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별을 삼켰다, 전사가 되겠다

5화

그날 이후로도 나는 흙더미를 이용해 사냥을 계속했다. 땅을 부드럽게 갈라 그 안에 숨듯이 웅크리고, 짐승이 지나갈 때를 기다리는 것.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멧돼지 한 마리를 잡던 날, 손끝에 남은 흙의 무게가 예전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몸이 조금씩 흙의 성질을 닮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집안 형편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부뚜막에는 늘 무언가가 끓고 있었고, 소룡과 소정의 얼굴에도 살이 조금씩 붙었다. 소룡은 요즘 밥그릇을 두 번씩 비웠다. 소정은 예전보다 웃는 얼굴을 자주 보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도끼질을 하듯 흙을 다루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늘 그늘이 따라붙었다. 마을 어귀에서 예산과 예리를 만난 날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는데, 예산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고 예리는 그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예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너 사냥 실력이 갑자기 왜 그래?" "운이 좋았습니다."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지만 이번엔 예산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운이 매일 좋을 수는 없잖아. 지난 열흘 동안 네가 잡아온 짐승이 몇 마리인 줄 알아? 사냥꾼 셋이 붙어도 그만큼은 못 잡는다." 숫자까지 대며 몰아붙이니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짐승들이 요즘 저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예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때 예리가 팔짱을 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감추는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냉정한 눈빛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예리는 늘 이렇게 정확하게 핵심을 찔러왔다. 마치 도끼로 장작을 결대로 쪼개듯, 불필요한 말은 다 걷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화법이었다. "별거 아닙니다." "..." 예리는 더 캐묻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예산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예리가 입을 다물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때 마을 저편에서 아이 하나가 뛰어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발이 땅에 닿는 소리가 다급했다. "삼로장님이 예천을 찾으신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삼로장이 나를 부를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소문이 벌써 그곳까지 흘러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예산과 예리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예리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나는 애써 표정을 가라앉히고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치 발밑에 흙더미 대신 쇳덩이라도 매달린 것 같았다. 삼로장의 처소는 마을 가장 안쪽,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있었다. 그 나무는 마을 사람들 말로는 백 년도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가지가 넓게 뻗어 처소 전체를 그늘로 덮고 있었다. 예현 어르신은 문 앞에 흰 수염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지팡이도 없이 산길을 걷던 그 신체 그대로였다. 허리는 곧았고, 두 눈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를 향해 있었다. "들어오너라." 낮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돌덩이가 서서히 굴러 내려오는 듯한 무게감이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문지방을 넘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화롯불 하나만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내는 작은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예현 어르신이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무언가 더 깊은 것이 담겨 있었다. 마치 흙더미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꿰뚫어보려는 눈빛이었다. "최근 사냥이 유독 잘된다고 들었다." 나는 대답을 고르며 잠시 말을 아꼈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대답을 준비했지만, 어느 것도 마땅치 않았다. 어르신의 눈빛이 화로의 불빛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 열기가 방 안의 공기마저 데우는 것 같았다.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어르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