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행사 이후로 서하은은 부쩍 말이 없어졌다.
방문을 잠그는 소리도 전보다 더 자주 들렸다.
딸깍, 딸깍.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식탁에 마주 앉아도 서하은은 시선을 접시에만 두었다.
포크질 몇 번, 물 한 잔, 그리고 방으로.
그게 요즘 우리 집의 전부였다.
나는 그 실루엣의 정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행사장 조명 아래서 봤던 그 남자의 뒷모습.
서하은이 그를 보고 멈춰 섰던 그 짧은 순간.
인터넷을 뒤졌다.
새벽 두 시, 노트북 화면만 밝은 방 안에서 나는 서하은의 이름을 검색창에 눌러 넣었다.
과거 기사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스캔들이었다.
기사 제목들이 눈에 걸렸다.
누구와 열애설, 누구와 밀회설, 누구와 스킨십 포착.
클릭을 할 때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중 한 이름이 유독 자주 나왔다.
한도윤.
영화감독, 서하은의 오래된 스캔들 상대.
기사 아래 댓글들이 험했다.
남녀 성비가 뒤틀린 세상에서 여자 배우 스캔들은 더 잔인하게 씹혔다.
꽃뱀이라는 단어,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단어, 배우 인성 문제라는 단어들이 화면을 채웠다.
나는 그걸 다 읽고 나서 노트북을 닫았다.
속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서하은의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준서 씨죠?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평소 같으면 사무적으로 딱딱 끊어 말하는 사람인데, 오늘은 문장 사이사이에 뜸이 길었다.
"어제 행사장에 한도윤 감독이 왔었어요. 원래 서하은 씨 데뷔작 감독이었는데..."
"그런데요."
"몇 년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언론엔 안 나온 얘긴데."
매니저가 말을 흐렸다.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말씀 안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다만."
"다만요?"
"요즘 그 사람이 다시 서하은 씨 근처를 맴돈다는 얘기가 있어서요."
"근처를 맴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냥... 조심하시라는 얘기예요. 서하은 씨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저한테 바로 연락 주세요."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더 캐물을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고 나는 한참 부엌 창밖을 바라봤다.
햇빛이 마당 잔디 위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낯설었다.
평범한 아침이었어야 했다.
집 안이 조용했다.
서하은은 아침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평소라면 벌써 한 번은 부엌에 들러 물을 마시고 갔을 시간이었다.
나는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손끝이 문에 닿는 순간 심장이 쿵, 한 번 크게 뛰었다.
"저기, 잠깐만요."
대답이 없었다.
한 번 더 두드렸다.
여전히 조용했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문을 살짝 열었다.
서하은이 침대에 앉아 손에 든 오래된 펜던트를 만지고 있었다.
은색 펜던트, 낡아서 색이 벗겨진.
햇빛도 안 드는 방 안에서 그 펜던트만 유독 흐릿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그녀가 재빨리 그것을 손안에 감췄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가 평소와 달랐다.
너무 빨랐다.
숨기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의 속도였다.
"노크했잖아요."
"대답을 안 하셔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평소의 서하은이라면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지 않았을 텐데.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잠시 멈췄다.
말을 해야 하나. 말을 해도 되나.
아니, 말 안 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한도윤이라는 사람 아세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손안의 펜던트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변했다.
숨소리가 짧게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어디서 그 이름을."
"어제 행사장에서 봤다면서요."
"나가요."
목소리가 얼음처럼 굳었다.
그 한마디에 방 안 공기 전체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저는 그냥 걱정돼서..."
"나가라고 했어요."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지고 있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은.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나왔다.
복도에 서서 잠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문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듣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발이 안 떨어졌던 걸까.
닫힌 문 안쪽에서, 낮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처음 이 집에 온 날 들었던 그 소리와 똑같았다.
그날도 이렇게 방문을 사이에 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서하은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 앞에 물컵을 놔두고, 저녁엔 죽을 끓여 쟁반에 얹어 놓고.
쟁반은 조금씩 비어 있었다.
누가 왔다 갔다는 흔적만 남기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루였다.
그날 밤, 나는 서재에서 우연히 오래된 서류철을 발견했다.
책장 맨 아래, 다른 서류들 사이에 눌려 있던 낡은 파일이었다.
왜 하필 그날 그걸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손이 거기로 갔다.
서하은의 이름과 한도윤이라는 이름이 함께 적힌 계약서였다.
서명 날짜는 몇 년 전.
종이는 오래돼서 귀퉁이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계약 조항 중 한 줄이 눈에 박혔다.
"당사자는 이 계약과 관련한 어떠한 사실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이게 대체 뭐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해가 안 됐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힌 조항들은 짧고 무미건조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순간,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느리지만 분명한 발소리.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서하은이 서재 문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든 서류철을 보는 그녀의 눈빛이 얼음보다 차가웠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는 정적만이 흘렀고, 나는 손에 쥔 서류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서류철에서 내 얼굴로 옮겨갔다.
그 눈빛 안에 담긴 게 분노인지, 배신감인지, 두려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마 셋 다였을지도 모른다.
"그거."
낮게 갈라진 목소리였다.
"그거, 어디서 찾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