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숨겨진 여동생의 후견인

2화

장례식장 복도는 조문객들로 붐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갔다. 향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스며들었다. 도윤은 그 사이를 헤치며 소라를 찾았다. 하은은 대기실에 남겨두고 온 참이었다.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삼켜졌다. "소라야." 소라는 접수대 옆에서 방명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끝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리며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도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어딘가 굳어 있었다. "네, 선배님." "아까…… 그거,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는데." 소라는 살짝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라간 그 웃음이 도윤에게는 더 무섭게 느껴졌다. "오해요? 뭘 오해해요." "그 애가 누구냐고 묻고 싶었던 거 아니야?" "뭐, 궁금하긴 한데. 선배님 사생활이니까요." 말투가 평소보다 딱딱했다. 소라의 손이 방명록 모서리를 괜히 정리하듯 매만졌다. 도윤은 그 손끝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 설명 안 하면 진짜 오해할 것 같은데.' "이복동생이야." 소라의 손이 방명록 위에서 멈췄다. 펜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네?" "우리 아버지…… 재혼하셨었나 봐.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 소라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방금 들은 말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눈동자가 도윤의 얼굴을 훑고, 다시 대기실 쪽 문을 향했다. "그럼 그 애가……" "열다섯 살. 고등학교 일 학년." 소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오해가 걷히는 대신, 다른 종류의 걱정이 자리를 잡았다. 방명록을 정리하던 손이 아예 멈춰버렸다. "세상에. 그럼 그 애 지금 혼자예요?" "어머니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대." 소라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작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선배님…… 그럼 저 애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도윤도 그걸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편지 한 장, 낡은 사진 한 장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조차도 감이 서지 않았다. "모르겠어. 일단은…… 아버지 장례부터 치르고." 말끝이 흐려졌다. 자기 목소리인데도 낯설게 들렸다. 그때 빈소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걸걸하고 카랑카랑한, 언제 들어도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복도 저편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아니, 도윤이 어디 갔어! 상주가 자리를 비우면 어떡해!" 도윤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고모다.' 강미숙, 아버지의 누나이자 도윤에게는 유일하게 남은 고모였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크고 기가 센 사람이었다. 결혼식이든 명절이든, 미숙이 등장하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지곤 했다. 도윤은 급히 빈소로 돌아갔다. 소라가 그 뒤를 따랐다. 접수대 위에 방명록을 대충 내려놓고 뛰듣이 따라오는 걸음이 다급했다. 영정 앞에 선 미숙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였다. 하지만 슬픔보다는 분노가 더 짙게 배어 있는 얼굴이었다. 검은 한복 소매 끝을 꽉 움켜쥔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 방금 대기실에서 나오는 거 봤다. 거기 그 여자애는 누구야?" 도윤은 잠시 말을 고르며 숨을 삼켰다. 목구멍이 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고모, 그게……" "뭔데. 말을 해." 미숙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뭔가를 이미 짐작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눈빛에 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아버지…… 딸이래요." 장례식장 전체가 순간 조용해졌다. 조문객들의 시선이 다시 도윤에게 쏟아졌다. 누군가는 육개장 그릇을 든 채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미숙의 얼굴에서 핏기가 확 빠졌다. "뭐라고?" "편지를 가지고 왔어요. 아버지 필체가 맞아요." 미숙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지만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이 정말……" 미숙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에 핏발이 섰다. 숨을 크게 몰아쉬는 소리가 도윤의 귀에까지 들렸다. "동생이 그런 인간이었어. 살아서도 사고, 죽어서도 사고." 도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모의 흔들리는 어깨를 바라볼 뿐이었다. 평생 처음 보는 미숙의 모습이었다. 저 강철 같은 사람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미숙은 도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 애, 지금 어디 있어." "대기실에요." "데려와. 얼굴이나 보자." 도윤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미숙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분노,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경계심. 그 세 가지가 뒤엉킨 목소리는 어느 쪽으로도 예측할 수 없었다. 소라가 도윤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선배님, 저도 같이 가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걸음이었다. 대기실로 향하는 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복도의 조명이 유난히 밝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대기실 문을 열자 하은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편지를 품에 안은 채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하은아." 도윤이 부르자 하은은 고개를 들었다. 뒤따라 들어온 미숙의 얼굴을 본 순간, 하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낯선 어른의 등장에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미숙은 하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말없이 관찰하는 그 시선이 대기실 안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진짜 태식이 딸이야?" 하은은 겁먹은 토끼처럼 몸을 움츠렸다. 어깨를 안으로 말아 넣듯 웅크렸다. 하지만 곧 편지를 다시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턱 끝이 살짝 떨렸다. "네…… 편지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갈 듯 작았다. 미숙은 편지를 받아 훑어보았다. 손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종이를 쥔 손끝 마디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한참을 읽던 미숙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이 필체, 맞네."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그 한마디에 대기실 안 모두가 숨을 죽였다. 미숙은 편지를 접어 하은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도윤을 향해 돌아섰다.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분노 대신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도윤아." "네." "이 애, 네가 데려가야 한다." 도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되짚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고모, 저는……" "나는 못 키운다. 나이도 있고, 애도 셋이나 있어. 태식이 유일한 핏줄인 아들이 너 아니냐." 미숙의 말투에는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도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은이 도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마치 버려질까 두려운 강아지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도윤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소라도 조용히 도윤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야.' 머릿속이 다시 하얘졌다. 결혼, 계약, 하은, 아버지의 죽음.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었다. 장례식장 밖에서 갑자기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타타닥, 타타닥. 낯선 남자 하나가 대기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었지만, 조문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각진 서류 봉투를 손에 꽉 쥐고 있었다. 표정에 조문의 예의라고는 조금도 배어 있지 않았다. "강도윤 씨 계십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공간을 가르는 그 한마디에 대기실 안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간 것 같았다. 도윤은 순간 온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미숙과 소라의 시선이 동시에 남자에게로 향했다. 하은도 편지를 꼭 쥔 채 그 낯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도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네, 제가 강도윤인데요."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류 봉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도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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