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별을 삼켰다, 전사가 되겠다

1화

새벽 안개가 청화산 능선을 타고 내려올 때, 나는 이미 산길 어귀에 서 있었다. 등에 멘 망태기는 가벼웠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다. 발끝에 닿는 흙은 아직 차가웠다. 밤새 내린 서리가 풀잎마다 하얗게 얹혀 있었고, 그 위로 내 발자국만 검게 찍혔다. "예천, 오늘도 혼자냐." 예풍이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열네 살 생일이 코앞이라 그런지 요즘 부쩍 어깨가 넓어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와 비슷했던 몸이 어느새 반 뼘은 더 굵어진 듯했다. "나는 아직 열세 살이라 수련장에 못 들어가지 않느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억울하지 않냐고." 억울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예족의 법은 간단했다. 열네 살이 되어야 삼로장 앞에서 기능법을 선택할 자격이 생긴다. 그전까지는 그냥 아이였다. 아무리 손끝이 매서워도, 아무리 산을 잘 타도, 나이가 차지 않으면 문 앞에도 서지 못했다. "저기 온다." 예산이 턱짓으로 가리켰다. 삼로장 예현이었다. 흰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지팡이도 없이 산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걸음이 느렸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저 나이에도 저런 걸음을 걷는다는 게, 나로서는 짐작조차 안 되는 세월이었다. "자네들, 오늘 수련은 일찍 끝났나." "예, 삼로장님." 예리가 대답했다. 냉정한 목소리였지만 예의는 갖췄다. 삼로장의 눈이 나에게 잠깐 머물렀다. "예천이라 했나." "예." "올해 몇이지." "열세 살입니다." 노인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딱히 관심이랄 것도 없는, 그저 나이를 확인하는 시선. 마치 밭에 심긴 무의 크기를 재는 듯한 눈길이었다. "내년이면 되겠구나."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내년. 일 년. 그 사이 어머니는 또 얼마나 밭일과 삯일을 해야 할까. 겨울이 두 번은 더 지나야 할 텐데, 장작값은 또 얼마나 오를지. 삼로장이 지나가고 나서, 예풍이 슬쩍 물었다. "넌 안 억울해?" "억울할 시간에 토끼라도 한 마리 잡아야지." "…" 예풍의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먹을 걸 두고 억울해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억울함으로 배가 부르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너는 참, 사람이 이럴 때랑 저럴 때가 너무 다르다." "사람이 다 그런 법이지." 나는 그 표정을 뒤로하고 산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는 어머니 소월아가 있었다. 동생 소룡과 소정이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소룡은 나뭇가지를 검처럼 휘두르며 뛰어다녔고, 소정은 그 뒤를 쫓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없던 힘도 조금은 솟는 듯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이 집의 끼니는 내 손에 달려 있었다. 체력은 또래보다 부족했다. 팔뚝도 가늘었다. 예풍이나 예산과 씨름을 하면 세 번에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사냥이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덫을 놓는 위치, 짐승이 다니는 길목, 바람의 방향. 짐승도 사람처럼 편한 길을 좋아하는 법이었다. 좁고 험한 곳보다는 넓고 평평한 곳으로, 냄새가 적은 곳으로. 그런 것들을 나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계산했다. 힘이 없으면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일한 가르침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산 중턱, 계곡 옆 평평한 바위 근처에 덫을 놓아둔 자리가 있었다. 사흘 전에 놓아둔 것으로, 토끼든 오소리든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는 것은 이제 습관이었다. 덫은 비어 있었다. 허탕이었다. 오늘 저녁 끼니는 또 나물죽이 되겠구나 싶었다. 대신 그 옆에, 낯선 흙더미가 있었다. 색이 이상했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을 그대로 흙에 섞어놓은 것처럼, 검은 흙 사이로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빛은 더 또렷해졌다. 마치 흙 속에서 무언가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산에서 낯선 것을 만나면 두 번 생각하고, 세 번째에도 의심이 남으면 그냥 지나쳐라. 망태기 속 도끼자루를 슬쩍 만지며 나는 그 이상한 흙더미를 노려보았다. 산에서 살아온 십삼 년, 이런 것은 처음 보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그 은은한 빛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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