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별을 삼켰다, 전사가 되겠다

4화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나는 망태기를 메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발끝에 닿는 이슬이 짚신을 적셨다. 산길 초입에서 어제 봐두었던 좁은 틈을 찾았다. 토끼들이 자주 다니는 흔적이 뚜렷했다. 발자국과 풀 뜯긴 자리를 눈으로 훑었다. 이 정도면 됐다. 망태기 속 흙더미를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흙은 아직 밤이슬을 머금어 차가웠다. "덫의 걸쇠처럼." 중얼거리자 흙더미가 곧바로 반응했다. 스르릉. 흙이 살아있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었다. 걸쇠 모양으로 변한 흙더미를 틈 사이에 조심스레 끼워 넣었다. 혹시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손끝으로 다시 눌러보았다. 단단히 자리를 잡은 듯했다. 주변에 마른 잎을 덮어 위장까지 마쳤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흔한 흙무더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바위는 차가웠지만 앉을 만했다. 숨을 죽이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끼 한 마리가 틈으로 다가왔다. 코를 킁킁거리며 흙더미 주변을 맴돌았다. 걸쇠가 순간 반응해 조여들었다. 찰칵. 토끼는 발버둥 칠 새도 없이 걸려버렸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작동할 줄은 몰랐다. 평소 같으면 반나절을 기다려야 얻을 수확이었다. 그런데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옮겨 같은 방식으로 흙더미를 다시 놓았다. 이번엔 오소리가 다니는 길목이었다. 같은 중얼거림, 같은 스르릉. 걸쇠는 조금 더 크게 벌어졌다가 다시 조여들었다. 그날 하루 만에 나는 토끼 다섯 마리와 오소리 한 마리를 잡았다. 예년 같으면 사흘 걸릴 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망태기 안에서 짐승들이 버둥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듣기 좋았다. 어머니는 망태기 안을 보고 말을 잃었다. 한동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다 네가 잡은 거니."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이 운이 흙더미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를 미덥지 않은 눈으로 훑어보았다. 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저녁상에는 오랜만에 고기 냄새가 진하게 났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진 아주머니가 내 망태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이고, 이게 다 뭐니. 며칠 치는 되겠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 아이가 요즘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나."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저 지나가는 우스갯소리였을 텐데. 가슴 한쪽이 뜨끔했다.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번진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산골 마을이란 원래 그런 곳이다. 숲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져도 다음 날이면 이웃집 개가 그 이야기를 안다. 다음 날, 예풍이 나를 찾아왔다.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웃으며 어깨를 치고 갔을 텐데. 오늘은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요즘 사냥이 이상하게 잘된다는 얘기가 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덫 놓는 자리를 좀 바꿨을 뿐입니다." "자리만 바꿨는데 하루에 여섯 마리를 잡아?" "운이 좋았다니까요." 예풍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내 망태기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흙이 조금 묻어 있었을 뿐인데도 그의 눈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미심쩍은 기색이 남아 있었다. 마치 뭔가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등을 돌렸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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