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라연입니다."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부터 옷차림까지, 완벽하게 여자로 위장한 채였다.
가슴 부분은... 아, 이건 넘어가자.
[위장 성공률 94%] 시스템이 뻔뻔하게 알려줬다.
남은 6%는 뭐야, 진짜.
혹시 걸음걸이? 목소리 톤? 아니면 그... 그 부분의 볼륨감 문제인가?
'6%의 정체를 알고 싶지만, 알아봤자 뭘 어쩔 건데.'
이미 늦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릴 수도 없었다.
교단 정문 앞, 신참 수도사를 받는 접수처였다.
줄은 짧았다.
다들 순박한 얼굴로 서 있는 걸 보니, 진짜 신앙심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나만 목적이 불순한 신참이라는 게 좀 미안할 지경이었다.
'미안하긴 한데, 그렇다고 관둘 건 아니고.'
나는 관이 도난당한 신전 중 하나, 그리고 대신관이 자주 방문한다는 지부에 신참으로 등록하기로 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정보를 모으고, 관의 행방을 찾고, 대신관에게 접근한다.
말은 간단한데 실행은 지옥이었다.
접수를 담당하는 수도사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였는데, 서류를 받아 들면서도 계속 내 얼굴을 힐끔거렸다.
"라연 님은... 처음 뵙는 얼굴인데, 어느 지방에서 오셨나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거긴 나도 몰라. 방금 시스템이 만들어준 신분이라서.'
"저... 동쪽 끝 마을에서요. 조용한 곳이라 다들 모르실 거예요." 나는 최대한 얌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콧소리를 섞으려다 실패해서 그냥 좀 낮은 여자 목소리로 나왔는데, 다행히 아주머니는 별 의심 없이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래, 세상에 여자 목소리가 다 똑같이 생길 필요는 없지.'
서류를 마치고 나니, 접수처 수도사 한 명이 다가와 내 걸음을 유심히 살폈다.
"라연 님, 걸음걸이가 조금 남자 같으세요." 접수처 수도사가 웃으며 지적했다.
'어쩌라고, 26년을 남자로 걸어왔는데.'
나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방긋 웃었다.
"연습 중이라 그래요, 호호." 최대한 콧소리를 섞었다.
그 순간 [위장 성공률 94%]가 93%로 떨어지는 걸 본 것 같은데,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등록을 마치고 배정받은 숙소로 향하는 길, 나는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에 몇 번이나 몸을 떨었다.
치마 자락이 다리에 스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이거 진짜 자존심 문제인데.'
전생에도 이런 짓은 안 해봤다.
아니, 전생이 어디 있어, 이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아무튼.'
하지만 명분은 확실했다.
남자 신관 후보로는 대신관 근처에 얼씬도 못 하지만, 여성 수도사에게는 이상하게도 은근한 특혜가 주어진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좋은 뜻은 아닐 거다.
숙소로 걷는 동안 마주친 다른 여성 수도사들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았다.
몇몇은 나를 보며 수줍게 눈을 피했고, 몇몇은 이상하게 동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저 표정들은 다 뭔데.'
뭔가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배정받은 숙소는 작고 소박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문 하나.
'수도사 생활이 이렇게 단조롭구나.'
짐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정리는 금방 끝났다.
숙소 배정 첫날, 나는 임무를 위해 지부 내부를 순찰하듯 돌아다녔다.
지도를 미리 외워둔 덕분에 길을 잃진 않았지만, 지부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본당, 기숙사, 식당, 그리고 여러 개의 창고와 부속 건물들.
'대신관 하나 잡으려고 이 미로를 다 뒤져야 하나.'
솔직히 좀 막막했다.
그러다 우연히, 예배당 뒤편 창고에서 낮은 신음 소리를 들었다.
[감지: 미약한 생명 반응] 시스템이 조용히 알렸다.
'생명 반응이라니, 뭔가 있다는 거잖아.'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혹시 함정이면 어쩌지.'
