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금요일 저녁, 계약과 워크숍 뒤풀이가 있었다.
회의실에서 시작된 자리가 근처 곱창집까지 이어졌다.
원래는 빠질 생각이었다.
팀장이 팔을 붙잡고 끌고 가지 않았으면 진짜 빠졌을 거다.
"강도윤 씨, 신입인데 이런 자리 빠지면 섭섭하지."
섭섭한 건 팀장이었지 나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끌려간 곱창집.
서지안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냥 자리가 남아서 앉은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뜻은 없다고, 스스로 몇 번이나 되새겼다.
"강도윤 씨, 이거 진짜 맛있어요."
곱창을 집어 내 앞접시에 놓으며 서지안이 웃었다.
"저 안 먹어도 되는데."
"먹어봐요. 나만 먹으면 좀 그렇잖아요."
사실 서지안은 이미 세 접시째였다.
쿨하고 딱딱하다는 사내 평판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입가에 양념이 묻은 줄도 모르고 웃는 얼굴.
저게 서지안 맞나, 나는 잠깐 헷갈렸다.
옆에서 대리님이 소주를 따르며 끼어들었다.
"둘이 원래 친했어요?"
"아니요."
서지안과 내가 동시에 대답했다.
동시에 대답한 게 더 웃겼는지 대리님이 박장대소했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케미가 좋아—"
"케미는 무슨 케미예요."
서지안이 딱 잘라 말했다.
그 말투는 또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팀장이 소맥을 돌렸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자, 계약과 원샷!"
누군가 외쳤다.
서지안이 제일 먼저 잔을 비웠다.
빈 잔을 탁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나는 반쯤 남은 잔을 들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 다 마셨다.
목구멍이 화끈했다.
"오, 강도윤 씨 술 잘 마시네요."
"잘 마시는 편은 아닌데."
"그럼 오늘 잘 마시게 되겠네요."
서지안이 씩 웃으며 내 잔에 또 소맥을 채웠다.
이 사람, 술버릇이 이런 쪽이었나.
알던 것과 너무 달라서 자꾸 눈이 갔다.
2차는 노래방이었다.
서지안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저 노래 잘하는 거 알아요?"
"아니요."
"그럼 지금 알게 되겠네요."
음정은 반쯤 나갔지만 신나긴 했다.
다들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서지안이 탬버린을 내 손에 쥐여주며 소리쳤다.
"강도윤 씨도 쳐요, 가만있지 말고!"
"저 박자감 없어요."
"박자감 없는 사람도 두들기면 흥은 나요, 자!"
억지로 흔들다 보니 정말로 흥이 났다.
사무실에서 보던 서지안과 지금 노래방에서 마이크 붙잡고 소리치는 서지안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자꾸 낯설었다.
노래방을 나설 때쯤, 서지안은 이미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다.
"어어—"
짧은 비명과 함께 몸이 기울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쿵.
서지안의 어깨가 내 가슴에 부딪혔다.
숨이 잠깐 멈췄다.
서지안의 머리카락에서 단 냄새가 났다.
그 상태로 몇 초가 흘렀다.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야, 강도윤 씨! 좋을 때다!"
분위기를 깬 건 대리님이었다.
서지안이 화들짝 몸을 뗐다.
"미, 미안해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게 나왔다.
서지안이 나를 올려다봤다.
눈이 잠깐 마주쳤다.
손끝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주위 사람들 웃음소리에 그 저릿함이 금세 파묻혔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면서도, 아쉬운 것 같기도 했다.
이게 뭔 감정인지 나도 모르겠어서 그냥 삼켰다.
그날 밤은 그게 끝이었다.
택시를 태워 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내내 어깨에 닿았던 무게가 지워지지 않았다.
뭐야, 이 느낌은.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그 장면만 재생됐다.
쿵, 하고 부딪힌 순간.
단 냄새.
빨개진 얼굴.
잠 못 자겠다, 이거.
문제는 그 다음 주였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사람들 표정이 굳어 있었다.
팀장이 다들 회의실로 모이라고 했다.
회의실로 들어가는 발걸음마다 다들 서로 눈치를 살폈다.
뭔가 큰일이 터질 분위기.
나는 그냥 프로젝트 하나 넘어가나 보다 했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계약과 인원 일부가 타 부서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발표 내용은 간단했다.
영업지원팀, 기획팀으로 세 명이 빠진다고 했다.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옆자리 대리님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 아니지, 나 아니지."
다행히 그 대리님은 살았다.
남는 건 나와 서지안, 둘뿐이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다들 나와 서지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해봐."
팀장이 웃으며 등을 두드리고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남은 건 나와 서지안, 그리고 정적.
누군가 뒤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남는 거, 금요일에 그거 때문 아니야?"
"쉿."
누가 눈치를 줬는지, 소리는 곧 사라졌다.
서지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그날 일은..."
"신경 안 써도 돼요."
내가 말을 잘랐다.
거짓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어깨의 무게, 머리카락 냄새, 빨개진 얼굴, 다 신경 쓰고 있었다.
근데 그걸 어떻게 말해.
서지안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 말투가 유난히 딱딱했다.
회사에서 유명한 그 쿨함, 이제야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금요일 밤의 서지안은 어디 가고 다시 이 얼굴로 돌아왔나.
문제는, 오늘부터 이 사무실에 우리 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책상 위에 쌓인 서류더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시작이구나.
서지안도 같은 서류더미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점점 창백해지는 게 보였다.
저 서류더미 양이, 둘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한숨 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둘이 동시에 낸 한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지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발신자 이름을 슬쩍 봤다.
낯선 이름이었다.
서지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뜨는 서지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저 표정, 뭐지.
뭔데 저렇게 심각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