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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서연이 다가오는 걸 본 순간, 나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웨딩홀 특유의 하얀 조명 아래, 하객들의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여 흐르는 그 공간에서 서연은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저 표정, 저 걸음걸이는 분명 뭔가를 캐내려는 자의 것이었고, 결혼식 당일까지 남의 연애사를 파고드는 그 성격이 대체 언제쯤 고쳐질지 궁금해지려는 찰나, 나는 얼른 화제를 돌릴 말을 머릿속으로 몇 개 준비해두었다. 하지만 그 준비가 무색하게도 서연은 이미 우리 테이블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아 있었다. 의자 다리가 대리석 바닥에 끌리며 나는 짧은 마찰음조차 나에게는 경고음처럼 들렸다. "어때, 둘이 얘기 좀 됐어?" 서연이 눈을 빛내며 나와 채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확신에 가까운 기대가 뒤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조금씩 저려오는 걸 느꼈다. 채원이 먼저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나쁘지 않던데." 그 짧은 대답을 뱉는 채원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담담했지만, 나는 그 담담함 아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서연이 손뼉까지 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 들뜬 얼굴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자꾸 불편했다. 저렇게 대놓고 좋아하면 채원이 부담스러울 텐데, 하는 걱정이 스치는 사이 서연이 몸을 바짝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도대체 왜 지금 이 타이밍에. "근데 둘이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뭐야, 벌써 뭔 일 있었어?" "무슨 일은." 나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지만, 서연의 눈빛은 이미 뭔가를 확신한 듯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식 당일 신부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 팔짱을 끼고 우리 둘 사이를 번갈아 살피더니, 마침내 채원을 향해 짓궂게 웃어 보였다. 멀리서 신랑이 손을 흔들며 서연을 부르는 게 보였다. 사진 촬영 시간이라며 재촉하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홀 전체에 퍼졌지만, 서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신부 대기실로 가야 할 사람이 여기 앉아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걱정을 입 밖에 낼 틈조차 주지 않고 서연은 이미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채원아, 너 표정이 왜 그래. 도윤이 뭐 실수했어?" 채원이 잠시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 짧은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을 나는 정확히 읽을 수 없었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눈동자가 흔들렸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제자리를 찾는 그 순간의 변화를, 나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채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술잔을 들며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서연은 그 정도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둘이 진짜 뭐 없었어? 나 눈치 되게 빠른 거 알지." 서연의 집요함에 나는 결국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야, 방금 만난 사이인데 뭐가 있겠냐." "방금 만났는데 벌써 서로 이름 부르는 사이 됐잖아." 서연이 눈을 흘기며 지적했고,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채원 씨가 아니라 그냥 채원이라 부르고 있었고,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분명 채원 씨, 라고 또박또박 존칭을 붙였던 것 같은데, 대화가 두어 마디 오가는 사이 그 씨 자가 슬그머니 떨어져 나가 버린 걸 나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 당혹스러웠다. 채원이 그런 나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엽네, 얼굴 빨개지는 거." 그 한마디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놀리는 말인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귓불까지 뜨거워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잔을 들이켰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잔 속 얼음이 부딪히며 내는 작은 소리마저 그 순간에는 유독 크게 들렸다. 정신 차려. 방금 만난 사이잖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채원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연은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신랑이 저 멀리서 손짓하며 부르는데도 서연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 태세로 목소리를 낮췄다. 신랑이 결국 포기했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하객들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게 시야 끝에 걸렸다. "근데 채원아, 너 아까 도윤이한테 뭐라고 했는데 표정이 그렇게 변했어?" 채원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는데,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했지만, 그 짧은 침묵 속에는 분명 뭔가를 감추려는 조바심이 배어 있었다. 테이블 위, 그녀의 손가락이 잔의 표면을 무의식적으로 문지르는 걸 보며 나는 괜히 목이 탔다. "별거 아냐. 그냥 시답잖은 얘기." "시답잖은 얘기치고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졌었는데." 서연이 물러서지 않고 재차 캐물었다. 그 눈빛에는 이미 뭔가를 확신하는 듯한 예리함이 서려 있었고, 나는 그제야 서연이 채원의 정체까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안도와 동시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잠시, 그럼 채원은 대체 무엇을 그렇게 숨기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곧바로 그 안도를 밀어냈다. 채원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비웠다. "서연아."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서연을 불렀다. "오늘 여기서 나 알아본 사람 있어?" 그 질문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알아본 사람이 있냐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지. 그 질문에 서연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글쎄, 몇 명은 알아본 것 같던데."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채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살짝 가시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채원의 손이 잔을 쥔 채로 살짝 굳어버린 걸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그게 왜?" 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몇 명 알아본 게 뭐 큰일이라고." 채원은 대답 대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는데, 나는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며 자꾸만 목이 탔다. 홀 안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대체 이 사람,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채원의 시선이 잠시 홀 저편,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 스친 눈빛이 어쩐지 불안해 보여서, 나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조차 서지 않은 채 그저 마른침만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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