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생했더니 독술 천재였다

1화

낙성(洛城)의 하늘은 언제나 청목세가(靑木世家)의 기와 위로 낮게 걸려 있었다. 삼공자의 처소라 불리는 후원 별채는 세가의 여느 전각들과는 달리 볕이 잘 들지 않는 북편에 자리했는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뜻이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본채의 화려한 처마와 이 별채의 낡은 기와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으니, 그 경계선이야말로 청목세가 안에서 청도현이 서 있는 자리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청도현은 그 처소의 낡은 침상 위에서,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방바닥에 희미한 무늬를 그려내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열여섯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야윈 손목,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가슴 속에서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듯한 통증. 그것이 그가 물려받은 육신의 전부였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밤새 그를 옭아매는 사슬과도 같았다. 가슴을 지나 등줄기까지 뻗어나가는 그 통증에 익숙해진 것도 벌써 몇 해째였건만, 익숙함이 통증을 덜어주지는 않았다. '선천허약지체(先天虛弱之體)라 했던가.' 청도현은 속으로 되뇌며 손끝을 들어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태어날 때부터 심맥이 허하여 내공을 쌓기는커녕 뜰을 걷는 것조차 벅찬 몸, 그것이 청목세가 삼공자 청도현의 몸이었다. 손바닥을 펼쳐 창으로 비껴드는 볕을 받아보니, 살갗을 투과하는 붉은빛 사이로 핏줄이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치 그 가느다란 혈관 하나하나가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본래의 청도현은 그 병약함과 아비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외출길에서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빈 몸에 들어선 것은, 다른 세상에서 묵혼문(墨魂門)의 유일한 소년 종사(宗師)로 이름을 떨쳤던 백린의 넋이었다. 어째서 이런 몸에 떨어졌는지, 어떤 인연으로 시공을 건너왔는지는 백린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이 병든 몸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이 뒤섞여 흐르는 것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을 뿐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의 그 혼란은 아직도 생생했다. 낯선 천장, 낯선 냄새, 그리고 낯선 육신 안에서 뛰는 심장의 박동이 자신의 것이 아니면서도 자신의 것이었다는 그 이질감.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감각으로 며칠을 지새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이물감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생의 기억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독술과 암기의 절학, 옥천경(玉天經)이라는 이름의 심득만이 흐릿한 잔영처럼 뇌리 깊은 곳에 잠겨 있을 뿐, 정작 그것을 끌어올릴 방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끔 잠결에 손가락이 저절로 어떤 수결(手訣)을 맺으려 하다가, 정신이 들면 그것이 무슨 초식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치 안개 속에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 하나, 손끝에 닿는 것은 안개뿐인 것과 같은 답답함이었다. 그저 병든 몸뚱이 하나로, 냉대받는 삼공자의 이름을 쓰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 그가 처한 만변(萬變)의 현실이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벼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익숙한 걸음이었다.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문이 열리며 소련이 들어섰다.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으나, 그 눈매에는 나이답지 않은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근심의 그늘이 얹혀 있는 것을, 청도현은 놓치지 않았다. 소련의 손에는 김이 오르는 탕약 그릇이 들려 있었는데, 그 그릇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붉게 얼어 있었다. 아침 일찍 부엌에서부터 이곳까지 그 뜨거운 그릇을 품에 안고 달려온 흔적이었다. "밤새 열이 오르시지는 않았습니까." 소련이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그 손길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능숙했다. 몇 해를 병자를 돌보며 손에 익힌 동작이었다. 청도현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괜찮다. 오늘은 어제보다 낫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병든 몸의 주인답지 않은 침착함이 그 목소리 밑바닥에 깔려 있었으나, 소련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탕약을 가져왔습니다. 식기 전에 드셔야 합니다." 소련이 그릇을 내밀었다. 씁쓸한 약초 냄새가 방 안에 퍼졌다. 청도현은 그릇을 받아 천천히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쓴맛이 오늘도 변함없이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소련은 청도현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몸종이었다. 정실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를 대신한 새 부인이 서자들을 앞세워 세력을 넓혀가는 와중에도, 소련만은 변함없이 청도현의 곁을 지켰다. 