 발톱 같기도 했고, 날카로운 무기에 잘린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는 인식표를 스토리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천막 안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여기 오래 머무는 것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최대한 숲 바깥쪽으로 향해야 했다.
로한은 방향을 가늠했다. 처음 이 숲에 떨어졌을 때 봤던 지형을 떠올리며, 대략 어느 쪽이 숲의 경계인지 추측했다. 확신은 없었다. 그저 감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그의 발밑에서, 무언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평범한 낙엽 소리와는 달랐다. 조금 더 딱딱하고, 조금 더 마른 소리였다.
그는 발을 멈췄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숨이 턱 막혔다.
낙엽 아래 반쯤 묻힌 것은, 사람의 손가락뼈였다.
관절 마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뼈는 이미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고, 주변 흙은 짓눌린 흔적이 있었다. 로한은 그 자리에서 몇 걸음 물러났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 숲멧돼지 무리를 만났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이건 짐승의 흔적이 아니었다. 사람의 것이었다.
그는 주변을 다시 살폈다. 혹시 더 있을지 몰랐다. 낙엽을 조심스레 살피던 그의 시선이,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밑동에 고정되었다.
나무껍질에 깊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세 줄. 일정한 간격으로. 사람의 손톱이나 무기로는 낼 수 없는 깊이였다.
로한의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숲멧돼지 따위가 아니었다. 이 흔적을 남긴 것은,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위험한 무언가였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는 이미 나무 끝에 걸려 있었다. 붉은 빛이 숲 전체를 물들이기 시작했고, 그 빛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로한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무너진 천막과 흩어진 화살, 그리고 낙엽 아래 묻힌 손가락뼈가 눈에 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기 전에, 먼저 이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나무 사이를 헤치며 걷는 동안에도, 등 뒤에서 무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숲은 조용했다.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로한에게는 무엇보다 더 불길한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