하지만 이대로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숲에서 구했던 그 임산부였다.
배가 더 불러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안 왔지만, 그때보다 확실히 힘들어 보였다.
"당신...?"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
다행히 알아보진 못했다.
라연이라는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니까.
'그래, 이 얼굴로 알아보면 그게 더 문제지.'
"괜찮으세요? 여기 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여자는 잠시 나를 경계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대신관님이... 절 돌봐주신다고 해서 왔어요." 여자의 목소리에 이상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돌봐준다는 말과, 이 어두운 창고와, 그 떨림.
뭔가 앞뒤가 안 맞았다.
돌봐주는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임산부를 방치해두는 걸까.
바닥엔 낡은 담요 한 장, 그리고 물 한 병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게 돌봄이면 나는 방금 왕이 됐겠다.'
'기억이... 조작된 건가.'
관의 힘 중 하나가 기억을 다루는 거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소문일 뿐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게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여자 곁에 앉았다.
창고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런 데서 몇날 며칠을 지낸 거야.'
"대신관님을 뵌 적 있으세요? 어디서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표정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마치 말하면 안 되는 걸 말하려는 사람처럼.
눈동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몇 번이나 열리다 닫혔다.
'뭔가 강제로 막고 있는 느낌인데.'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럴 때 서두르면 오히려 입을 닫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본당 지하... 세 번째 계단 아래..." 여자가 겨우 말을 뱉었다.
그러곤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정보 획득: 대신관 은거처 위치] [성과 등급: A] 오, A등급이라니, 오늘 운수 좋다.
'이렇게 쉽게 나올 정보였으면 진작 좀 캐내지.'
하지만 여자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죄책감.
분명 죄책감이었다.
기억이 지워졌는데도, 몸과 마음 어딘가엔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자국이 종이에 눌린 흔적처럼 남는 것과 비슷했다.
'이 사람, 뭔가 더 안다.'
나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작고 차가운 손이었다.
"괜찮아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라연의 목소리로, 라연의 손길로.
여자는 조금 안심한 듯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 무서워요.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여자가 속삭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여자의 손을 꽉 잡아주는 것밖에는.
'무슨 짓을 당한 거야, 도대체.'
분노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최대한 삼켰다.
지금 폭주하면 위장은 그날로 끝이었다.
'참자, 참자. 라연은 화내면 안 돼. 라연은 상냥해야 해.'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면서,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걷어내지 않으려 애썼다.
여자는 잠시 후 진정됐는지, 나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름이... 라연이라고 하셨죠? 기억할게요." 여자가 힘없이 웃었다.
'기억한다고 해도, 이 얼굴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텐데.'
나는 그저 웃어 보이고 창고를 나섰다.
창고를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감정 지수 상승 중] 시스템도 눈치챘는지 조용히 경고를 보냈다.
'참아라, 참아라.'
나는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앉아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창밖으로 지부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는 걸 보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기억을 지운다, 창고에 감금한다, 돌봐준다고 속인다.'
이게 다 우연일 리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대신관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뭔가 훨씬 더 어둡고, 훨씬 더 조직적인 짓을 하고 있었다.
임산부 한 명뿐일까.
'분명 더 있을 거다. 지금까지 몰랐던 게 이상할 정도로.'
첫날부터 은거처 위치라는 큰 성과를 거뒀지만, 마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는 게 정확할 거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천장을 보며 계획을 다시 세웠다.
'본당 지하, 세 번째 계단 아래.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나는 다음날 아침 예상치 못한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라연 수도사님,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낯선 여자 신관이 내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서늘했다.
옷차림을 보니 일반 수도사들보다 훨씬 격이 높은 사람이었다.
'설마, 벌써 걸린 건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여자 신관의 눈빛이 나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뭘 확인하는 건데. 내 정체? 아니면...'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웃으려 했지만, 입가가 살짝 굳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