어린 시절부터 병든 주인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자란 그녀에게, 청도현은 단순한 주인이 아니라 지켜야 할 유일한 존재였다. 다른 시비들은 하나둘 더 나은 처소로 옮겨가려 애를 썼으나, 소련은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청도현의 마음 한구석을 늘 무겁게 짓눌렀다. "가주님께서 오늘 아침 자리에서 또 공자님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련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청도현의 눈빛이 순간 가늘어졌다. "뭐라 하시더냐." "후계의 자리에 병자를 앉힐 수는 없다고... 그리 말씀하셨다 들었습니다." 소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릇을 정리하는 그녀의 손끝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청도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청현덕. 청목세가의 가주이자 청도현의 생부. 한때는 병약한 셋째 아들을 유독 아꼈다는 이야기를 소련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으나, 정실부인이 죽고 새 부인이 들어선 이후로 그 애정은 흔적도 없이 스러졌다. 소련의 말에 따르면, 청도현이 아직 걷지도 못하던 어린 시절, 가주가 직접 이 방을 찾아 밤새 아들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먼 옛날의 전설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병든 자식은 가문의 짐이 될 뿐이라는 것이, 지금 가주의 확고한 논리였다. 후계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소문이 세가 안팎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으니, 그것은 더 이상 소문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에 가까웠다. '낙인(落印)이라 함은 이런 것이겠지.' 청도현은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전생의 백린은 열여섯의 나이로 선천(先天)의 경지에 이른 묵혼문의 종사였건만, 지금의 그는 후천의 첫걸음조차 딛지 못한 병자에 불과했다. 그 격차가 가져오는 낙차는, 어떤 굴욕보다도 깊게 그의 속을 긁어냈다. 한때는 산 하나를 손짓 하나로 흔들 수 있었던 그 힘이, 지금은 뜰 하나를 걷는 데도 남의 부축을 필요로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 아이러니가 때로는 웃음조차 나오게 만들었다. "공자님." 소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뜰에 나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볕이 좋습니다." 청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운 일이었지만, 방 안에만 갇혀 있는 것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좁은 방 안에서 벽을 마주하고 있으면, 병든 몸뚱이가 자신을 산 채로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적어도 뜰에서는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살갗에 닿았다. 그것만으로도 숨이 조금은 트이는 듯했다. 소련의 부축을 받으며 뜰로 나선 그는, 청목세가의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걸음마다 다리가 후들거려 소련의 팔에 몸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었으나, 청도현은 그 사실이 부끄럽기보다는 그저 익숙한 일상처럼 받아들였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시비와 하인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동정과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몇몇은 아예 시선을 피해버렸고, 몇몇은 대놓고 수군거리며 지나갔다. 그 수군거림 속에서 '병자', '짐', '오래 못 갈 것'이라는 단어들이 언뜻언뜻 들려왔으나, 청도현은 그 말들을 애써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뜰의 한가운데서, 그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과 마주쳤다. "이거 누구신가, 삼공자님 아니십니까." 조롱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랑이었다. 둘째 삼촌의 아들이자 세가의 칠공자, 청도현보다 한 살 어렸으나 이미 후천 삼중(三重)의 경지에 오른 재능 있는 무인이었다. 그의 뒤로는 늘상 그렇듯 하인 몇이 그늘처럼 따라붙어 있었는데, 그 하인들의 얼굴에도 주인을 닮은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오늘도 그 병든 몸으로 뜰을 나오시다니, 어지간히 심심하셨나 봅니다." 청랑이 비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무인 특유의 가벼움과 여유가 있었다. 후천 삼중이라는 경지가 그 몸짓 하나하나에서 배어 나오는 듯했다. 청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저 저열한 조롱에 말을 섞을 필요는 없었다. "침묵으로 대답하시는 겁니까? 하기야, 그 몸으로 큰소리를 내면 숨이 넘어가실 테니." 청랑이 다시 낮게 웃으며 하인들을 돌아보았다. 하인들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그 조롱 속에는 어떤 악의보다도 더 지독한 것, 상대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무심함이 담겨 있었다. 청랑의 시선이 청도현을 지나 소련에게로 옮겨갔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순수한 조롱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탐욕이었다. 위아래로 훑는 그 시선이 소련의 몸을 물건처럼 재는 것 같아, 청도현은 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소련아, 너도 딱하구나. 이런 병든 주인을 모시느라 청춘을 다 허비하는 것이 아니냐. 내 처소로 오면 그런 고생은 시키지 않을 텐데." 청랑이 소련을 향해 손을 뻗으려 하자, 청도현이 즉시 소련의 앞을 막아섰다. 그 동작에 순간 가슴 속에서 통증이 격하게 치밀어 올랐으나, 청도현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손을 거두거라."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호했다. 