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빚 1억, 하렘 앱이 떴다

1화

반지하 방의 불빛이 깜빡이다 완전히 꺼졌다. 삼 년째 갈아 끼우지 않은 형광등이 결국 명을 다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 화면만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강도윤은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방금 다운로드한 앱이었다. 정확히는, 다운로드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앱이었다. 이름도 없고 아이콘도 회색 사각형뿐인, 뭔가 만들다 만 것 같은 앱. '이거 왜 깔려 있지.' 기억을 더듬어 봐도 소용없었다. 도윤은 별생각 없이 손끝으로 그 회색 아이콘을 눌렀다. 순간, 손끝에 닿은 화면이 물처럼 일렁였다. 아이콘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부푸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순간 방 안 전체가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너무 밝아서 눈을 감을 새도 없었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뭐야, 이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 *** 정확히는 사람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존재였다. 머리카락은 은빛에 가까운 백금색이었고,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그 머리칼이 방 안의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았다. 등 뒤로는 한쪽엔 새하얀 날개, 다른 한쪽엔 검은 박쥐 날개가 접혀 있었는데, 그 대비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얼굴은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얼굴은 화면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라고, 도윤은 삼 초쯤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 직후, 뒤로 넘어가듯 벽에 등을 박았다. "으악." 짧고 격조 없는 반응이었지만,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반응이기도 했다. 반지하 방, 꺼진 불,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날개 달린 미녀. 이 조합 앞에서 격조를 챙길 정신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여자는 그런 도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표정에 놀람이나 적의는 없었다. 그저 관찰하는 듯한, 다소 지친 눈빛이었다. 마치 이런 반응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봐 왔다는 듯한, 익숙한 무심함이었다. "네가 나를 불렀나." 낮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처럼 들렸다. "저, 저는 그냥 앱을 눌렀을 뿐인데요." 도윤이 벽에 기댄 채 더듬거렸다. 이 말이 얼마나 변명처럼 들릴지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란 말인가. 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잠깐의 정적이 도윤에게는 형벌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을 들어 보였다. 그곳엔 금빛으로 빛나는 문양이 사슬처럼 감겨 있었다. 살에 파고든 것도 아니었지만, 벗겨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문양은 손목을 한 바퀴 감고 다시 팔뚝 위쪽으로 이어졌는데, 움직일 때마다 은은하게 명멸했다. "이딴 색이 사슬이랍시고 손목에 감겨 있다는 것부터가 웃기지 않나." 여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자조인지 분노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어조였다. "적어도 은색이나 검은색이었다면 그림이라도 됐을 텐데." 도윤은 그게 지금 할 말인가 싶었지만,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 라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존재는, 자신을 반마반천사라고 소개했다. "반마반천사요?" 도윤이 눈을 깜박였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다시 주저앉았다. "그게... 뭔데요." "악마와 천사가 섞였다는 뜻이다. 그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라연의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 마치 이 질문을 수백 번쯤 받아 본 사람의 어조였다. 도윤은 더 캐묻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궁금한 게 있었다. "그럼 그 손목에 있는 건요? 왜 묶여 있는 거예요?" 라연은 대답 대신 화면을 가리켰다. 도윤의 스마트폰 위로 떠오른 홀로그램 같은 창이었다. 분명 방 안에 조명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그 창만은 반투명한 파란빛을 내며 공중에 떠 있었다. 상단엔 '계약자: 강도윤', 그 아래엔 친밀도 게이지 바가 텅 빈 채로 표시되어 있었다. 도윤은 그 게이지 바를 한참 들여다봤다. 게임에서나 보던 물건이 현실에, 자기 방 한가운데 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 앱이, 나를 너에게 묶었다." 라연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톡 건드렸다. 화면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네가 나를 부른 이상 나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요?" "글자 그대로다. 네가 이 앱을 지우지 않는 한, 나는 네 곁을 떠날 수 없다." 도윤은 그 말을 두 번쯤 되풀이해 들어야 겨우 이해했다. 강대한 존재가 자신에게 구속되었다는 것.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앱을 눌렀다는 이유로. 세상에 이런 어이없는 계약이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계약의 상대가 자기 자신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이거 완전 사기 아니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방 안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라연의 등 뒤 검은 날개가 살짝 펄럭였고, 그 파장만으로 낡은 책상 위 책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도윤이 아끼던 만화책 몇 권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큭." 라연이 짧게 신음하며 손목을 움켜쥐었다. 문양이 더 밝게 빛나더니, 그녀의 무릎이 살짝 꺾였다.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던 자세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보면서, 도윤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저기요, 괜찮아요?" 라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를 악문 채, 자신의 손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목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문양의 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마치 그녀의 몸에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깜빡였다. 도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까지 자신을 내려다보던, 세상 다 지친 눈빛의 존재가 지금은 벽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뭔가 대단히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사슬이 조금씩, 그녀의 힘을 갈아 마시고 있다는 것을. 도윤은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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