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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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의 문자를 받은 건 야산에서 그 일이 있고 나서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서윤아 이번주 토요일 우리집에서 할로윈 파티 할건데 너도 꼭 와야 돼. 안 오면 내가 데리러 간다???] 물음표를 세 개나 붙인 그 문자를 보며, 나는 한 달 넘게 다미의 연락을 무시했던 것이 새삼 미안해져서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잠시 멈췄다. 액정 속 글자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데리러 온다는 말이 농담인 줄 알면서도, 정말 우리 집 앞까지 찾아올 것만 같은 다미의 성격을 떠올리면 웃음이 났다가도, 곧바로 손목 쪽으로 시선이 내려가면서 그 웃음이 어색하게 굳어버리곤 했다.
손목의 흉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옅어지긴커녕 오히려 은은한 광택을 띠기 시작해서 나는 매일 긴 소매로 그 자리를 가리는 데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거울 앞에서 소매를 걷어 올릴 때마다, 그 자국이 마치 살갗 안쪽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무언가처럼 느껴져서, 나는 몇 번이고 손끝으로 그 자리를 문질러보았다. 지워지지 않았다. 지워질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게 상처인지 무언가의 흔적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답장을 미루고 있던 사이 다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서윤, 너 또 씹으면 나 진짜 삐질 거야." 다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고 씩씩했지만, 그 안에 서운함이 살짝 배어 있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미안, 요즘 좀 정신이 없어서." 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정신이 없는 건 아르바이트나 학업 때문이 아니라, 손목에 새겨진 이 낯선 흉터와, 밤마다 산 쪽으로 자꾸 향하는 내 발걸음 때문이었다. 그 말을 다미에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고, 설명한다 한들 믿어줄 리도 없었다.
"그니까 이번엔 진짜 와, 응? 우리 엄마가 마녀 분장까지 준비했다니까. 지민이도 오고, 유나도 오고, 다 오는데 너만 안 오면 그게 말이 되니." 다미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 활기가 왠지 낯설게 느껴져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한 달 만이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다미의 세계에서, 그리고 그 세계가 상징하는 평범한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져 있었다는 것을, 그 통화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너, 요즘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드니. 학교에서도 맨날 어디 갔었어?" 다미의 물음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대충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다미의 애교 섞인 협박에, 나는 결국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티, 라는 말이 이렇게 낯설게 들린 적이 없었다.
***
토요일 저녁, 다미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대문에는 호박 조명과 거미줄 장식이 요란하게 걸려 있었고,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은은하게 풍겨오던 달콤한 사탕 냄새와 오렌지빛 조명이 어우러져서,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대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소매 끝을 다시 한번 아래로 잡아당겼다. 흉터가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초인종을 눌렀다.
"왔구나!" 문을 열어준 건 다미의 어머니, 윤여사였는데, 검은 마녀 로브를 걸치고 초록빛 립스틱까지 바른 채로 나를 반겨주셔서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서윤이 오랜만이네, 얼른 들어와." 윤여사는 내 등을 다정하게 떠밀며 안으로 이끌었고, 나는 그 따뜻한 손길에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등을 떠밀어주는 손길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산속에서 마주쳤던 서늘한 눈빛과는 정반대의 온도였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을 찌르르 울렸다.
"저녁은 먹었니? 마녀 수프 끓여놨는데." 윤여사가 장난스럽게 국자를 흔들어 보이며 물었고, 나는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부엌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에 잠시 마음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거실에는 이미 학생회 아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안경을 쓴 붉은 머리의 지민이 손을 흔들었고, 그 옆에서 오유나가 커다란 상자를 뒤적이고 있는 게 보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래된 공포영화가 틀어져 있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고, 소파 위에는 사탕 봉지와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서윤아!" 지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겼다. "너 진짜 오랜만이다, 학교에서도 얼굴 보기 힘들더니."
"어, 미안. 요즘 좀 바빴어." 나는 또다시 같은 변명을 되풀이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서윤이도 왔으니까, 이제 진짜 시작해볼까?" 유나가 상자에서 꺼낸 건, 놀랍게도 늑대 얼굴 모양의 가면과, 그 아래 늘어진 검은 털가죽 망토였다. 가면의 눈구멍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안쪽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명 아래에서 털가죽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이게 뭐야?" 내가 묻자, 유나는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가 예전부터 하시던 얘기가 있는데,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면 늑대의 힘을 빌릴 수 있대. 옛날 무당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의식이라나. 오늘 할로윈이니까, 재미로 한번 해보자!" 유나는 마치 오래된 보물을 자랑하듯 망토를 펼쳐 보이며 아이들 사이를 돌았고, 몇몇은 손뼉을 치며 재밌겠다고 소리쳤다.
"어디서 구한 거야, 그거?" 지민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망토를 만져보며 물었다.
"할머니 창고에서 찾았어. 진짜 오래된 거야, 냄새 좀 맡아봐, 완전 고물 냄새." 유나가 웃으며 대답했지만, 나는 그 순간 코끝을 스치는 냄새가 단순한 고물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흙냄새와 비릿한 무언가가 뒤섞인, 그 산속에서 맡았던 냄새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아이들은 재밌겠다며 손뼉을 쳤고, 나는 그 가면과 망토를 바라보며 묘하게 손끝이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왜 하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런 것을.
"서윤이가 해봐, 늑대 여자잖아." 누군가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순간 거실 공기가 묘하게 얼어붙는 걸 느꼈다. 그 말투에는 놀림도, 순수한 호기심도 섞여 있어서,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칫했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여러 개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리는 걸 느끼며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서윤이가 딱이지!" 다미가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밝게 웃으며 나를 떠밀었고, 나는 결국 얼떨결에 그 망토를 어깨에 걸치게 되었다.
"어울린다, 어울려." 누군가 박수를 치며 웃었고, 지민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 듯 카메라를 들이댔다.
망토가 어깨에 닿는 순간, 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무언가와 다시 만난 듯한,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처음 입어보는 옷의 어색함이 아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벗어두었던 자신의 살갗을 다시 걸치는 듯한 감각에 가까웠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자, 이제 가면 써야지." 유나가 손수 가면을 들어 내 얼굴 쪽으로 가져왔고,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그것을 순순히 받아 썼다.
가면을 쓰자 시야가 좁아졌고, 그 좁아진 틈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게만 들렸다.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소리들이 뭉개지고 늘어지며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거실의 노란 조명도, 호박 장식의 오렌지빛도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그 순간, 손목의 흉터가 다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열처럼 은근하게, 그러다 이내 불덩이를 갖다 댄 듯 뜨거워지면서 나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나는 당황해서 가면을 벗으려 했지만,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눈앞이 순간적으로 흐려지며 어딘가 낯익은 황금빛 눈동자가 스치듯 떠올랐다. 그 눈동자는 산속 그날 밤,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던 바로 그 눈이었다.
"서윤아?" 다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고, 나는 그대로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