순간 청랑의 눈빛이 서늘하게 굳었다. "허, 병자 주제에 눈빛은 살아있군요." 청랑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서린 것은 이제 조롱을 넘어선 노기였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삼공자님. 이 세가에서 병든 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도, 언젠가는 놓아야 할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랑의 시선이 소련에게 한 번 더 머물렀다가, 이내 청도현에게로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의 시선 교환 속에서, 청도현은 청랑의 눈빛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를 읽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우월감이나 조롱이 아니었다. 계획하는 자의 눈빛, 무언가를 이미 준비해두고 그 실행의 순간을 기다리는 자의 여유였다. 말을 마친 청랑은 하인들을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이 정원의 나무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청도현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련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자님, 저는 괜찮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소련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으나, 청도현은 그 웃음 뒤에 숨은 두려움을 놓치지 않았다. 소련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병든 손끝이었으나, 그 손안에 담긴 마음만은 결코 병들지 않았음을 소련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였다. "걱정할 것 없다. 저런 자의 말은 흘려들으면 그뿐이다." 청도현은 그렇게 말했으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청랑이 후천 삼중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열다섯의 나이에 그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세가 내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 뒤에는 둘째 삼촌의 세력이 있었다. 만약 청랑이 정말로 무언가를 벼르고 있다면, 그것을 막을 방도가 지금의 청도현에게는 없었다. 뜰을 다시 가로질러 별채로 돌아오는 길, 청도현의 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몸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 때문이었다. 소련이 옆에서 부축하며 걷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정원의 새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날 밤, 청도현은 잠들지 못한 채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에 마주친 청랑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조롱의 눈빛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벼르는, 결심이 선 자의 눈빛이었다.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어도, 눈을 감으면 그 서늘한 눈빛이 어둠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저자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청도현은 속으로 되물었다. 청랑의 성정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헛소리를 하는 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계산이 앞서고, 실익이 없는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 자가 오늘처럼 대놓고 위협을 가했다는 것은, 이미 그 나름의 승산을 계산해두었다는 뜻이었다. 가주의 마음이 이미 후계 문제로 흔들리고 있는 지금, 청랑과 그 뒤의 세력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청도현 개인을 짓밟는 것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이 후원 별채 전체를, 혹은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는 계획일지도 몰랐다. 창밖으로 스치는 밤바람이 창호지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그 소리마저 오늘 밤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때였다. 먼 곳에서, 낮고 굶주린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의 울음소리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의 개가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가, 어둠을 타고 별채까지 스며들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멀고 희미했으나, 점차 가까워지며 그 수가 늘어나는 듯했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셋, 넷... 마치 어둠 속에서 서로를 부르며 모여드는 듯한 그 소리에는, 단순한 짐승의 본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질감이 있었다. 청도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것이 무엇을 예고하는 소리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 속에는 분명 살기(殺氣)가 섞여 있었다. 마치 사냥을 앞둔 짐승들이 서로의 흥분을 나누며 울어대는 듯한, 그런 종류의 소리였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청도현은 창가로 다가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에 잠긴 정원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으나, 그 개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이 별채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