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보건실은 원래 한산한 공간이었다. 다치거나 아픈 아이들이 잠깐 들러 소독약 냄새를 맡고 나가는, 학교에서 가장 조용한 방 중 하나. 하루에 드나드는 인원이라고 해봐야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고, 대부분은 배가 아프거나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애들이었다.
그날 아침만은 예외였다.
1학년 3반 담임과 보건 선생님, 그리고 학년부장까지 모여 채뇨함 앞에 서 있었다. 세 사람이 한 공간에, 그것도 이른 시간에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채뇨함은 학교 표준 규격의 스테인리스 냉장 보관함으로, 서랍마다 학생 번호가 붙어 있고 자물쇠 대신 간단한 스티커 봉인으로 잠겨 있었다. 봉인이 훼손되면 바로 알 수 있는 구조였다. 학교 측이 몇 년 전 도입한 방식이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고 했다.
17번 서랍의 스티커 봉인은 멀쩡히 붙어 있었다. 문제는 그 안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건 선생님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봉인은 그대로인데."
담임이 물었다.
"CCTV는 확인해봤어요?"
"확인해야죠. 근데 문제는…"
보건 선생님이 말을 흐렸다. 보건실 CCTV는 딱 한 대, 출입문 쪽만 비추고 있었다. 채뇨함이 놓인 안쪽 구석은 화면에 아예 잡히지 않았다. 예산 문제로 그렇게 설치됐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었다. 게다가 어제 오후, 방과 후 채뇨함 정리를 맡은 사람은 보건위원 두 명뿐이었고, 그중 한 명은 조퇴를 해서 실질적으로는 한 명이 마지막까지 보건실을 지켰다.
그 한 명이 정하은이었다.
학년부장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일단 그 학생부터 불러서 얘기 들어봐야겠네요."
"하은이는 뭐 잘못한 거 없을 텐데."
담임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은은 원래 성실하고 조용한 학생으로 통했다. 보건위원 활동도 자원해서 맡은 케이스였고,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없었다. 그러니 이 사건이 하은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거라고는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현은 그 사실을 조회 시간에 담임을 통해서 들었다. 담임은 별일 아니라는 투로, 그저 확인 차원에서 이도현을 보건실로 불렀다고 했다. 도현은 딱히 긴장하지 않았다. 자신의 채뇨가 사라졌다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게 자신에게 무슨 큰일이 되리라는 예감은 없었다. 애초에 도현에게는 이런 종류의 사건 자체가 낯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학교 행정 서류 하나가 사라지는 일 같은 건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교실을 나서면서 승호가 물었다.
"뭔데, 너 뭐 잘못했어?"
"아니, 채뇨가 없어졌대."
"채뇨가 왜 없어져. 그게 그렇게 귀한 거야?"
"몰라."
사철이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혹시 누가 몰래 마신 거 아니야?"
"그런 미친놈이 어디 있어."
"세상에 미친놈 많아, 인마."
그런 실없는 대화를 뒤로하고 도현은 보건실로 향했다. 복도를 걸으며 딱히 심각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귀찮다는 정도의 감정이었다.
보건실에 들어서자 하은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잠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둘만 남은 공간에서, 하은이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이상했다.
동정이나 불안이 아니라,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마치 시험지를 채점하듯이. 도현은 순간 그 눈빛에서 낯익은 감각을 느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그런데 정확히 어디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종류의 눈빛이었다.
"이도현 학생."
하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3교시 끝나고 채뇨했지?"
"응."
"내가 받아서 17번 서랍에 넣는 것도 봤지?"
"봤어."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없어졌어."
도현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뻔했다. 채뇨 같은 걸로 누가 무슨 짓을 할 리는 없었고, 없어졌다면 그저 어딘가 착오가 있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하은의 다음 말이 그 무심함을 살짝 흔들었다.
"근데 이상한 게 뭐냐면, 그 서랍은 어제 오후 4시부터 오늘 아침 7시까지 나 혼자 있었던 시간대에 사라졌다는 거야."
"그게 왜 이상해?"
"내가 계속 그 방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문도 잠겨 있었고, 창문도 그 시간엔 다 닫혀 있었어. 그러니까 누군가가 밖에서 들어와서 훔쳐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하은은 그렇게 말하면서 도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어떤 기대가 담겨 있었다. 도현이 무언가를 알아채주길 바라는, 혹은 그 반대의 무언가를 원하는. 그 눈빛이 너무 또렷해서, 도현은 잠깐 대답할 말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창문 잠금장치는 확인해본 거야?"
