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죽었더니 드로이드 함장이라니

5화

그로부터 대한연합함대 사령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사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 직접 본 건 아니었다. 훗날 도현이 정보망 잔여 신호를 뚫어 몰래 확인해준 내용을 종합해서 재구성한 것뿐인데, 그래도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도현 말로는 자기도 이거 뚫으면서 손이 다 떨렸다고 하던데, 뭐, 남의 함대 내부 통신을 도청하는 게 정상적으로 태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이해는 간다. 연합함대 작전사령부의 상황실에서는, 청단호를 포함한 제3함대의 실종이 공식 보고서에 오르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고 한다. 대형 홀로그램 테이블 위로 함대 배치도가 떠 있었고, 그 위에서 청단호를 나타내는 점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신호 유실'이라는 태그를 달고 있었다는데,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참모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이거였다. "청단호의 최종 교신 기록을 다시 확인해봐야 합니다"라고 정보참모가 말했고, 작전참모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작위 워프를 실행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함장 한별-392의 최종 명령 로그에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만" 그 말이 끝나자 회의실 안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무작위 워프라는 건 함대 규정상 사실상 자살 명령에 가깝게 취급되는 조치였고, 성공 확률이 낮게 잡혀 있는 만큼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그 명령을 최후의 수단으로만 여겼으니까. 누군가는 손에 든 데이터패드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는데, 그 정적이 몇 초쯤 이어졌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짧은 침묵 속에 참모들이 각자 머릿속으로 청단호의 생존 확률을 계산하고 있었을 거란 상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청단호는 사실상 소실로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는데, 그 말에 강하게 반발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인사참모였다. "한별-392 함장은 이번 전투에서 클론병사군단의 신형 기동 패턴을 최초로 분석해 전송한 인물입니다. 그 데이터가 아니었으면 나머지 함대의 피해는 훨씬 컸을 겁니다. 소실 처리는 아직 이릅니다" 그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다시 갈라졌다고 하는데, 요컨대 청단호를 두고 함대 내부에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었다는 게 결론이었다. 하나는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해 빠르게 소실 처리하고 다음 작전에 집중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장 한별-392가 남긴 전술적 성과와 그 미인증 개체로서의 특이성 때문에 끝까지 수색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작전참모는 전선 전체의 자원 배분표를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지금 우리에게는 여유 함선이 없습니다, 클론병사군단의 2차 기습 가능성이 이미 세 개 항성계에서 감지되고 있는데 여기에 수색대를 추가로 편성하는 건 도박입니다"라고 잘라 말했고, 그에 반해 인사참모는 "그 도박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함대에서 가장 유능한 판단력을 가진 함장 하나를 그냥 버리는 겁니다"라고 맞섰다는데, 이 두 사람의 대립이 회의 초반부의 큰 축이었다고 도현은 정리해주었다. 특히 후자를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 있었는데, 함대 정보국의 한 간부였다고 한다. 이름까지는 도현도 신호를 완전히 복구하지 못해 알아내지 못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 간부는 회의 자리에서 자기 앞에 놓인 데이터패드를 몇 번 넘기다가 이렇게 말했다는 모양이다. "한별-392의 개체 조달 기록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건 정규 예산으로 편성된 개체가 아닙니다. 조달과장이 임의로 예산을 전용해 만든 비공식 고급 신체이며, 정식 등급 인증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는데, 누군가는 "그렇다면 즉시 감사 조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함선의 생사가 우선이다"라며 맞받아쳤다는 게 그날 회의의 대략적인 그림이었다. 정보참모는 여기서 한마디를 더 얹었다는데, "만약 이 개체가 비공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상부에 알려지면 조달과장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예산 전용 규모가 작지 않아 보입니다"라고 지적하면서 회의는 잠시 청단호가 아니라 조달 비리 쪽으로 논점이 흐트러지기도 했다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아니 그 아저씨는 대체 나를 얼마짜리 부품으로 만들어놓은 거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뭐, 그거야 나중 일이고. 결국 그 간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등급 인증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더라도, 이 개체가 실전에서 보여준 판단력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만약 살아있다면, 이건 함대 입장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자산입니다" 그 발언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일단 청단호에 대한 수색 여력을 최소한으로 배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최소한'이라는 게 실제로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는 것이었다. 배정된 건 정찰용 무인 드론 몇 기와, 그마저도 우선순위가 낮게 책정되어 실제 가동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예정이었다고 하니, 사실상 수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조치였다. 전선 전체가 클론병사군단의 기습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함대는 실종된 한 척의 함선을 찾기 위해 수색대를 따로 편성할 여력이 없었으니까. 요컨대 나는 그 시점에서 이미 함대 내부에서 '자산이냐, 감사 대상이냐'를 두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셈인데, 정작 나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낡은 유적 안에서 워프 코어 부품 하나를 손에 넣고 좋아하고 있었으니, 이 아이러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감사 대상이라며 서류를 뒤지고 있는데, 나는 그 시각 부품 하나 주웠다고 함장석에 앉아 히죽거리고 있었다는 거니까. 세상 참 아무도 모르게 돌아간다. 다시 청단호로 돌아와서—우리는 구조물 관문 격파 신호가 광역으로 송출됐다는 걸 확인한 직후, 서둘러 함선으로 복귀하는 절차를 밟았다. 유적 내부 통로를 되짚어 나오는 동안 정비드로이드들이 부품을 감싼 보호 프레임을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옮기는 소리가 콰긍, 콰긍 하고 좁은 통로 안에 울렸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제발 흠집 하나라도 나지 마라' 하고 속으로 빌었다. 획득한 워프 코어 부품을 정비드로이드들이 즉시 엔진실로 옮기는 사이, 나는 함장석에 앉아 상황판을 다시 훑었다. [알림: 발신 신호에 반응하는 미확인 함선 3기가 이 항성계 외곽에서 접근 중입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함선 전체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걸 느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부품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에 콧노래라도 부를 판이었는데, 그 알림 하나에 상황실 조명이 갑자기 몇 도쯤 낮아진 것처럼 느껴졌다면 순전히 내 기분 탓이었겠지만, 그만큼 체감상의 온도차는 확실했다. 접근하는 함선의 신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게 우호적인 세력일 가능성은 애초에 거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항성계에서 구조물 관문을 격파했다는 신호를 듣고 반응할 만한 세력이라면, 뻔한 얘기지만 그 관문을 지키던 쪽 아니면 그 관문을 노리던 또 다른 약탈자 쪽이지, 우리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올 손님은 아니었을 테니까. "함장님, 부품 장착까지 최소 두 시간 필요합니다"라고 수리-05가 다급하게 보고했고, 도현은 곧바로 함재기 대기 명령을 내리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수리-05가 보고하면서 손끝으로 콘솔을 두 번 두드리는 버릇 반응—긴장했다는 신호였다—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게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두 시간이라니, 저 함선들 도착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데"라고 물었지만, 스캐너에 뜬 예상 도착 시간을 확인한 순간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예상 도착까지 47분.] 엔진 수리에는 두 시간이 필요한데, 정체불명의 함선들은 47분 안에 도착한다는 소리였다. 그 단순한 숫자 차이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잔인하게 요약해주고 있었고, 나는 함장석 팔걸이를 움켜쥔 채 다음 명령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과 사십칠 분. 뺄셈이야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계산인데, 그 답이 '우리는 도망칠 시간조차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도현은 이미 함재기 배치도를 띄워놓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수리-05는 여전히 콘솔을 두드리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 두 사람의 시선 사이에서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47분. 그 숫자만이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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