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도윤이 절뚝이며 별채로 돌아오는 길, 밤바람이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뺨의 상처가 따끔하게 당겨 왔다. 어젯밤 어두운 나무 그늘에서 뺨을 맞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신이 온전히 붙어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는데, 몸은 자꾸만 그 순간을 되짚으며 저절로 움찔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이 시큰거려 절뚝임이 더 심해졌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정원의 나무들이 은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사이로 흐르는 밤공기는 차갑고 맑았지만, 도윤의 마음은 그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저 별채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문을 닫고 숨을 곳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는데, 정원 한가운데서 태오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 그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는 여느 밤처럼 정원을 산책하던 참이었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도윤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다는 걸 곧바로 알아챈 듯 미간을 좁혔다. 태오의 시선이 도윤의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위로 훑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고, 그 눈길이 뺨에 닿는 순간 도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돌렸다.
달빛 아래 드러난 도윤의 뺨은 붉게 부어 있었고, 입가에는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태오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침묵이 어떤 말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도윤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이미 익숙한 대본을 따라가듯 움직였다. 이런 순간을 대비해 몇 번이고 연습해 두었던 것처럼, 입술이 저절로 벌어졌다.
"넘어졌어요."
짧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스스로도 놀랄 만큼 흔들림이 없었다. 목소리도 갈라지지 않았고, 시선도 크게 떨리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태오는 그 대답을 듣고도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뺨의 붉은 자국이 넘어져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듯 눈매를 더 좁혔다.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면 흙이나 돌에 긁힌 자국이 남아야 했는데, 저건 분명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였다. 그의 눈은 오랫동안 사람의 몸에 남은 흔적을 읽어 온 사람의 것처럼 정확했다.
"누가 그랬소."
낮고 짧은 물음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가 정원의 밤공기를 더 무겁게 눌렀다. 바람 소리조차 그 순간에는 멈춘 것 같았다.
도윤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떨어뜨렸는데, 한소라의 경고가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두려움보다 다른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한소라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이 일을 누구에게든 말하면, 그다음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 말이 무서웠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도윤의 가슴을 두드리는 건 다른 감정이었다.
'이 사람이 걱정을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치자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태오의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 조금만 더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면 모든 게 들통날 것 같았다.
"정말, 그냥 넘어진 거예요."
도윤은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하며 태오의 옆을 지나쳐 별채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는데, 등 뒤로 그의 시선이 계속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발목이 다시 시큰거렸지만, 절뚝이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별채 문을 닫고 나서야 도윤은 그 자리에 주저앉듯 숨을 몰아쉬었는데, 심장이 아직도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태오는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도윤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곱씹었다.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보통 저 나이대의 사람들이라면 얻어맞고 나서 저렇게 담담할 수 없었다. 겁먹은 눈으로 도움을 청하거나, 최소한 눈물을 보이거나, 아니면 자신을 붙잡고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그가 지금까지 봐 온 사람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반응했다.
그런데 도윤은 그중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뭘까, 저 태연함은.'
태오는 그 담담함이 강인함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종류의 익숙함, 체념에 가까운 무언가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는데, 그 느낌이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맞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건, 그만큼 그런 일이 반복되어 왔다는 뜻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태오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굳어졌다.
그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인을 조용히 불러 몇 마디를 물었고, 세탁장 근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이미 은밀하게 돌던 소문의 파편들을 주워 모았다. 하인은 처음엔 말을 아끼려는 눈치였지만, 태오의 낮게 가라앉은 눈빛 앞에서 결국 몇 마디를 흘렸다.
한소라의 이름이 그 사이에서 흘러나왔을 때, 태오의 표정이 순간 얼음처럼 굳어졌지만, 그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별채 지붕 위로 걸린 달을 한 번 올려다보았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도윤은 부어오른 뺨을 손등으로 가리며 별채 안에서 하루 종일 몸을 숨기듯 지냈는데,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에도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거울에 비친 뺨은 어제보다 색이 더 짙어져 있었고,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번졌다.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채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오후 무렵 문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연 순간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태오였다.
도윤은 순간 숨을 삼켰다. 어제의 그 눈빛이 떠올라서, 오늘도 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봐 심장이 먼저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는 손에 작은 약병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내밀며 짧게 말했다.
"바르시오."
도윤은 그 손짓에 놀라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상했던 질문도, 예상했던 재촉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내밀어진 손과, 그 손에 들린 작은 병이 있을 뿐이었다.
'왜, 갑자기.'
의심과 놀람이 뒤섞인 눈으로 약병을 받아드는데, 유리병 표면이 차갑게 손끝에 닿았다. 안에 든 연고에서는 은은한 약초 냄새가 배어 나왔는데,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태오는 그 이상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돌아섰다.
다만 문턱을 넘기 직전, 그가 낮게 덧붙인 한마디가 도윤의 귓가에 오래 남았다.
"다음엔 넘어지지 마시오."
그 말이 정말로 넘어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도윤도 알고 있었다. 그 짧은 한마디 속에 담긴 뜻을 곱씹을수록, 그것이 경고인지 걱정인지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태오가 사라진 뒤 도윤은 손에 든 약병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이상하게 목이 메는 걸 느꼈다. 병뚜껑을 열어 손끝에 연고를 조금 묻히자, 서늘한 감촉이 상처 위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왜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는데, 그게 상처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런 걸로 흔들리면 안 되는데.'
스스로를 다잡으려 해도, 손끝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저물어 가는 해가 별채 마당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도윤은 오래도록 약병을 손에 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