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완벽 미소녀는 내 여동생

4화

동거를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났을 무렵, 나는 서하은이 나를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처음엔 오빠, 라는 호칭이 확실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빠, 밥 다 됐어?"였고, 학교 가는 길에는 "오빠, 늦었어"였다. 그 호칭은 마치 우리 사이의 약속된 거리처럼 항상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그 호칭을 생략하는 일이 많아졌다. "저녁 뭐 먹어"로 시작해서, "오늘 뭐 해?"로 끝나는 식이었다. 처음엔 그냥 말이 짧아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나는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 두 글자를 삼키고 있었다. 별거 아닌 변화였지만, 나는 그 미묘한 차이가 신경 쓰였다. 마치 물이 조용히 스며들어 옷깃을 적시는 것처럼, 알아챘을 땐 이미 젖어 있는 그런 종류의 변화였다. 여동생이면 저러지 않을 텐데.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나는 이미, 이 애가 여동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우기고 있었던 거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날 오후, 학교 급식실에서였다. 형광등 아래 식판이 부딪히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시끄러운 공간이었다. 나는 원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밥을 먹는 편이었는데, 서하은이 갑자기 트레이를 들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트레이가 식탁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반 애들 몇이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친해?" "이도현이랑 서하은이? 언제부터?" "저번에 같이 오는 거 봤어. 아파트 방향도 같던데." 수군거림은 곧 잦아들었지만,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했다. 서하은은 그 시선들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였다. 당근이 들어간 볶음밥이 나온 날이었는데, 그녀는 당근만 골라내는 자기 손을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픽 웃었다. "뭐야, 왜 봐." "그냥." "설마 이것도 나중에 다 기억해두려고?"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정확했다. 나는 정말로 이 애의 습관을 하나씩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왼손으로 턱을 괴는 버릇, 긴장하면 발끝을 살짝 떠는 것, 거짓 웃음과 진짜 웃음의 눈꼬리 각도 차이까지. 심지어 국물을 먹기 전에 항상 한 번 숨을 내뿜는 것도, 젓가락을 쥘 때 새끼손가락이 살짝 들리는 것도. 내가 왜 이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지. "너 좀 이상해." 그녀가 문득 말했다. "보통 애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는데." 심장이 순간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뭐가." "사람을 그렇게 자세히 보는 거. 우리 반에서 나한테 그렇게 관심 없어 보이던 애가, 사실은 제일 많이 보고 있었던 거잖아."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가장 안전한 핑계를 골랐다. "동거인이니까 신경 쓰는 거지. 밥 안 맞으면 서로 불편하잖아." "흐음." 그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턱을 괸 채로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나를 잠깐 훑고 지나가는 동안,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들켰나. 아니, 아직은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당근 안 먹는 것도 밥이 안 맞아서 신경 쓰는 거야?" "그건 그냥 편식이잖아." "편식도 신경 써주는 거네." 말싸움 같지도 않은 대화였는데, 나는 거기서 묘하게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서하은은 그런 종류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재능이 있었다. 상대가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정작 본인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식판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관계에 이름을 붙이면 뭐가 될까. 동거인. 남매.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어떤 애매한 자리. 그날 밤, 그녀가 씻고 나온 뒤 나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척하며 딴생각에 잠겨 있었다. 화면 속에서 누군가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서하은이 머리를 말리며 다가와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젖은 머리에서 나는 샴푸 향이 좁은 방 안에 은은하게 퍼졌고, 나는 애써 시선을 화면에 고정했다. 창밖으로 늦가을 바람이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는 따뜻했지만, 그녀가 옆에 앉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등 쪽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있잖아, 오빠는 누나 있다고 했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야?" "괴롭히는 스타일. 어릴 때부터 나 부려먹는 게 취미였어." "부려먹어?" "용돈 뺏기는 건 기본이고, 심부름은 다 내 담당이었지. 지금도 가끔 전화해서 반찬 좀 해서 보내라고 한다니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 웃었다. 밉지만 밉지 않은 그런 기억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나 밑에서 잔소리를 듣고 자란 덕에, 사람 챙기는 일이 몸에 익어 있었다. 청소하는 법, 반찬 만드는 법, 남한테 폐 안 끼치는 법. 어쩌면 내가 이렇게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성실히 하는 것도, 다 누나에게 배운 습관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그렇게 웃어?" "뭐가." "누나 얘기하는데 표정이 부드러워졌어." 서하은이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그 시선에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이 애는 정말로, 사람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는 감각이 뛰어나구나. 어쩌면 나만큼이나. "미워도 가족이니까." 나는 짧게 답했다. "……좋겠다." 그녀의 목소리가 순간 낮아졌다.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멈추고 난 방 안은 유난히 조용했고, 그 정적 속에서 그 한마디만 유독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그 침묵을 채우려 애써 다른 말을 꺼내려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도, 친구도 진짜로 곁에 있어준 적이 없다는 애가, 지금 내 옆에서 가족 얘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올린 채 말했다. "귀찮게 하는 사람이라도. 심부름 시키는 사람이라도." "내가 그런 사람 해줄까." 말이 먼저 나와버렸다.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서하은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 눈빛에 담긴 게 뭔지 나는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다. 놀람인지, 물음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복잡한 무엇인지. "오빠가?" "어. 심부름도 시키고, 반찬도 해서 보내라고 하고." "그거 되게 이상한 소원인데." 그녀가 픽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급식실에서 봤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눈꼬리가 살짝 아래로 처지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여동생이라는 말로 이 감정을 계속 가둬둘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가둬둘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새고 있었다. 어디선가부터,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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