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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해서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팀장에게 호출을 받았다. 어제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 그 인사도 받지 못했던 사소한 일이 벌써 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나는 계단을 오르는 내내 대체 누가 그걸 전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팀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팀장은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고개도 들지 않은 채로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들었어. 인사도 못 받았다며." 그 말투에 별다른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져서 목이 타는 걸 참으며 겨우 대답을 짜냈다. "아직 첫날이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팀장은 그제야 태블릿에서 눈을 떼고 나를 잠시 응시했다. 그 시선이 마치 내 안을 들여다보려는 듯 집요하게 느껴져서 나는 손끝을 슬며시 말아쥐었는데, 팀장은 짧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어. 3개월이야. 그 안에 성과 안 나오면 다음은 없어." 단정적인 그 말이 귓가에 남아 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3개월.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고,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3개월 만에 벽을 넘으라니,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그날 오후, 이서현의 두 번째 촬영 일정을 확인하러 세트장으로 향하면서 나는 나름의 계획을 세워보려 애썼다. 억지로 다가가지 말고 자연스럽게, 그녀가 필요한 걸 먼저 채워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차 안에서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대화를 시뮬레이션해보았는데,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아 결국 아무 말도 준비하지 못한 채 세트장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코디네이터가 다급하게 다가와 속삭였다. "매니저님, 서현 언니 지금 기분 별로예요. 대본 수정본이 잘못 왔거든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첫날부터 실수를 했다는 자책이 밀려오기도 전에, 나는 곧바로 스크립트 팀에 확인 전화를 넣었다. 신호음이 이어지는 동안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고, 다행히 십 분 만에 정확한 수정본을 받아 대기실로 가져다줄 수 있었다. 대기실 문을 두드리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소파에 앉아 대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서늘했던지, 나는 문턱을 넘는 순간에도 괜히 숨을 죽였다. "수정본입니다." 조용히 건네자 그녀는 종이를 받아들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두지 않았다. 그러다 대본을 넘기던 손이 잠깐 멈추더니, 그녀가 나지막이 물었다. "이거 확인은 어떻게 한 거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녀가 뭔가를 캐묻는다는 것 자체가 낯설어서 순간 말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결국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스크립트 팀에 직접 전화해서 재확인 받았습니다. 혹시 또 틀릴까 봐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 없이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뭔가 미세하게 달라진 공기를 느꼈다. 방 안의 온도가 살짝 올라간 것 같은, 아니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착각이겠지. 아니면 그저 순간의 변덕이거나. 나는 대기실을 나오면서도 자꾸만 그 짧은 순간을 되짚어보았다. 그녀의 손끝이 멈췄던 그 몇 초, 그리고 질문을 던지던 목소리의 낮은 떨림. 그게 관심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확인 절차에 대한 의구심이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회사로 복귀한 나는 팀장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오늘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 스태프한테 들었어." 팀장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투 아래 숨은 평가를 느끼며 손끝이 저릿해졌다. "수정본 확인한 거 잘했어. 근데 그런 거 하나로 마음 풀릴 사람이었으면 벌써 세 명이 버텼겠지." 냉소적인 그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세 명. 그 숫자가 또다시 목을 조여왔다. "명심해. 서현이 벽을 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모르면 넌 절대 그 벽 못 넘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고,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이유라니, 도대체 어떤 이유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차갑게 만든 걸까. 나는 회사 자료실로 내려가 그녀의 과거 인터뷰 영상을 몇 개 찾아 재생해보았다. 자료실 특유의 서늘한 공기와 낮게 웅웅거리는 서버 소리 속에서, 나는 화면에 뜬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데뷔 초의 그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화면 속에서 너무나 낯설게 느껴져 나는 저도 모르게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돌려보았다. 지금의 그녀와 저 화면 속의 그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진행자가 던진 질문에 그녀가 잠깐 굳는 순간을 발견했다.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그분과는 요즘도 연락하시나요?" 그 질문 이후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흐려졌고, 손끝이 무릎 위에서 살짝 말려드는 게 화면에 잡혔다. 대답은 짧고 사무적으로 끝났다.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려보며 뭔가 있다는 확신을 굳혔다. 그분이라는 게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걸까. 활동을 함께 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그 영상의 날짜와 방송국, 그리고 진행자의 이름까지 메모지에 적어두었다. 언젠가 이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조각일 뿐이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팀장이었다. "내일 오전 촬영 스케줄에 변동 있어. 그리고, 이서현 씨 소속사에서 박준서 씨 쪽 캐스팅 문의가 들어왔다는데, 두 사람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될 것 같으니 미리 알아둬."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박준서. 나는 그 이름을 되뇌며 왠지 모를 불안이 스치는 걸 느꼈다. 방금 화면 속에서 보았던 그녀의 굳은 표정과, 지금 팀장이 전한 이름이 어딘가 겹쳐지는 것 같은 기묘한 위화감이었는데, 그 불안이 무엇을 예고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박준서라는 이름 세 글자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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