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면접관이 내 이름을 세 번이나 확인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야 했다. 강도윤 씨, 강도윤 씨 맞으시죠, 하고 재차 되묻는 목소리에는 묘한 동정이 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저 신입이라 절차가 꼼꼼한가보다 생각하며 넘겼을 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복도를 나서는 길에도 인사팀 직원 두엇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눈빛을 주고받는 게 느껴졌지만, 그때는 그조차 신입에 대한 흔한 관심이라 여겼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사원증을 목에 걸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 회사에서 내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뒤틀릴 거라는 사실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입사 첫날, 팀장은 나를 사무실 구석 자리로 데려가더니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강도윤 씨, 오늘부터 이서현 배우님 전담이야." 나는 커피잔을 든 손이 순간 멈칫하는 걸 느끼며 그 이름을 곱씹었다. 이서현이라면, 스크린에서 본 적 있는 그 배우, 냉정하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얼음공주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 톱스타를 말하는 건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되묻자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대신 파일 하나를 책상 위에 툭 던져놓았다. 파일 표지는 손을 많이 탔는지 귀퉁이가 닳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전임자가 세 명이었어. 셋 다 세 달을 못 버티고 나갔지." 팀장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서늘하게 다가와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는 걸 느꼈다. 왜 못 버텼냐고 묻자 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냥 성격이 안 맞아서 그런 거야, 라고 짧게 답했는데 그 대답이 너무 간결해서 오히려 더 많은 걸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성격이 안 맞는 정도로 세 명이 연속으로 나갈 리가 있나. 나는 팀장의 얼굴을 살피며 뭔가 더 캐물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더 물어봐야 소용없겠구나.
그럴 리가.
파일을 펼쳐보니 이서현의 프로필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실제 사진은 더 서늘한 눈빛을 담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 눈에는 어떤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기 같은 것이 서려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인터뷰 기사 몇 개를 대충 훑어보니 하나같이 그녀를 까칠하고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었고,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는 은근한 악의마저 느껴져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떤 기자는 그녀를 두고 촬영장의 폭군이라 표현했고, 다른 하나는 인간미가 없는 배우라는 제목을 달아놓기까지 했다. 이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이 반복되는 걸 보면, 뭔가 있기는 있는 거겠지.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배정받은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오후에 첫 미팅 일정을 확인하려고 스케줄러를 켰을 때, 나는 휴대폰이 계속 진동하는 걸 느끼며 무슨 일인가 싶어 화면을 켰다. 실검 상위에 이서현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고, 클릭해보니 기사 제목이 눈에 박혔다. '이서현, 또 신입 매니저 울렸다?' 나는 그 제목을 세 번쯤 다시 읽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오늘 출근한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나는 아직 그녀를 만난 적도 없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기사 본문을 읽어보니 익명의 관계자 제보라는 이름으로 온갖 추측이 덧붙여져 있었는데, 신입 매니저가 첫날부터 이서현의 냉대에 눈물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댓글 창에는 벌써 수백 개의 반응이 달려 있었고, 그중 몇몇은 그녀의 인성을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서서 화면을 노려보다가, 이게 대체 누구 이야기인 건지 되짚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 말고는 해당될 사람이 없었다. 입사 첫날에 이런 기사가 붙는다는 게 말이 되나.
도대체 왜, 만나지도 않았는데.
팀장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받았다. "그거 원래 그래. 이서현 씨 관련해서는 뭐만 터지면 다 그런 식으로 기사가 나.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는데,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왜곡을 감당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렇다면 정정 기사라도 낼 수 있는 거냐고 물었지만, 팀장은 그런 걸로 일일이 대응하다간 회사 이미지가 더 나빠진다며 그냥 넘기라고 못박았다. 그 단호함이 오히려 더 께름칙했다. 팀장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일 오전 열 시, 이서현 씨 촬영장으로 가. 직접 인사드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무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벌써 지쳐 보였고, 초침 소리만 유독 크게 들리는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말 세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세 달이 아니라 첫 만남부터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파일을 다시 집어 들어 표지를 손끝으로 쓸어보았는데,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마저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나는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이서현이라는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보았다. 화면에 뜨는 사진마다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 있었고, 어떤 인터뷰 영상 속에서는 질문을 던진 기자를 향해 짧고 차갑게 대답을 끊어버리는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저런 사람을 세 달, 아니 하루라도 상대해야 한다니. 나는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정장 재킷의 매듭을 세 번이나 고쳐 매며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에는 벌써 땀이 배어 있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창밖으로 스쳐 가는 건물들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어제 본 기사 제목이 자꾸 눈앞에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다. 이미 세상은 나를 울린 매니저로, 그녀를 냉혈한으로 낙인찍어버렸는데, 나는 아직 그 얼음공주의 얼굴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지, 아니 사람이긴 한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촬영장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스태프들이 나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 속에는 동정과 흥미가 뒤섞여 있어서, 나는 마치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처럼 느껴져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저 사람이 새 매니저래, 하고 누군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얼마나 갈까, 하고 나지막이 내뱉는 소리까지 귓가에 스쳤다. 나는 그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촬영장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 안쪽,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세트 한가운데 낯익은 실루엣이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게 보였다. 화면 속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 옆모습이었다.
내가 아직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는데, 심장이 벌써부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