"응. 다 잠겨 있었어. 열쇠는 나랑 보건 선생님만 갖고 있고."
"그럼 그냥 네가 잊어버리고 다른 데 뒀거나…"
"아니."
하은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내가 분명히 넣는 걸 기억해. 그리고 스티커 봉인도 내가 직접 붙였어. 그게 오늘 아침까지 그대로였고."
도현은 순간적으로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 방을 지킨 사람이 하은 혼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 하은이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밀실 안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 지금 그 밀실의 미스터리를 도현에게 설명하고 있는 셈이었다.
도현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만 말했다.
"그럼 CCTV에 뭐 찍힌 거 없어?"
"출입문 쪽엔 아무도 안 들어온 걸로 나와. 그러니까 더 이상한 거지."
하은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마치 문제를 냈는데 상대가 아직 못 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쁜 사람처럼.
"보통 이런 얘기 하면 다들 무서워하던데."
"뭐가 무서워?"
"밀실 안에 있던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얘기를 하고 있잖아."
도현은 그제서야 하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된 감각 하나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알던 그 아이의 편지, 그 아이의 눈빛과 비슷한 종류의 무언가. 사람이 자신을 의심의 중심에 세워놓고, 그 의심을 즐기듯 지켜보는 방식.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거 그냥 없어진 거면… 학교 측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
도현은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하은은 그 말에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이도현 학생은 안 궁금해?"
"뭐가?"
"본인 채뇨가 어디로 갔는지."
"그게 왜 궁금해야 하는데."
"보통 자기 몸에서 나온 게 어디로 갔는지 모르면 좀 이상하지 않아?"
"그게 어디 팔려나가는 것도 아니고."
"팔려나갈 수도 있지."
하은이 태연하게 말했다.
"약물 검사용으로 쓰거나, 아니면… 몰라, 누가 그걸로 뭘 하려고 했는지."
"넌 그게 재밌어?"
"재밌다기보다는."
하은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주 작게,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신기하다."
"뭐가."
"보통은 다 궁금해하는데, 도현 학생은 하나도 안 궁금해하네."
하은의 표정이 그 순간 처음으로 바뀌었다. 뭔가를 발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실험 대상이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을 때 짓는 표정, 이라고 하면 가장 정확할 듯했다. 도현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애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넌 뭐가 그렇게 신기해?"
"그냥.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한테 일어난 이상한 일에 대해 답을 원해. 근데 도현 학생은 답보다 그냥 상황 자체를 흘려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게 정상 아니야?"
"정상이라기보다는, 특이한 거지."
하은이 그렇게 말하며 도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보건 선생님이 돌아오면서 대화는 끝났다. 선생님은 별일 아닐 거라며, 위탁기관 쪽 실수일 수도 있다고 대충 넘겼다. 학년부장도 더 캐물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도현도 그 정도로 넘기고 싶었다. 사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교실로 돌아오자 승호가 다시 물었다.
"뭐래?"
"몰라. 그냥 없어졌다고만 하더라."
"그럼 끝난 거야?"
"그런 것 같은데."
하지만 도현의 표정이 어딘가 찜찜해 보였는지, 사철이가 눈치를 챈 듯 물었다.
"뭔데, 표정이 왜 그래."
"그냥 좀 이상해서."
"뭐가 이상한데?"
도현은 그 질문에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정하은의 눈빛과 말투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걸 승호나 사철이에게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화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그날 오후, 하은이 도현의 사물함에 쪽지를 남겼다.
쪽지에는 사진 한 장이 인쇄되어 붙어 있었다. 어제 오후 4시 12분, 보건실 안쪽 각도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CCTV 사각지대라던 그 자리에서, 하은이 직접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어둔 것이었다. 사진 속에는 17번 서랍이 온전히 잠겨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명확하게 기록된 사진.
그 밑에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시간까지는 분명히 있었어. 그러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야.〉
도현은 그 쪽지를 한동안 들고 서 있었다. 이해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결론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은 자신이었다.
왜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증거를 도현에게 넘겨줬는지, 도현은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알아버렸다는 사실은 별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현은 그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다. 시간 표시는 선명했다. 화질도 나쁘지 않았다. 조작된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은은 정말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뒤로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그 무언가를 하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그걸 도현에게 알려주는 걸까.
단순히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거라면, 이렇게 애매한 사진 한 장으로는 부족했다. 오히려 의심을 더 키우는 방식이었다. 마치 일부러 도현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 의심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처럼.
도현은 그 생각에 다다르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다음 날, 하은은 두 번째 자료를 준비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