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교실 문을 열자마자 시선이 쏟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이미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복도에서부터 참았던 숨을 문 앞에서 한 번 더 참았다.
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그걸 바지에 슬쩍 문지르고 나서야 문을 밀었다.
"왔어?"
태민이 내 자리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너무 태연한 표정이라 오히려 짜증이 났다.
저 자식은 지금 이 상황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게 온몸으로 드러났다.
"진짜 할 거야?"
"당연하지."
"지금?"
"지금."
교실 시계를 봤다.
8시 15분.
조회 시작까지 15분 남았다.
서윤은 아직 자리에 없었다.
창가 두 번째 줄, 내 앞자리.
비어 있는 의자를 보자 오히려 안심이 됐다.
그 안심이 오래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잠깐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안 왔네."
"곧 와."
"그럼 좀 있다 하면 되잖아."
"지금이 딱 좋아. 애들 많을 때."
애들이 많을 때가 왜 좋은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오히려 최악의 조건 같았는데.
"많을 때 해야 되돌릴 수가 없어."
"그게 뭔 소리야."
"너 어제 밤에 또 관둔다고 문자 보냈잖아."
말을 잃었다.
어제 새벽 두 시, 이불 속에서 핸드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 껐다 하다가 결국 보낸 문자였다.
태민은 그걸 그냥 무시하고 자버렸다고 했다.
지금 보니 무시한 게 아니라 계획을 짠 모양이었다.
"넌 진짜···."
"고맙지?"
"고맙긴 개뿔."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대화 소리가 순간 잦아들었다.
누가 왔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향이 스쳤다.
샴푸 냄새인지 섬유유연제 냄새인지 모를, 은은한 냄새.
서윤이었다.
하얀 셔츠 위로 단정하게 매인 리본,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 살짝 처진 눈매.
걸음마다 시선이 따라붙는 게 당연해 보이는 애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 노트를 뒤적였다.
괜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
노트에 적힌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손가락이 종이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태민아."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뭐."
"진짜 지금 해야 돼?"
"어."
대답이 짧고 단호했다.
반박할 틈을 주지 않는 어조였다.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무거웠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교실 안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세 걸음.
겨우 세 걸음짜리 거리였다.
그 세 걸음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저기."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큰 눈이 나를 향했다.
순간 숨이 막혔다.
"응?"
대답하는 목소리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나는 그 목소리에 잠깐 멈췄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책상 위에 놓인 서윤의 필통이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애매한 회색.
그런 사소한 것까지 눈에 들어오는 게 이상했다.
"할 말이 있는데."
뒤에서 태민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저 자식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웃음을 못 본 척했다.
"뭔데?"
서윤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으로 준비했던 문장들이 순서 없이 뒤섞였다.
어제 화장실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연습했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단 한 문장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어···."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등 뒤에서 반 애들 몇몇이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누군가 옆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안 들렸지만, 그 톤만으로도 짐작이 갔다.
"천천히 말해."
서윤이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다정했다.
왜 이렇게 다정하게 웃는 거지.
나는 그 웃음 앞에서 더 말을 잃었다.
다정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차갑게 반응했으면 오히려 이 상황을 빨리 끝냈을 텐데.
그때 뒤에서 태민이 작게 속삭였다.
"조회 시작한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구두 굽이 복도 바닥을 딱딱 두드리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아, 조회 시작하네."
서윤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따 다시 얘기해줄래?"
그 말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이 웃고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느꼈다.
"뭐야, 왜 말 안 했어."
태민이 작게 물었다.
"조회 시작했잖아."
"핑계야."
"핑계 아니거든."
반박하는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궁했다.
태민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조용히 앉았다.
조회가 시작되는 동안 나는 앞자리 서윤의 뒤통수만 계속 쳐다봤다.
담임 선생님이 뭔가 말하고 있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칠판에 적힌 숫자와 날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 다시 얘기해줄래.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어떤 표정으로 물어봤는지, 목소리 톤이 어땠는지까지 다 기억이 났다.
거절하려는 사람이 저렇게 웃으면서 말할까.
아니면 그냥 예의상 웃은 걸까.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반 분위기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책상과 책상 사이로 종이 넘기는 소리보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누가 누구를 쳐다보는지, 누가 누구한테 뭔가를 속삭이는지, 온 교실이 그 소리로 가득했다.
"야, 진짜야? 김도윤이 이서윤한테 고백했다는 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문은 이미 반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나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떻게 벌써 소문이 나."
"내가 몇 명한테 슬쩍 말했지."
태민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
"확산이 빠를수록 되돌리기 힘드니까."
무슨 논리인지 이해가 안 됐다.
저 나름의 전략이라는 건 알겠는데, 동의한 적은 없었다.
"너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봤으면 안 한다고 했을 거잖아."
맞는 말이라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순간, 창밖에서 서윤이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웃는 얼굴이 유독 밝았다.
왜 저렇게 밝은 표정인지 궁금해졌다.
거절할 게 뻔한 애가 왜 저렇게 신나 보이는 걸까.
그 물음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친구 하나가 서윤의 팔을 붙잡고 뭔가 귓속말을 했다.
서윤이 그 말을 듣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아까 나한테 보여준 웃음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쟤 왜 저렇게 웃냐."
"몰라, 나도."
태민이 옆에서 창밖을 같이 보다가 중얼거렸다.
"설마 좋다는 뜻 아니야?"
"미쳤어? 그냥 웃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끓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좋다는 뜻이면 어떻게 하지.
만약 정말로 아니라면 이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느 쪽이든 심장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나는 창밖만 보고 있었다.
서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이유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오늘 하루가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