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저주받은 숨겨진 재능

3화

흰 옷자락이 바람을 갈랐다. 검은 그림자와 흰 그림자가 허공에서 얽혔다. 캉. 짧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검은 자객이 그대로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돌가루가 튀었다. 벽에 부딪힌 몸이 힘없이 미끄러져 내려앉았다. 도현은 그제야 자신을 구한 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허름한 백의를 걸친 중년의 사내였다. 수염은 짧고 눈매는 온화했다. 손에는 침통 하나를 쥐고 있을 뿐, 무기라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조금 전 그 일격은, 무기 하나 없이 사람을 벽까지 날려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걸음걸이는, 도현이 지금껏 봐온 어떤 무사보다도 정제되어 있었다. 발끝이 땅에 닿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백현도라 하네." 사내가 짧게 말했다. "조가는 상처가 깊으니 지금은 놓아두게. 자네가 살아야 저 사람도 나중에 살릴 수 있어." 도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가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골목 바닥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붉은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주변을 둘러싼 흑의자객들의 수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다. 스물, 서른... 골목 저편에서 또 다른 무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발소리가 겹겹이 쌓여 땅을 울렸다. "어떤 놈이 시켰는지는 몰라도, 사람 목숨 하나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이는 걸 보면..." 백현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보통 놈은 아니겠군." 그는 도현의 손목을 잡았다. 손끝에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들었다. "참게. 아플 걸세." 도현이 대답할 틈도 없었다. 순간 도현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듯 반응했다. 숨이 거칠어졌다. 눈앞이 하얗게 흔들렸다. 혈관을 타고 도는 뜨거움이 뼈마디마디를 훑고 지나갔다. 이가 저절로 악물렸다. 동시에, 몸 안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처음으로 눈을 떴다. 자객 하나가 검을 내지르는 순간, 도현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의식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발이 반보 물러나고, 어깨가 틀리고, 허리가 돌았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 동작이었다. 스슥. 검날이 옷깃 한 자락만 스치고 지나갔다. 백현도의 눈이 순간 크게 벌어졌다. 그는 침통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도현을 다시 살폈다. 방금 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이게 무슨." 그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자객단의 진짜 우두머리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을 두른 자였다. 발을 내딜 때마다 골목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흑의자객들조차 슬며시 길을 터주며 뒤로 물러섰다. 백현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제야 얼굴을 보이는군."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